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기자간담회에서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 설립과 공정한 영화 시장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는 엄용훈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2013년 10월 2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기자간담회에서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 설립과 공정한 영화 시장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는 엄용훈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 이희훈


대기업 CJ가 배급하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배급한 중소배급사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가 14일 흥행부진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면서 대기업 독과점 문제가 다시금 불붙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는 흥행성적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모습이지만 영화산업의 불합리한 환경이 원인으로 거론되면서 투자·배급·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부각되고 있다.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영화가 스크린 확보에 실패해 밀려나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엄용훈 대표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많은 분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며 "영화의 흥행 실패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엄 대표는 "생각해보면 저는 많은 분들께 크나큰 죄를 지었다"며 "제작자로서 관객 여러분께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게 한다는 현재의 멀티플렉스 시스템에서도 불구하고 먼 길을 찾아다니며 보게 해야 하는 불편과 수고를 끼쳤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분들에게 실패한 작품에 참여하게 했다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 작품에 용기와 응원의 마음으로 투자를 결정해 주셨던 투자자에게 경제적으로 큰 손실과 큰 시름을 겪게 했다"며 거듭 사과했다.

엄 대표는 리틀빅픽쳐스 대표 외에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서울영상진흥위원회 부위원장에서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제작자로서의 본분만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배급사 리틀빅픽쳐스는 제작가협회가 중심이 돼 2013년 6월 설립한 배급사로 엄 대표가 무보수로 대표직을 수행해 왔다. <소녀괴담> <카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을 배급했다.

대기업 독과점 속 공정경쟁 기회 상실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으나 상영관 확보가 안 돼 흥행 부진을 겪고 있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으나 상영관 확보가 안 돼 흥행 부진을 겪고 있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 리틀빅픽처스


흥행 실패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에서 엄 대표가 공개적인 사의를 밝힌 것이지만 이면에는 불공정한 배급 환경에 대한 불만도 자리하고 있다.

엄 대표는 "연말연시라는 가장 치열한 박스 경쟁 시기에서 정상적인 수준의 1/3 정도의 개봉관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그나마 받은 상영관은 조조 시간대와 심야 시간대가 주를 이루는 등 가족영화 장르로서는 매우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상항에서 개봉을 시작했다"고 외적 조건을 언급했다.

대기업인 CJ의 배급 영화들이 승승장구 하는 상태에서 자체 극장이 없어 스크린 확보를 못하는 중소배급사의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흥행을 점치는 과정중 하나인 VIP시사회 때 상당히 평이 좋았다"며 "흥행의 성공을 예측"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작들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높은 좌석점유율에도 스크린과 상영 횟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고전했다. 개봉 첫날 205개 스크린, 735회 상영에 불과했다. 대기업에서 배급하는 작품들이 500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2000회 가까이 상영되는 안정적 조건을 확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반적으로 좌석점유율이 높은 영화는 스크린이 늘어나는 것이 기본이지만 연말 개봉작들이 많아지면서 이마저도 힘들었다. 입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높은 좌석점유율이 유지되고 있어 상영 조건만 늘어나면 흥행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스크린은 더 줄었다.

14일 <개를 훔치는 방법> 30%의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하며 개봉한 상영영화들 중 3위를 차지했음에도 23개 스크린에서 36회 상영되며 사실상 대부분의 극장에서 사라졌다.  

대기업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자신들이 투자·배급한 작품을 소유한 극장의 스크린을 활용해 흥행 수익까지 챙기는 현실에서, 중소배급사로서는 공정한 환경에서의 경쟁조차 불가능했던 셈이다.


엄용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수직게열화 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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