프로농구 울산 모비스가 2014~2015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일, 모비스와 선두경쟁을 치르던 원주 동부가 서울 SK에 69-75로 패배하면서, 모비스는 잔여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5시즌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모비스는 전신인 부산 기아 시절을 포함하여 역대 6번째로 정규리그 우승(1997, 2006~2007, 2009~2010, 2015)을 차지했다. KBL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이다. 특히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이 영입되고 지금의 모비스로 팀명을 바꾼 2004~2005시즌 이후에만 5번이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KBL의 '왕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모비스의 강세를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퇴출됐다. 여기에 박종천·이대성·함지훈 등 주축 선수들 다수가 수술과 재활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라는 유재학 감독과 에이스 양동근은 비 시즌 동안 국가대표팀 차출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야 했다. 30대를 넘긴 주전급 선수들은 모두 한 살씩 더 나이를 먹은 데 비해, 모비스의 강점이던 두터운 백업 선수층은 오히려 이전만 못했다.

한마디로 전력누수만 있고 보강은 전무한 상태였다. 경쟁 팀 전력의 상향평준화는 모비스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당초 유재학 감독도 올 시즌은 성적보다 팀 리빌딩에 초점을 맞출 것을 암시하는 것 같은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고전 예상했던 시즌, 막상 뚜껑 여니 달라졌다

'수고했어'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삼성 대 울산 모비스 경기.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맹활약을 펼친 양동근을 불러들이며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 '수고했어'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삼성 대 울산 모비스 경기.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맹활약을 펼친 양동근을 불러들이며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모비스는 오래 가지 않아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창원 LG와의 정규리그 개막전에서 1점 차로 석패하며 불안하게 출발하는 듯 했으나 바로 연승 모드로 접어들었다. 1라운드를 7승 2패의 호성적으로 마친 이후 2라운드 중반까지 무려 11연승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모비스는 2라운드 8승 1패, 3~5라운드 6승 3패, 6라운드 4승 3패(진행 중)로 매 라운드별 한 차례도 5할 승률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모비스는 올 시즌 11연승과 5연승이 각 1차례, 4연승을 2차례 기록했으며, 연패는 2연패만 4차례 기록했을 뿐 3연패 이상은 단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팀 간 상대 전적에서 어느 팀에게도 열세를 허용하지 않았다. 고양 오리온스, SK 나이츠, 창원 LG(3승 3패)가 그나마 대등한 성적을 기록했을 뿐이다. 특히 부산 KT(5승 1패)와 서울 삼성-전주 KCC(이상 6승) 등 약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확실하게 승수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순항하던 모비스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1월 들어 첫 4경기 중 3경기를 패하며 기세가 주춤했고 SK에게 잠시 선두를 내주기도 했다. 6라운드 막판에는 오리온스와 LG에게 연패하며 다시 선두를 빼앗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비스는 중요한 고비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치열한 선두경쟁을 펼치던 동부와 SK를 상대로 가장 중요한 6라운드 맞대결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모비스는 올 시즌 동부(4승 2패)-SK(5승 1패)와의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했고, 이는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최대의 원동력이었다.

모비스가 올 시즌 예상을 딛고 순항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조직력의 힘이었다. 유재학 감독이 10년에 걸쳐 모비스에 뿌리내리게 한 시스템 농구는 감독과 주축 선수들의 일시적인 부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양동근과 함지훈, 문태영, 라틀리프 등도 최소 3년 이상 모비스에서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모비스의 베테랑들은 체력의 부담을 특유의 연륜으로 극복했다. 기복이 심했던 다른 팀들에 비하여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유재학 감독은 시즌 내내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하여 100% 만족하지 못했지만, 이는 다른 팀들에 비하면 상대적인 불만에 불과했다. 감독의 농구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의 존재 덕분에 유 감독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예상보다 빨리 안정궤도에 접어들 수 있었다. 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변화무쌍 수비 로테이션'은 변함없이 위력을 발휘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발휘된 집중력... 강팀의 조건 보여준 모비스

모비스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약팀을 상대로 고전한 경기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집중력을 발휘하며 '이길 경기는 확실히 잡고, 질 경기도 다시 이기게 만드는' 뒷심을 발휘했다. 진정한 강팀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특히 유재학 감독하고만 10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모비스의 '전설' 양동근은 비 시즌 동안 국가대표팀 차출로 인한 체력적 부담이 무색할 정도였다. 올 시즌 프로농구 전체 최다인 평균 34분 55초를 소화하며 52경기 전 게임에 출장하는 '철인'을 과시했다. 백업 가드들의 부진으로 올 시즌 매 경기를 풀타임 가까이 소화해야하는 부담이 컸음에도, 경기당 11.7점, 4.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VP급 시즌을 보냈다. 양동근이 없었다면 모비스의 선두질주는 불가능했다.

벤슨의 공백을 메운 라틀리프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년간 벤슨의 그늘에 가려서 백업 멤버에 그쳤지만, 올 시즌에는 자타공인 1순위 용병으로 올라섰다. 20.2점, 10.5 리바운드의 시즌 더블-더블 활약으로 모비스의 골밑을 굳건하게 지켰다. 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기량, 골밑에서의 터프함과 궂은 일을 가리지 않는 이타적인 성향의 선수이다. 브라이언 던스톤-크리스 윌리암스-애런 헤인즈 등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모비스형 외국인 선수'의 성공 모델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선수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문태영은 올시즌 17.1점(8위)으로 외국인 선수들이 장악한 득점랭킹에서 유일하게 10위권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문태영을 제외하고 경기당 15점 이상을 올린 국내 선수는 전무하다. 문태영은 한국무대에 데뷔한 2009~2010시즌 이후 단 한 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국내 선수 득점 선두에 오를 만큼 꾸준함이 돋보인다.

여기에 송창용, 전준범 등 지난 시즌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던 어린 선수들이 이번 시즌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가능성까지 다져놓는 데 성공했다. 어설픈 리빌딩을 핑계로 댔다가 성적과 개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몇몇 하위권 팀들의 행보와 대조된다.

경쟁 팀들의 자중지란도 모비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난 시즌 모비스와 패권을 다퉜던 LG가 초반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주춤하며 후반기 들어서야 겨우 페이스를 찾았다. SK는 모비스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인데다 시즌 후반기 슬럼프에 빠지는 뒷심부족을 되풀이했다. 동부 정도가 그나마 꾸준한 모습을 보였지만 모비스를 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유재학 감독 역시 "상대팀들의 부진으로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덧 다시 한 번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모비스의 기록 행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모비스는 챔프전 우승은 총 5차례로 KCC와 공동 선두에 올라있다. 이중 유재학 감독이 이끌어낸 우승만 4차례다. 만일 올 시즌에도 우승을 차지한다면 역대 최다우승 1위로 올라서는 것은 물론, KBL 역사상 챔프전 3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1998-1999년 KCC(당시 대전 현대), 지난 2013-2014년 모비스가 각각 2연패를 달성한 바 있지만, 챔프전 3연패는 아직 전무하다. 당대를 넘어 역대 최강의 왕조를 꿈꾸는 모비스의 도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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