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었던 <돌장이의 꿈>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거북이 조각상을 주문받은 돌장이가 몇 주일 동안이나 작업에 착수하지 않고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고만 있다. 막대한 돈을 지불한 사업가는 초조한 마음에 매주 찾아와 작업의 진전을 물어보지만 돌장이는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몇 주가 더 지나자 돌장이는 무엇에 홀린 듯 돌을 쪼기 시작한다. 거대한 바위가 멋진 거북이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장이가 거북이의 등에 남은 돌을 쪼는 순간 '쨍강'라는 소리가 나며 정이 부러지고 돌장이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괜찮다. 내가 실수했구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거북이의 맨살을 건드려서 정이 부러진 거야"

소년은 그제야 알았다. 돌장이가 몇 주 동안 돌을 다듬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은 그 바위 안에 숨어 있는 거북이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가 정신이 나간 듯 돌을 쪼기 시작한 것은 비로소 바위 안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발견했음이다. 그리고 돌을 쪼던 정이 부러진 것은 거북이의 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돌장이가 돌을 쪼는 것은 조각할 대상을 스케치하며 상상을 덧붙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바위 안에 숨어 있는 대상을 발견하여 그 대상을 뒤덮고 있는 돌을 걷어내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르네 로댕'의 "위대한 예술가는 영혼에 응답하는 영혼의 노래를 듣는다"라는 명언과도 뜻을 같이 한다. 또한 20세기 추상표현주의 선구자이며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락' 역시 "그림에게는 나름의 삶이 있다. 나는 단지 그림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노력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영감은 구도자와 같은 자기 해체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에게 보이고 들려지는 것들을 그만의 방법으로 표현할 뿐이다라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예술이란 것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다. 문명의 발달 단계 혹은 지역색, 남녀가 가지는 근원적 차이라든지, 소수의 손안에 쥔 힘을 찬양하거나 조롱거리로 만드는 매체 등을 보는 것처럼 시대와 문화, 지역과 현실적 상황에 따라 예술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제각각이다.

현재도 이 예술적 장치와 완성품에 대한 비판과 환희는 소멸과 재탄생을 반복하고, 그치지 않는 샘물처럼 그 형태를 바꾸어가며 지속적인 변화를 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에게 예술이란?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초록과 흰색을 극명하게 대립시키다 종국에선 모두 초록으로 물들어 버린다. 색감만으로도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초록과 흰색을 극명하게 대립시키다 종국에선 모두 초록으로 물들어 버린다. 색감만으로도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 필라멘트 픽쳐스

조근현 감독의 영화 <봄>은 시대적으로 60년대에 한정을 시킨다. 당시로서는 한국전쟁 이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시기이도 하며,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경제발전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던 시기이다.

그 시기에 경북 포항의 한적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 아직 먹고살기에 빠듯한 서민들에게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조각가라는 포지션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장치이다.

교회의 자선 식량 나눔 행사에서 만난 여인. 키가 훤칠하고 목이 길어 조각 몸매 같은 여인인 민경. 정숙(김서형)은 남편인 준구(박용우)에게 그 여인인 민경(이유영)을 소개해 준다.

한때 잘 나가던 조각가 준구는 온몸의 마비가 점점 심해지는 병을 앓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숙은 이러한 남편에게 다시 한 번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조각가로서 작업에 몰두하던 남편의 생기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또한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던 일을 하면 그의 병이 진전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영화 중반, 민경이 누드모델을 하며 큰돈을 벌어온다는 걸 알게 된 현 남편은 준구의 작업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민경과 준구에게 가혹한 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예술은 당장 한 끼 밥그릇을 걱정하는 이들에겐 보리밥 한 숟가락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아름다운 육체를 찬양한답시고 벌건 대낮에 남자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것 또한 이들에게는 사치이며 돈 많은 자의 저급한 유희로 보일 수 있다.

"조각상을 만드는데 꼭 옷을 벗어야 하나요?"

준구의 작업에 필요한 모델은 누드모델이다. 떨리고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준구 앞에 섰던 민경은 작업이 시작되면서 모델로 완벽한 변신을 하게 된다. 준구가 스케치하는 데 필요한 자세가 갈수록 자연스러워지고 조각상을 만들기 위한 석고 틀을 뜨는 작업에도 흥미롭게 동참한다. 그러면서 준구에게 묻는다.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조각가인 준구 앞에 선 민경역의 이유영은 신인임에도 적나라한 누드 연기를 선보이는 가하면, 순수 예술가와 막나가는 남편 사이에서 실존을 고민하는 내면의 표정이 일품이다.

▲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조각가인 준구 앞에 선 민경역의 이유영은 신인임에도 적나라한 누드 연기를 선보이는 가하면, 순수 예술가와 막나가는 남편 사이에서 실존을 고민하는 내면의 표정이 일품이다. ⓒ 필라멘트 픽쳐스

"선생님, 사람을 표현하는데 꼭 옷을 벗어야 하나요?"
"그럼 뭘 입어야 하지?"

우리가 교과서에서 접했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알몸이다. 혹자는 '내 옷이 어디 갔을까?'라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나름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중세 시대나 근대에도 많은 조각상들이나 회화에서 누드는 필수였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자연 안에서 인간의 육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완벽한 미를 구현해 내려 했다.

해부학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머리와 몸통, 가슴, 팔과 다리 등의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찾았고 손과 팔, 허벅지와 종아리 등의 근육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신비를 표현해 내려 했다. 인간의 완벽한 균형과 비례를 구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를 보면 당시 자연에 속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옷을 입는다는 건 신이 허락한 완벽한 인체의 균형과 비례 감을 살리지 못할뿐더러 육체에 걸친 옷은 인간의 육체가 간직한 미를 표현하는데 거추장스럽다 생각했다. 미경은 준구가 설명해 주는 인체의 미에 대해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민경은 이제 준구의 예술적 호기심에 푹 빠졌다. 날마다 준구 앞에서 누드로 서 있지만 준구도 민경도 서로가 하는 작업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경의 삶은 너무나 팍팍하다. 베트남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고, 그런 민경의 집에 객으로 들어온 남편의 친구는 민경에게 끊임없이 폭력과 돈을 요구한다. 그래도 민경은 남편의 친구에게 끼니마다 밥상을 차려주며 그를 남편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민경과 순수함과 정숙의 아름다움, 준구와 함께 초록으로 물들다

얼핏 추측하기로는 민경이 정숙의 부탁으로 준구의 누드모델이 되면서 뻔 한 불륜 극이 될 것 같으나 영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준구와 정숙, 민경을 둘러싼 변하지 않는 사랑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 준구의 작업실 흰색과 초록의 대비는 영화 내내 그치지 않는다.

▲ 영화 속 준구의 작업실 흰색과 초록의 대비는 영화 내내 그치지 않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정숙은 준구와의 신혼 초에도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남편을 방해하지 않으려 개울가에서 새벽까지 기다리곤 했단다. 한 번도 남편의 작업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남편의 예술적 감성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정숙이 민경을 남편의 누드모델로 발탁한 것도 어쩌면 같은 여자로서 불안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으나, 정숙은 개의치 않고 남편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린다.

민경 또한 자신의 몸을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준구를 보며 믿음과 신뢰를 쌓게 되고 그녀만이 느끼는 예술작업에 대해 스스럼없이 질문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예, 사람의 몸만 보고도 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으심 겨? 지는 예, 사람의 얼굴을 봐야 그 사람이 화가 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알 수 있심더"

준구의 이야기는, 조각상에 얼굴 표정이 있으면 사람들이 얼굴을 보게 되고 몸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조각상을 만드는 이유는 자연의 내적 아름다움과 인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역동성, 심미성, 완벽한 비례와 균형에서 오는 근원적 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조각상의 얼굴은 만들지 않거나 간단히 맺음 짓고 만다.

이것은 고상한 예술 감상이 취미인 사람들의 과장된 감상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우리 같은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누드라는 조각으로 표현해 낸 예술작품의 창조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술은 오만하지도 고상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단지 소수의 취향으로 묶어두는 게 문제일 뿐이다.

준구 역을 맡은 박용우의 단순 명료하고 지나치게 변함없는 표정과 말투는 오히려 극의 몰입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아무래도 온몸의 마비 증세가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갈수록 언행과 표정의 차이가 없는 발연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

정숙과 준구의 언어적 소통을 뛰어넘은 사랑은 영화의 종반에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리 없이 눈물짓게 만든다. 정숙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준구와, 결혼 이후 제대로 된 부부로서의 정을 나누지 못한 데서 오는 정숙의 목마름은, 서로 이별을 준비하는 장면에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의 작업에 빠져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한번도 챙겨주지 못한 남편, 아내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도 하지 못한 말. "사랑...해요" 정숙 역시 남편의 이 말에 울음을 참으며 "사랑해요"란 말로 답한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한다.

▲ 영화 <여름 끝에 찾아온 봄>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의 작업에 빠져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한번도 챙겨주지 못한 남편, 아내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도 하지 못한 말. "사랑...해요" 정숙 역시 남편의 이 말에 울음을 참으며 "사랑해요"란 말로 답한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한다. ⓒ 필라멘트 픽쳐스

준구는 민경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정숙에게는 작업실에 정숙을 위한 편지 한 통과 그녀의 얼굴을 새긴 조각품을 남기고 떠난다.

민경과 정숙 사이에서 준구의 역할은 상당히 단조롭고 굴곡이 없는 역할이지만 왠지 공감 가는 캐릭터이다.

조각가로서는 한국에서 부와 명성을 모두 소유하였지만, 젊은 나이에 더 이상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자신을 극진히 보살피는 정숙과의 관계와, 누드모델이었던 민경과 잠시나마 예술에 대해 공유했던 소통의 시간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짐작해본다.

영화의 전체적인 화면은 초록색 바탕에 종종 하얀색이 덧입혀 칠해져 있다. 민경이나 준구, 정숙 등이 입고 나오는 옷은 거의가 흰색이며, 논길 사이로 나있는 길과 호숫가의 작업실도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너무 하얘서 카메라 번짐 현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거기에 호숫가의 물을 비롯해 산과 들판을 가득 채운 초록색은 금방이라도 작업실과 시골길의 흰색들을 물들일 것 같다.

영화는 차분하고 조용한 색감을 사용해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으로 남는다. 영화에 배치되어 있는 색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굳이 필요치 않을 만큼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영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한참 힘들 시절 소유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등장시켰다. 거기에 시대성과 어울리지 않는 한 유명 조각가의 예술작품을 드러내면서 이 둘을 대비시켜 주고 있다.

예술작품에 높낮이와 금액으로 분류되는 작품성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준구가 정숙에게 선물해 주고 간 작품은 내적 미를 찾아내려는 작업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었다. 이 행위는 민경이 준구에게 질문했던 말과 동일하다 자기는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만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준구는 민경을 통해 내적 아름다움보다 외적 아름다움에서 진정성을 발견한 것이다.

여름끝에 찾아온 봄 예술이란 김서형 이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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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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