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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6월, 시청 기자실에서 2기 서울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서울시정 2기 청사진 밝히는 박원순 시장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6월, 시청 기자실에서 2기 서울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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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시청 로비

"박원순 나와라, 박원순 나와라"

'혐오와 폭력에 서울시의 인권은 숨 쉴 수 없다', '다음 서울시장 선거는 만장일치'라고 적힌 피켓이 눈에 띄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 회원 30여 명이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출입 게이트로 몰려들었다. 시청 경위들이 이들의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회원들은 "박원순은 응답하라", "어디로 숨었나 박원순"을 외치며 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2. 9일 오후 4시 10분경, 서울 성동청소년수련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수련관 1층 로비로 들어오자 무지개행동 회원 4명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당신이 이러고도 인권변호사였어?", "시청 와서 면담하자"고 말했다. 박 시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날 박 시장은 1층 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장과 공무원의 독서 모임인 '서로(書路)함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기습 항의에 놀란 박 시장은 가까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머물렀다. 그 사이 공무원 30여 명이 강연장까지, 몸으로 길을 만들었다.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약 12분 뒤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왔다. 문이 열리자 무지개행동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여기서 시민들과 소통하겠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를 속여 왔다"고 외쳤다. 박 시장은 묵묵부답인 채 강당으로 들어갔다.

리더십의 위기... SNS도 개점휴업중

'독서모임 서로함께'의 진행을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 들어서자 성소수자 지지 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박 시장에게 사과와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박 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성소수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 승강기에서 항의 받는 박원순 '독서모임 서로함께'의 진행을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 들어서자 성소수자 지지 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박 시장에게 사과와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박 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성소수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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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면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맞닥뜨린 위기를 잘 보여준다. 무상 복지 갈등과 세월호 사고 후속 조치 등에서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던 박 시장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무산과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막말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다.

위기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먼저 불거졌다. 박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인권헌장 제정. 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넣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이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11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아래 시민위원회)가 다수결을 통해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한 인권헌장을 통과시켰지만, 서울시는 만장 일치에 의한 '전원 합의'를 시민위원회에 요구했다. 시민위원회는 반발하며 인권헌장 제정을 고수하고 있고,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박 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알려졌다. 일부 기독교 목사들과의 회동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맞게 된' 성소수자와 인권단체들은 지난 6일부터 시청 로비를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 시장이 이번 주 안으로 이들과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단체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이 없다... 돌파구 절실

현재 박 시장은 말이 없다. 무지개행동이 5일째(10일 현재) 시청 로비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농성장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9일 독서모임 강연장에서의 항의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 사용도 자제하고 있다. 박 시장의 트위터는 지난 7일, 눈 예보를 전한 이후 조용하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지난 1일, 서울역 노숙인지원센터를 방문한 소식을 올린 것이 마지막이다. 때문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박원순 시장, 실종됐다'는 비아냥 섞인 글이 회자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 상황의 원인을 박 시장의 만기친람식 업무스타일 탓으로 진단한다. 박 시장은 매사를 직접 챙기는 꼼꼼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게 지나쳐 작은 일에 집착하다보니 적기에 필요한 큰 그림을 못 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인권위원인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박 시장이 업무를 디테일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보니 일을 맡기고 협업하는 일에 소홀하게 된 것 같다"며 "모든 일을 본인이 다 챙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좌진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위기관리 능력이다. 현 상황에서 서울시민 인권선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어느 한 쪽의 반발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지금까지 서울시장 직을 수행하며 보여준 특유의 진솔함과 진정성으로 다시한번 소통과 경청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박 시장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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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레즈비언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잘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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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원순 시장, #인권헌장, #동성애, #서울시향, #서울역 고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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