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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한 지 13년. 결혼 초기 비슷했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하면서 '다르게 바라보기'를 서로의 관점에서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너 일베냐?"고 묻는 형·강경한 어머니

설 차례상
 설 차례상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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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의 모자지간 불화였다. 나도 편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도 불편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대화를 그만하자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낯설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머니와 이리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를 낸다면 아버지가 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왜 어머니가 화가 나셨을까.

<추석엔 처가부터 갈게요, 부모님 반응이 궁금하다>는 글이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건 설날 당일인 19일이었다. 평지풍파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형은 "너 일베냐?"고 물었다.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런 글 쓰냐고도 물었다. 내 나이 마흔 둘, 나름 직장생활도 했다. 명분 없는 행동을 하면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꺼냈다. 결코 가볍게 꺼낸 얘기가 아니었다.

차례를 지낸 후 대화를 시작했다. 13년 동안 이어져온 '선(先) 본가 후(後) 처가'를 추석 때만이라도 '선 처가 후 본가'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인 아버지는 선뜻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하고 대답하셨다. 의외였다. 그 동안 아버지도 고민이 많으셨단다. 이제 곧 칠순을 향해가는 어머니의 건강을 고려할 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단다. 아버지는 설이나 추석 명절에 알아서 여행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처가를 가든지….

예상하지 못한 반발은 형으로부터 나왔다. 장남인 형은 다음 대(代) 제사를 주관할 제주였다. 내 얘기를 들은 형은 매우 불편해 했다. 형은 '명절 문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형과 명절 문화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낯설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은 "정말로 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좀 더 진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이 주제는 민감해. 그만하자'는 우회적 전달로 해석됐다. 딸만 둘뿐인 형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카들이 결혼하고 난 뒤를 물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지난 명절 이야기, 그 속의 '깊은 간극'

기사 '추석엔 처가부터 갈게요'는 네이버 등 포털에 게재됐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사연들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천 개의 사연은 수천 개의 삶을 대변했다. '기사를 보면서 내 얘기인 줄 알았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렇게 읽혔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 얘기도 들으셨고,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도 읽으신 어머니는 "글은 글일 뿐이다"고 말씀하셨다. 전날 하루 종일 차례 준비를 하신 어머니는 어제보다 좀 더 지쳐 보였다. '추석에 처가부터 갈게요'에 대해 어머니는 44년 명절 동안 단 한 번도 친정에 가보지 못하신 자신의 지난 명절 얘기를 들려주셨다. 어머니의 친정은 전라남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진도였다.

그런 어머니께 차례를 지내자마자 친정으로 향하는 둘째 아들과 며느리의 '명절 문화' 얘기가 낯설게 들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글은 글일 뿐이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실 뿐이었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선을 그었다.

42년 내 평생의 가장 든든한 기둥이셨던 어머니. 결혼 후 44년 동안 단 한 번도 명절에 친정에 가보지 못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가 내 주장에 앞장서 반대를 하셨다. 우리는 명절 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자고 했다. 분명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아내가 생각한 '명절'과 어머니가 생각한 '명절'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간극이 좁혀질 수 있을까. 나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났다.

[그 여자 이야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주제, '명절 문화'

어려운 자리였다. 결혼한 지 13년여가 지났지만 이번 명절만큼 어려웠던 자리는 몇 번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를 쳐다보기도,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남편이 말을 꺼냈고, 이야기를 이끌었다. 때로는 남편의 설명이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흐를 때도 있었지만 내가 끼어들어서 방향을 바로잡기 어려웠다. 가족들은 이야기했고, 나는 들었다.

남편과 의기투합해서 화두를 던지긴 했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전통 혹은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주제였을 것이며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도전이 가족들 마음에 상처로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뜻으로 화두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결과가 그러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마도 우리가 이야기를 꺼낸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견이 충분히 그리고 자세히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세련됐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세련된 다른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 나름 고민한 방법이었다.

나는 우리의 제안으로 단번에 명절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가족들은 이 이야기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명절 문화는 진정 대화조차 필요 없는 '금기의 대상'인 것일까? 명절을 지내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이미 명절 문화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해외로 나가려는 인파로 붐비고 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해외로 나가려는 인파로 붐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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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풍경은 다양했다. 친구 커플은 아이들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뉴스에서는 공항 이용객이 최대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다른 친구 커플이 올린 SNS 사진 속에는 상에 접시가 더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차례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다양한 풍경 속에 우리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양한 풍경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안에서는 우리 글로 인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댓글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몇 개 있다. 우리의 제안과 비슷하게 설은 시댁 식구들과 추석은 친정 식구들과 보낸다며 그 문화가 오히려 편하고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댓글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을 훼손하고자 한다며 나를 '어설픈 페미니스트'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우리의 문제제기는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번 추석엔 시댁에 먼저 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침묵으로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셨다. 예전과 달라질 것 없이 명절을 지내는 것이 이 가족의 평화를 깨트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설에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어머니도 나도 명절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나도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명절을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태그:#명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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