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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여기 한 아기가 있다. 편의상 X라 이름하자.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엄마는 직장으로 돌아가고 X는 보육원에 맡겨진다. 맞벌이 부부인 아빠와 엄마는 경제적 압박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린다. X와 함께하는 시간은 고작 퇴근한 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저녁 시간뿐이다. 가을철과 겨울철이 되면 X는 자주 귓병을 앓는다. 엄마는 아픈 아기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고, 그럴 때마다 일을 못 하게 된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공양희 옮김/ 도서출판 민들레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공양희 옮김/ 도서출판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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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로맨틱한 출발은 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부부싸움이 늘어간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자 일시적으로 마찰은 완화된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결국 X가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엄마 아빠는 갈라선다.

X는 다섯 살이 되는 해 근처 유치원에 들어간다. 학년 중간쯤 이르자 담임교사는 X가 모든 수업 시간에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해가 끝나갈 무렵 X는 초기 천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성적과 행동 발달에 대한 염려는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이내 옮겨진다.

알바니 프리스쿨의 교장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쓴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20세기 말 미국 어린이의 판에 박힌 일상을 보여주는 초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X의 가족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갈 관계망이 없었다. 크리스는 어린이들의 실존의 위기는 공동체의 상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것인데, 인간의 탐욕과 경제 논리 때문에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크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종교, 인종, 계급, 여성과 남성 등 아이들을 둘러싼 문화 속에서 교육이 회복해야 할 것은 공동체라고 짚는다. 함께 모여 함께 버티며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각자가 만나게 되는 저항을 기꺼이 극복해 가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공동체에 필요하다고, 특히 교육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4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을 놓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참석자들은 X의 사례가, 우리 현실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데 공감했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나눴다. 내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하기를 갈망했지만,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환경 속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어 답답함을 느껴왔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을 놓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참석자들은 교육과 공동체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을 놓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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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성과 관계성이 파괴된 현실

이전 시간, 참석자들은 진정한 자유는 나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만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와 권위는 분리된 게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거라고도 했다.(관련 기사 : 10남매 중 9번째, 애정결핍 이 아이가 달라진 힘)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우리 대부분은 개인의 고유성과 타인과의 관계성을 파괴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새들마을학교 최봉실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관계성이 극도로 파괴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세월호 사건이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믿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는 것은 두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기쁘게 서로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어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는 게 사는 길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슬픈 일입니까."

그는 관계성이 파괴된 현실에서는 개인의 고유성도 발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의 고유성이 진정으로 꽃피우려면 사랑과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한 존재의 고유성은 발현되고 성장되고 창조될 수 있다고 최 교장은 강조했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읽고.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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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프리스쿨에서 아이의 천성을 강조한 것을 미국의 교육사적 맥락에서도 짚어 보았다. 다양한 인종과 계급 배경 속에서 인종 차별과 계급 차별을 없애고 동일한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려는 시도가 19세기 미국의 보통학교 운동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 계층으로 획일화시키는 교육이 되고 말았다. 모두를 위하려는 교육은 그 시대 특정인들의 사회적 이념과 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제도의 틀에 끼워 맞추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교육은 언제나 다시 한 시대 제도와 이념에 복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의 천성을 강조하는 크리스의 교육은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의 천성을 강조한 것은 사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맥이 맞닿아 있다. (관련 기사 : 사대주의 버리고 선배들과 함께) 개인의 고유성을 발현시킨다는 말과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 다만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한 전자의 표현은 개인주의적 사상으로 흐르기 쉽지만, 후자의 표현인 홍익인간은 관계성을 놓치지 않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인류가 지향할 수 있는 참된 교육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을 분별하고 분노하라"

그렇다면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처참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꿔내야 하는 것일까. 최 교장은 우선 현실을 냉철하게 분별하고 분노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부정적인 환경과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 기사 옆에 계속 선정적인 이미지가 뜹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기사를 읽으라고 하기가 민망합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신문이라도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기가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독자가 돈을 많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내는 운동을 벌이는 건 어떨까요. 부정적인 문화 속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싸워야 합니다."

최봉실 교장은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 일상에서 공의를 세워가야 한다고 했다.
 최봉실 교장은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 일상에서 공의를 세워가야 한다고 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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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지적한 것은 자존감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일·독재 시대를 겪으며 자존감을 박탈당해 왔다.(관련 기사 : 고구려의 '선배'는 왜 조선의 '선비'에게 밀렸을까) 최 교장은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만 제대로 배워도 자부심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진실을 가리고 분단 유지를 통해 불안을 조장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이 현실은 역사를 복원하고 회복하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 우리 안에 이미 이 부정적 현실을 극복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는 건 먼 곳에서 찾을 게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의 현실에서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부터 시작해 갈 수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문제, 가정을 꾸리는 문제, 친구와의 갈등, 직장에서의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결해 가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쌓일 때, 본질을 분별하고 어떻게 문화를 바꿔가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최 교장은 강조했다.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부터 공의를 세워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 무감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죄가 합당하게 물어지지 않는 현실들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최 교장은 나부터 철저히 공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관계 속에서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이들에게는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돌이킬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진실해지지 않고, 진실이 바로 서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치인들과 대통령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해봤자 소용없다고 하는 포기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 안에서, 형제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교에서부터 공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 앞에 고개를 숙이고 함께 기쁨에 이르는 훈련을 치열하게 해야합니다. 이렇게 공의를 세워 가는 투철한 정신과 실천하는 삶의 기운으로 불의한 정치인들을 압박해 가야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최 교장은 인격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따랐고, 극단적으로 물질과 쾌락에 탐닉하는 문화를 방치하고 있다. 미국을 사대한 결과, 천박한 인격들이 발생했다. 경비원에게 모욕적인 말을 거듭해 결국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고,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너무도 쉽게 댓글로 쏟아내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격 자체가 파괴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된 인문학 교육이 중요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알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추구를 할 때 다른 이를 파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를 깨닫고,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기쁨을 누리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그 기반 위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어떤 삶을 걸어갈 것인지 정해 가는 것이다. 인격적 성숙함의 기반 없이 아이들을 만나려고 하고 진로를 정하려고 해봤자 답은 찾아지지 않을 거라고 최 교장은 말을 맺었다.

"책을 읽다 보니 제가 우리 학교에서 잘 배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 중학교 3학년 참가자. "책을 읽다 보니 제가 우리 학교에서 잘 배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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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음 시간(11월 21일)에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서론부터 4부까지를 읽고 토론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더 깊이 관계성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프리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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