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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자국 영주권 문호를 막는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작은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 부모들 영어가 문제다. 내가 사는 곳의 교육청은 나처럼 외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모들을 위한 영어교육을 무료로 진행한다. 미국에 온 지 2년 이내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교육을 받고 있으면 자연히 부모도 무료교육의 대상자가 된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 영어 발음 때문에 겪은 웃픈 이야기

지난 Thanksgiving 행사 때 자국 국기를 펼쳐 들고 국가를 불렀던 베네수엘라 ELS 친구들.
 지난 Thanksgiving 행사 때 자국 국기를 펼쳐 들고 국가를 불렀던 베네수엘라 ELS 친구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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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은 각자의 영어 레벨에 따라 세 등급으로 나뉘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1시간 30분씩 수업을 듣는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해 옆 강의실에서는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학기가 시작하는 9월부터 끝나는 5월까지 거의 9개월간 꼬박 진행된다.

수업 첫 날, 60여 명의 어른 학생들이 자리에 앉았다. 자기 소개만 하다가 첫 날이 끝났을 정도다. 남미에서 온 사람들, 특히 베네수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본국에서 변호사를 하던 친구,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친구, 석유회사에 다니던 친구 등 소위 잘 나가던 그 친구들은 베네수엘라의 불안정한 정치상황 때문에 낯선 미국에서의 삶을 택했다고 했다.

그녀들은 베네수엘라 소식을 전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때면 우리는 영어 문법보다 더 중요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따뜻한 눈빛을 나눴다. 영어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들도 비슷했다. 서툰 발음과 각자의 액센트 때문에 생겼던 에피소드들이 소개될 때면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 인도 친구의 전화영어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며 이야기 거리로 남았다.

그녀는 한 가전제품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A/S를 요구했다고 했다. 마지막에 자신의 주소를 남기는데 수화기 너머의 상담원이 도저히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서로 헤매다 상담원이 A부터 천천히 스펠링을 부르면, 맞는 스펠에서 그녀가 "STOP"을 외쳤다고 했다. 10분이면 끝날 서비스요청 전화를 한 시간이 넘게 통화한 끝에 자신의 주소를 남겼고 자기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았다는 일화에 우리는 다 같이 박수를 보냈다.

40대 중반 멕시코 여인 "내 발음을 놀려요"

요리 수업을 진행 중 모습
 요리 수업을 진행 중 모습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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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모두 엉터리 영어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인과 대화할 때 보다 훨씬 편안하다. 서로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법, 발음이 틀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눈빛으로 의미가 통하고, 마음으로 공감한다.

한 멕시코 친구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16살에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낳아 기른 40대 중반의 그녀는 멕시코에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기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만 했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야 했다. 그 후 그녀가 어떤 경로로 미국으로 오게 됐는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미국으로 옮겨 삶의 터전을 잡았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그녀의 삶은 늘 힘들고 팍팍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고 그 말을 들은 반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미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직업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난 못 하겠어요.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내 발음을 이상하다며 놀려요"라며 부정적인 언어들을 쏟아내었다.

몇 차례의 권유에도 그녀에게서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우리는 조금씩 실망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건 선생님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간단한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는 정답을 말하면서도 '이건 틀린 답일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매 시간 ESL 선생님은 그녀에게 질문을 했고 그녀의 반응도 대게는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그녀가 "이건 내가 잘 알아요"라며 답을 말했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고, 우리는 환호했다. 영화 같은 기적적인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느 새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공짜 수업의 열기가 처음 같지 않아서 60여 명으로 시작했던 우리 반이 15명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알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의 사설 영어학원에서 만난 사람들

Thansgiving 축제. 사설 어학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Thansgiving 축제. 사설 어학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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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다닌 곳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곳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6주간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곳으로 약 100만 원 가량 드는 사설 어학원이었다. 우리 반은 모두 10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역시 남미에서 온 친구들이 대다수였고(콜롬비아인, 브라질인, 멕시코인), 일본인, 한국인 등이었다.

멕시코에서 온 사람들은 3명이었는데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온 젊은 친구들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온 3명의 친구는 한 명은 변호사였으며, 한 명은 엔지니어였다고 했다. 또 한 명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어학연수를 온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였다. 콜롬비아 친구들은 자국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브라질에서 온 2명은 부부였다. 미국에 온 지는 15년이 지났고, 남편이 건설업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 산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어 학원에 다니는 이들 부부는 최근 남편 사업이 잘 되면서 미국인 고객이 늘어나면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남미 혹은 브라질 언어만으로도 사업에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 한 지 20년이 됐다는 그 부부는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애틋했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자연스레 볼에 입을 맞추고 늘 따뜻하게 서로를 안고 지나갔다.

많은 멕시코/컬럼비아/브라질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자연스레 일본인 친구와 가까워 졌다. 남미 친구들보다는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도 많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시기와 나이가 비슷해서 공통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있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미국으로 오게 된 이유도 다양하고 사는 모습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이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잠시 모국을 떠나 살지만 각자의 나라를 사랑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었다.


태그:#미국 적응기, #영어 , #E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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