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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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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과 땀에 절어 열차 칸을 헤매고 다니다가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잡고 앉은 곳에는 전부 외국인만 있다. 3명씩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좌석에는 러시안 가족과 독일인 그리고 내가 앉을 자리를 알려준 꽁지머리 일본 청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독일인과 일본 청년은 유창한 영어로 둘이서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안 가족은 나처럼 초보영어 회화 수준이었기에 비슷한 처지라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헌데 대화 상대들이 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과거 침략국가와 침략당한 국가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생각 끝에 외국인을 만나면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이전에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시켜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마치 인터넷에 입력된 정보가 전부로 여겨 내 머릿속에 입력된 편견의 지식들을 들이대고 있었다.

낡은 역사의 편견으로 본 다국적인들

그 낡은 역사의 편견으로 독일인을 나치로, 일본 청년은 제국주의 쪽발이를 연상하게 되면 그들 또한 러시안을 빨갱이로, 한국인인 나를 미 제국주의의 속국인쯤으로 연상하게 될 것이었다. 말수가 적어 보이는 독일인은 내내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열차표를 보여 달라며 친절하게 내 좌석 번호를 확인해준 일본 청년은 오랜 여행으로 다져진 맑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본 청년과 독일인은 조용조용 얘기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인도 여행길에 오른 남매, 러시안 가족은 모두가 유쾌 발랄했다. 닭 벼슬 모양으로 머리를 세운 러시안 청년, 유리게니는 뜻밖에도 불교 신자라고 한다. 가족들과 바라나시 주변에 자리한 스리나가르, 쿠시나가르, 부다가야, 룸비니 등의 불교 성지를 순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부처님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유리게니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영어 대화의 한계를 느낀 나는 동생 스님이 챙겨 준 반야심경을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틱낫한 스님의 해석이 붙어 있는 반야심경 책 뒷면에는 영어 번역본이 있었다. 그는 반야심경을 몇 구절 읽고 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아주 좋아했다.

반야심경 구절처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혹독한 인도 열차 타기 끝에 기분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부처님 말씀이 새겨진 반야심경 덕분에 나 너 분별없이 우리는 한 시간도 채 안 돼 서로 음식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나눠 먹는 사이가 되었다.

바라나시행 열차에서 만난 러시안 가족과 독일인.
 바라나시행 열차에서 만난 러시안 가족과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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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2시간 넘게 걸린다는 열차 시간을 염두에 두고 챙겨온 바나나와 오렌지를 꺼내 놓고 러시안 가족은 술과 빵을 꺼냈다. 소문대로 러시안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낸 술은 캔도 아닌 병맥주였다. 장난이 발동한 러시안 청년이 병따개를 찾다가 포기하고 맥주병 뚜껑을 창틀에 대고 후려친다. 다행히 병 모가지는 깨지지 않았지만 뚜껑이 그대로 있다.

"나한테 줘 보세요."

나는 라이터를 꺼내 들고 병맥주를 달라며 손짓을 했다. 라이터를 이용해 한 방에 뻥 소리 나게 따주었더니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렇게 서로 먹거리를 주고받아 가며 간단한 대화로 식사를 했다. 러시안 가족은 말할 때마다 하하하 거리며 호탕하게 웃어대곤 했다. 특히 러시안 엄마는 나와 얘기할 때마다 내 무릎이나 등을 탁탁 치면서 묻거나 대답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혼자 여행을 다녀요!"
"이제 50대 중반입니다."
"흰 수염 때문에 나이가 더 들어 보이네요, 우리 아들은 스물일곱, 딸은 스물셋, 당신은 나하고 두 살 차이 나요."

그녀가 나보다 두 살이 많다는 것인지 두 살이 덜 먹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러시안 가족들과 얘기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타 본적이 없는 시베리아행 열차 안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길게 이어진 바라나시행 열차. 곳곳에서 멈춰섰다.
 길게 이어진 바라나시행 열차. 곳곳에서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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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기차안에 올라 타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인도 아이.
 멈춰 선 기차안에 올라 타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인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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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등받이 좌석을 펼쳐 3층 침대칸을 만들어 각자 번호에 맞춰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안면을 튼 덕분에 간혹 도난 사고가 발생한다는 배낭 걱정을 풀어놓고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13시간 기차여행 후 바라나시 역 도착

얼마나 지났을까 열어놓은 차창 밖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이른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애당초 12시간 정도 걸린다는 열차는 중간 중간에서 수없이 연착하는 바람에 델리에서 출발, 13시간을 훨씬 넘게 걸려 바라나시 역에 도착했다.

러시안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오토 릭샤꾼들이 대기하고 있는 역 광장으로 나섰지만,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현지인처럼 생긴 내 겉모습 때문인지 릭샤꾼들조차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짐짓 바라나시의 지리에 훤한 여행자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릭샤꾼들에게 접근했다.

"강가, 메인 가트에 가려면 얼마면 갈 수 있나요?"
"이백 루피!"
"에이 무슨 소리요, 백 루피 오케이?."
"노!"

백 루피로는 턱도 없다는 표정으로 릭샤꾼들은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우다가 다시 그들에게 접근해 흥정을 했다.

"강가 메인 가트 주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까지 백오십 루피 오케이?"
"오케이!"

오토 릭샤에 올라타면서 다시 물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거기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바라나시 역에서 잡아 탄 오토릭샤가 어딘가 알수 없는 바라나시 강가 근처에 내려줬다.
 바라나시 역에서 잡아 탄 오토릭샤가 어딘가 알수 없는 바라나시 강가 근처에 내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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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비집고 달리던 오토 릭샤가 복잡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나는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말했기에 한국인 숙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못하고 무조건 내렸다.

릭샤꾼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잘 안다고 했기에 오토 릭샤가 멈춘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찾아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물어봐도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을 길이 없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게스트 하우스 이름이 뭡니까?"
"이름을 모르겠네요."

나는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 보면 그 너른 바라나시 강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 숙소를 찾는 것은 무리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는 오토 릭샤가 다닐 수 없는 복잡한 골목길을 한참 들어선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토 릭샤꾼에게 바라나시 강가 지리를 잘 아는 척 거드름을 피워가며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 숙소로 데려 달라고 했으니 "나는 바라나시를 전혀 모르는 생초보자니까 알아서 아무데나 버려두고 가슈"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위와 무거운 배낭에 짓눌려 바라나시 강가 근처의 미로나 다름없는 골목을 헤매고 다니다가 그 복잡한 골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다시 떠올렸다. 내가 릭샤꾼에게 잘 아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워가며 속였으니 당연히 그 또한 나를 속이지 않겠는가. 자업자득이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숙소를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잡기로 했다. 하지만 바라나시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다는 숙소를 알선해 주겠다며 접근해 오는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배낭족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를 찾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쪽으로 가보세요. 여기서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기 위해 미로 처럼 이어져 있는 바라나시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기 위해 미로 처럼 이어져 있는 바라나시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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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소똥이 널려 있는 바라나시 골목길
 곳곳에 소똥이 널려 있는 바라나시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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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현지인들이 가리키는 손짓을 따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무작정 걸었다. 릭샤가 멈춘 자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는 고사하고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게스트 하우스 밀집 지역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내게는 그 흔한 지도 한 장이 없었다. 인터넷이 터지는 손전화기가 있었지만, 그동안 함께 다녔던 젊은 친구들이 곧잘 활용했던 주변 검색조차 할 줄 모르는 어리숙한 중년 사내였다. 그렇게 대책 없이 소똥들이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퍼질러 있는 비좁은 골목길을 한 시간 가까이 헤매고 다녔지만, 그 어떤 게스트 하우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 골목길이 그 골목길 같았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미로에 갇혀 있다는 기분에 휩싸여 있을 무렵 동양인 여자 둘이 골목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다짜고짜 물었다.

"한국 사람입니까?"
"아닌데요, 중국 사람인데요."
"아, 그러세요, 혹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알고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디에 묵고 계시나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여자들은 자신들이 묵고 있다는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해 주겠다며 앞장서 걸었다. 그들이 친절하게 안내한 낡고 오래돼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건물에는 '요기로지'라는 낡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낯선 바라나시 거리 헤맨 끝에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 찾다

하지만 바라나시 강가 근처에서 구하기 힘든, 아주 저렴한 150루피에 불과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빈대가 득실거릴 것 같은 낡은 침대에 작은 식탁 하나 달랑 놓여 있는 형편없이 비좁은 방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그런 방이었다. 만약 한국인 숙소를 찾아갔다면 이 방의 두 배에 해당하는 300루피 이상을 줘야 했을 것이었다.

배낭을 풀어 놓고 낡은 시트가 깔려있는 침대에 누웠다. 천 년 도시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된 몸을 딱딱한 침대에 떠맡겼다. 천장에 붙어 있는 선풍기는 물론이고 창문에서 후덥지근한 바람이 몰려왔다.

한 시간 이상을 헤맨 끝에 중국인 여행객을 만나 저렴한 숙소를 잡을수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을 헤맨 끝에 중국인 여행객을 만나 저렴한 숙소를 잡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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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덥지근한 바람에 실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조차 까마득하게 다가왔다. 내가 아는 것은 조금 전에 헤매고 다녔던 미로와 같은 수많은 골목길이 전부처럼 여겨졌다. 카르마나 다름없는 낡은 노트북이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낯선 골목길을 헤매고 다닌 시간이 한 세월을, 한 생을 보낸 것처럼 아뜩하게 다가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바라나시, 나는 바라나시의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곳에 누워 있다. 그동안 나는 살아오면 주로 내가 아는 길, 내가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내가 아는 길이 전부였고 아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들과 함께 가는 길이 전부라 믿고 있었다. 그런 나를 떠올려 놓고 보니 지금의 내가 낯설고도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제 비로소 인도에 와 있다는 느낌과 피로감이 기분 좋게 몰려오면서 내가 원하는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낯선 곳에 내동댕이쳐 준 릭샤꾼이 고맙게 다가왔다. 그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익숙한 내가 아닌 낯선 나를 기분 좋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태그:#바라나시 열차, #유쾌한 러시안 가족, #오토릭샤, #바라나시 골목길, #바라나시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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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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