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카지>에서 앨빈 역을 맡은 정성화

뮤지컬 <라카지>에서 앨빈 역을 맡은 정성화 ⓒ 악어컴퍼니


한 분야에서 정상에 있다가 뮤지컬이라는 완전히 다른 장르로 건너와서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이전의 영광에 안주하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다와 옥주현이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지금은 뮤지컬계 정상에 올랐다면, 정성화는 개그맨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하고 뮤지컬계 정상에 오른 배우다.

<라카지>에서 앨빈을 연기할 때 정성화는 다른 캐스팅인 김다현이나 이지훈처럼 꽃미남 외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천연덕스러움으로 차별화된 앨빈을 연기한다. 그 덕분일까. 정성화가 코웃음을 치며 손사래를 칠 때 객석은 웃음으로 단결한다.

웃음만 전하는 게 아니다. 2막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때는 가슴으로 낳은 어머니의 진한 모성애를 그린다. 정성화의 맛깔난 연기는 헤엄치기 위해 끊임없이 수면 아래에서 자맥질하는 백조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뮤지컬 <라카지>의 한 장면

뮤지컬 <라카지>의 한 장면 ⓒ 악어컴퍼니


- 프레스콜 당시 "앨빈을 연기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어머니를 많이 참고했다"고 했는데. 이태원의 트랜스젠더들도 모니터했을 것 같다.
"최한빛이라는 트랜스젠더 모델과 만나서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앨빈을 연구하기 위해 이태원에 가기도 했지만 <라카지>를 하기 전에도 이태원을 많이 다녔다. 이태원이 궁금해서 후배랑 가보면 트랜스젠더가 쇼를 마치고 고객의 옆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인간미가 넘치고 마음에 드는 트랜스젠더가 꽤 많았다. 작품을 위해 이태원에 가기 전부터 미리 공부가 되었던 거다.

<라카지>에서 게이 부부를 연기한다고 하니 이태원 언니들은 '오빠, 이럴 때는 손을 많이 써야 해' '보통 여자들은 손을 흔들 때 옆으로 흔들지 않고 위아래를 많이 써'하는 식으로 많이 가르쳐주었다. 앨빈에 대한 팁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여성스러움에 대한 면은 성 소수자가 일반 여성보다 적극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앨빈은 장미셀을 가슴으로 낳은 아들로 생각하고 사랑한다. 최근 딸이 생겨서 초연 때보다 공감이 더욱 갈 법한데.
"배우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때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떡할까'를 생각한다. 그런데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극 중 상황과 비슷한 인생의 경험을 끄집어낸다. 기억을 꺼내서 감정을 잡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2012년에는 감정을 끌어오는 게 쉽지 않았다. 장미셀이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감정을 잡아야 할까 스스로 공감되는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딸을 낳은 다음부터는 장미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딸과 내가 밝게 웃는 사진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감정 잡기가 편해서 2막에서 장미셀이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물이 확 쏟아진다. 사람은 사는 이유가 제각각이다. 나는 '자식을 위해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깨달을 때가 많다. 딸이 생겼으니 <라카지>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라카지>의 한 장면

뮤지컬 <라카지>의 한 장면 ⓒ 악어컴퍼니


- <레미제라블>에서는 최고참 배우였지만 <라카지>에는 남경주, 최정원, 전수경 등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이 많다.
"이분들과 공연하면서 복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에 공연할 때는 내가 고참 급에 속해서 내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라카지>에서는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남경주 선배와 연기할 때는 눈을 맞춰 연기한다는 게 이만큼 좋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경주 선배가 연기하는 조지는 무대에서 토라진 앨빈을 설득한다. 남경주 선배를 보면서 '연기가 이런 거구나'를 느낀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감사함이 있다."

-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오는 배우라고 알려졌다.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웃음) 일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서 부산떠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는 건 그만큼 뮤지컬에 굉장한 흥미를 느낀다는 의미다. 빨리 연습하고 싶어서. 어느 때에는 연습실 문이 열리지도 않아서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연습실 문이 열리면 들어갈 때도 있다."

- 조급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도 하다. 연습량이 어느 정도 차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다. 150% 정도는 연습해야 안심이 된다. <레미제라블> 때, 높은음을 내야 하는 노래가 있었다. 하루는 높은음이 올라가지 않아서 될 때까지 부른 적도 있었다. 리허설 때도 대충 하는 걸 싫어한다. 완급 조절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 커튼콜의 반응이 뜨겁다.
"초연보다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초연에는 하이톤의 박수가 나왔다면 지금은 로우톤의 박수가 섞여 나온다. 남자들이 표현에 무뚝뚝하다. 남자 관객은 처음에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는 마음에 팔짱을 끼고 본다. 하지만 커튼콜이 되면 무장해제되어 뜨겁게 박수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남성 관객의 웃음을 보면 '공연하길 잘했구나'하는 생각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배우 정성화

배우 정성화 ⓒ 악어컴퍼니


- 성악적인 부분에도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뮤지컬 배우는 노래를 잘하는 게 다가 아니다. 노랫말을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을 노력하고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레미제라블>에 캐스팅되면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국에 레슨을 받으러 갔다.

우리나라도 잘 가르치는 분이 있지만, 영국 현지라면 연기적인 노래를 잘 가르치지 않을까 해서 찾아갔다. 한 달 예정하고 찾아갔지만 사람의 노래를 변하게 하는 건 한 달 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 동안 음악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 한국에 돌아와서 더욱 나은 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성화 라카지 김다현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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