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파라마운트 픽쳐스


* 기사에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미국의 어느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다. 양키스 연고지인 뉴욕에서 가까운 마을, 정확한 연도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근 미래의 지구는 환경 악화와 식량 부족으로 황폐해져가고 있다. 많은 직업과 기계들이 사라졌으며 엄청난 황사로 인해 사람들은 창문을 자유롭게 열지 못하며 산다. 상당수 젊은이들의 장래희망은 농부인데, 농작물 작황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지구에서 한 가족이 조명된다. 한때 파일럿이었던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조종 잘못으로 사고가 났었던 거다. 이런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이미 알고 있는 어린 딸 머피(맥켄지 포이 분)는 아버지를 닮아 똑똑하고 탐험가적인 기질이 있다.

이 부녀를 통해 영화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탐험가로서의 기질을 타고난 쿠퍼에게, 황폐해진 지구를 대체해 지구인들을 이주시킬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일은 하나의 운명과도 같이 여겨진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자연과학적 현상들에 관심이 많은 머피는 자신의 방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에 주목한다. 서고에 꽂아놓은 책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는 것. 어떤 법칙을 지닌 책들의 낙하 현상은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말해준다.  

그건 바로 중력이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가만히 있던 책들이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어떤 신호를 보내는듯하다. 쿠퍼와 머피는 이 신호를 좌표로 해석해 결국 숨겨져 있던 나사(NASA)를 방문하게 된다. 영화 속 나사는 아폴로 달 착륙이 사기극으로 드러난 이후 국민들의 시선을 피해 비밀리에 작업을 수행해왔다. 나사가 꾸미고 있던 건 황폐해진 지구 대신 새롭게 살 수 있는 행성을 마련하는 것이다. '플랜A'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쿠퍼와 머피가 만난 브랜든 박사 부녀와 여러 과학자들은 '플랜A'를 위해 그동안 우주로 여러 우주인들을 보내 새로운 행성을 찾아왔음을 밝힌다. 누가 봐도 '플랜A'는 실패 가능성이 현저한 프로젝트다.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사 측 과학자들은 '플랜A'가 실패할 경우 '플랜B'를 시행할거라 말한다. '플랜B'는 지금의 지구인들을 멸종하게 내버려 두고, 소수의 지구인들만 새로운 행성에 살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뜻한다.

결국 쿠퍼는 '플랜A'를 성공시켜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지구에 남겨진 가족들이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쿠퍼가 우주로 떠난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였을까,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서였을까.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전자 때문일 거라 여기기 쉽지만, 후자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쿠퍼는 브랜드 박사 등과 함께 일종의 우주 정거장인 인듀어런스호로 떠난다.

이제는 익숙한 우주, 하지만 놀란의 연출력은 놀랍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브랜든(앤 해서웨이 분)과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브랜든(앤 해서웨이 분)과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 ⓒ 워너 브러더스, 파라마운트 픽쳐스


<인터스텔라>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관심은 '우주'로 향했던 모양이다. <메멘토>를 통해 '시간'을 가지고 놀았던 놀란 감독은 <인셉션>으로 '꿈'을 흥미롭게 해석했고, 이제 <인터스텔라>를 통해 지구와 우주의 별들 사이를 탐험하게 된 것이다.

'인터스텔라', '별과 별 사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제각각 하나의 소우주이자 별이라는 시구도 있지 않나. 결국 영화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로 자신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의 사이를 보다 가까이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모험적인 시도는 현재까진 성공적이다.

대한민국에서만큼은 그렇다. 개봉 일주일도 안 돼 200만 관객을 넘겼다. 사실 <인터스텔라>는 미국 SF 영화로서 그리 크게 새롭지는 않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디스토피아적인 우주인들의 모습과, <혹성탈출>에서 보여줬던 상대성 이론, <스타워즈>를 통해 겪은 바 있는 수다스러운 로봇과 <아마겟돈>에서도 나왔던 지구를 구하려는 딸 가진 아버지, 그리고 <그래비티>와 <콘택트> 등을 통해 익숙해진 우주와 우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

<인터스텔라>는 그런 모든 것들을 참고해 한 영화에 담았다. 아니, 그래서 새롭게 여겨지는 것일까. 사실 이 영화는 서사적 구성면에서는 평범한 작품이다. 크고 작은 반전들은 영화 좀 본 이들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물론 놀란 감독은 탁월한 연출력으로 그런 평범함도 비범함으로 바꿔놓는다. 그런 게 <인터스텔라>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관객들이 선택한 이 영화의 매력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여러 과학적 이론들은 허점을 지적받고 있다. 웜홀이나 블랙홀 등을 오래 연구해온 이들에게 이 영화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영화는 과학 이론서가 아니다. 과학 이론서는 납득을 시키지만 영화는 꿈을 꾸게 만든다. 과학 이론 이전의 영역이다. 대단한 과학 이론뿐 아니라, (영화 전반부에서) 바퀴에 펑크 난 자동차가 커브를 돌며 전력질주를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인터스텔라>는 그런 영화다.

1800억 원짜리 SF영화를 이끄는 힘은 '사랑'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놀란 감독은 이 영화의 상당수 장면들을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80년대의 SF영화를 보는듯한 질감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스 짐머가 맡은 영화음악은 보는 이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지구와 우주를 둘러싼 미지에 대한 공포심을 돕고 있다.

한마디로 고독한 영화다. 인류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다루며, 아무 생물도 아무 소리도 없는 고독한 우주공간이 주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력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놀란 감독의 연출력도 있지만, 이 영화가 '사랑'과 '블랙홀'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인류에 대해 희망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랑'. 이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인 사랑은 아예 극 중 인물인 브랜든(앤 해서웨이 분)의 대사를 통해 전면에 등장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고 기다리게 한다. 인내하게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싶어 찾아가게 한다. 말하자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힘이 '사랑'이다.

놀랍게도 이런 보편적 사랑의 의미가 거대하고 복잡해 보이는 이 1800억 원짜리 SF 영화를 이끌어가는 양자 에너지가 되며, 과학적 오류와 영화적 허점이 많은 이 영화의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블랙홀'은 어떤 의미인가. 이미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인류는 웜홀도 만들고 블랙홀도 만들고, 못 만드는 게 없을 정도로 과학적 기술력을 지닌 이들이다. <인터스텔라>는 그런 기술력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런 기술력을 왜 발휘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두려움의 상징인 블랙홀을 하나의 돌파구로 사용한다.

사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선입견에 경도된다면 이 영화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인류가 두려워하지만 미래를 위해 도전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블랙홀을 활용했다. 어두운 현실로 인해 미래가 없다면, 이제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것을 긍정적으로 접근할 줄 아는 모험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런 모험의 방법이 바로 사랑이다.

하다못해 영화 속 로봇인 타스와 케이스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 9000'처럼 인류에 위협적이지 않다. 과학이 상당히 발달해 지구 밖 행성에 새로운 인류의 터전을 마련하는 시대에도 서로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우주를 배경으로 황폐해진 미래만 그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따뜻한' 인간들이 그 미래를 어떻게 반전시키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은 때로는 고독하지만 아름답다. 국내 관객들에게 <인터스텔라>가 인기를 끄는 건 알 수 없는 우주 세계에 대한 멋진 판타지 영화를 기다려왔기 때문이거나, 놀란 감독 영화에 대한 신뢰감 때문일 수도 있다. 놀란 감독의 말처럼 '한국 관객들이 과학에 관심이 많아서'일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영화의 국내 흥행 요인은 '사랑'이 아닐까.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과학적 이론보다, 어떤 사람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는 두 글자. 그 사랑이 백년 넘게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 믿었던 딸의 사랑이든, 사랑하는 여자가 보고 싶어서 우주로 떠나게 되는 한 남자의 사랑이든 말이다. 어쩌면 놀란 감독의 어떤 사랑이 <인터스텔라>라는 블랙홀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전해져서일지도?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익스트림무비 '인터스텔라' 게시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앤 해서웨이 매튜 맥커너히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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