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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거지 취급당하고 무작정 시골 마을을 찾아 나섰다. 맥간에서 버스로 30여분 떨어져 있는 텔마레이 마을.
 인도 거지 취급당하고 무작정 시골 마을을 찾아 나섰다. 맥간에서 버스로 30여분 떨어져 있는 텔마레이 마을.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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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행에서 숙소로 돌아와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한국인 여행자가 입실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은 열리지 않고 창문 커튼이 열렸다. 그는 커튼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게 손짓한다.

'저리 가! 저리 가!'

그의 손짓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분명 손 내미는 거지를 쫓아낼 때의 그런 손짓이었다. 그 손짓과 함께 이내 매몰차게 커튼을 닫아 버린다. 황당했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다시 방문을 두들겼다. 푸하하 유쾌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한국 사람 아니세요?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 보세요."

잠시 후 문이 빼꼼 열렸다. 방문 고리를 잡고 고개만 내밀고는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짜 한국 사람 맞습니까?"

봉두난발의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추레한 내 옷차림을 보더니 그는 내가 인도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인도로 올 때 큰 아이가 입고 다녔던 패딩 잠바와 아래 위 한 벌만 걸치고 왔다. 본래 거지처럼 싸돌아다닐 작정이었기에 그 옷을 외출복 겸 잠옷으로 입고 자고... 일주일째 한 번도 빨지도 않았다.

한국 사람도 인도 사람으로 착각하는 내 모습

북인도 추위를 대비한 패딩 잠바와 옷 한벌을 챙겨왔다. 델리에서 부터 줄곧 입고 자고 했던 옷차림으로 지냈기에 맥간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로 부터 인도 거지 취급을 당했다. 델리에서 찍은 사진. 델리에서는 그나마 옷이 멀쩡했다.
 북인도 추위를 대비한 패딩 잠바와 옷 한벌을 챙겨왔다. 델리에서 부터 줄곧 입고 자고 했던 옷차림으로 지냈기에 맥간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로 부터 인도 거지 취급을 당했다. 델리에서 찍은 사진. 델리에서는 그나마 옷이 멀쩡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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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건네준 흰색 윗도리는 땀과 먼지, 매연으로 이미 땟물에 절 대로 절어 거무스름해졌고, 바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0여 년 전 아이들 엄마가 밤색 천을 이용해 대충 재봉질해서 만든 농사용 헐렁한 바지였는데 그것도 인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한 귀퉁이가 찢겨 있었다.

"내 꼬락서니 때문에 인도 거지 줄 알았네유?"
"그냥 뭐....."

말끝을 흐리고 있는 그의 방안에는 커다란 배낭 두 개가 보였고, 침상 주변에는 취사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인도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취사도구를 가지고 다니며 직접 한국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두 개의 배낭 무게가 무려 30kg이 넘는다는 것이다. 묵직한 구형 노트북이 딸려있는 내 배낭 무게보다 두 배 가까이 된다. 그가 짊어지고 다니는 배낭은 전쟁터로 나서는 군인들의 완전군장 무게나 다름없었다.

부산인가 대구에서인가 왔다는,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이 더 많은 그와 통성명을 하고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내가 현지인을 닮긴 닮았나 보구먼, 한국 사람들이 나는 무서워하고 있고 더구나 인도 거지쯤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인도 사람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도 거지를 위협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음날 나는 젊은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맥간 주변의 작은 농촌 마을을 찾아 단독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우리 일행 중에 한 젊은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낯선 마을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한국 사람이 나를 인도 거지 취급하는데 걱정할 게 뭐 있겠어?"

맥간 버스 터미널에 앉아 버스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버스 운전기사나 현지인들에게 짧은 영어로 구걸하듯 물었다.

"맥간 주변의 작은 농촌 마을로 가려 하는데 어느 버스를 타야 합니까?"

두 시간 정도 빈둥거린 끝에 맥간에서 30여 분 거리에 있다는 텔마레이(현지인들 발음 그대로 옮긴 지명이다)라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텔마레이라는 작은 마을은 맥간과 또 다른 절경을 펼쳐 놓고 있었다.

트리운드(Triund) 가는 길목에서 만났던 히말라야 설산보다도 더 가까이에 설산이 펼쳐져 있었다. 높고 우뚝 서 있는 설산을 배경으로 제법 큰 게스트하우스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었고, 그 중심으로 몇몇 작은 식당과 구멍가게들이 보였다.

언덕위에 상팔자로 퍼질러 누워 있는 개들 앞으로 펼쳐져 있는 마을앞 사원과 델마레이 설산
 언덕위에 상팔자로 퍼질러 누워 있는 개들 앞으로 펼쳐져 있는 마을앞 사원과 델마레이 설산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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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는 작은 사원이 들어서 있다. 그 앞, 전망 좋은 언덕 위에 개 몇 마리가 퍼질러 잠들어 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따로 없다. 나는 개들 옆에 상팔자로 퍼질러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붉은 천가방 하나 달랑 걸쳐 메고 개들과 함께 퍼질러 있는 나를 힐금힐금 쳐다본다. 나도 그들을 본다. 눈길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구름이 오락가락, 힘 있게 뻗어 있는 설산과 낯선 사람들과의 무언의 소통에 재미를 붙이다가 20여 채의 가옥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언덕 뒤편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다들 마켓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마을에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낙네들이 집안을 지키고 있다. 키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만난 아낙네들이 난데없이 "나마스떼(안녕하세요)"를 남발하고 다니는 이방인을 미소로 반겨준다.

미소를 보여준 아낙들... 집까지 초대해 '짜이' 대접

마을에서 만난 인도 여인들. 사진을 찍으면서도 뜨개질 하는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인도 여인들. 사진을 찍으면서도 뜨개질 하는 손을 놓지 않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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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하고 있는 세 명의 아낙네들에게 다가가 내가 사진기를 꺼내들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진기 앞에 활짝 웃어준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여전히 뜨개질하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산간 마을이 그렇듯이 이 마을 주변에는 너른 농지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집 주변 곳곳에 작은 텃밭들이 딸려 있다. 텃밭 대부분에는 한창 피어오르고 있는 유채꽃과 함께 겨울을 이겨낸 마늘이 푸르게 올라오고 있다.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 언덕길 아래에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낙네를 만났다.

산간 마을의 텃밭에 마늘이 심어져 있다.
 산간 마을의 텃밭에 마늘이 심어져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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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돌다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로부터 인도차 짜이를 대접 받았다.
 마을을 돌다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로부터 인도차 짜이를 대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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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내가 사진기를 내보이자 아이 엄마가 집으로 내려오라는 손짓을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마당 앞으로 너른 들과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집 안 거실에서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재봉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짧은 영어로 내게 물었다.

"어디서 왔나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을 아세요?"
"모릅니다."
"어떤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
"나, 역시 영어를 잘 못합니다."

나보다 영어가 짧은 아이 엄마가 인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짜이를 내온다. 한국의 시골 할머니들이 마시는 커피처럼 무척 달았지만, 나는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맛있다고 치켜세웠다. 무언의 대화로 서로 웃어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집 아줌마가 마실을 왔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영어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요? 무슨 일로 왔나요?"
"여행자입니다."
"인도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일 주일 됐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나요?"
"한국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농사일은 작년부터 손을 놓고 있습니다."

나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웃집 여인네와 기초 영어 회화반 친구처럼 서툰 영어를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깔깔거렸다. 그러자 아이 엄마와 할머니의 얼굴빛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깟 영어 몇 마디 때문에 졸지에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우리 집 손님인데, 니가 왜 설쳐대고 있냐.'

이웃집 아줌마를 바라보는 눈빛이 대략 그랬다. 나는 즉시 사태 파악을 하고 눈치껏 화제를 바꿨다.

"재봉질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도 될까요?"

아이 할머니가 돌리던 재봉틀. 이웃집 마실 나온 아낙네와 수다를 떨다가 미움을 사는 바람에 재봉질 하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 할머니가 돌리던 재봉틀. 이웃집 마실 나온 아낙네와 수다를 떨다가 미움을 사는 바람에 재봉질 하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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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줌마의 통역을 통해 들은 할머니가 재봉틀 앞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거절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무안해서 잠시 어색하게 있는데, 이웃집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짜이 한 잔 더 하겠습니까?"
"아,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맥간으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 때문에 안 됩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봤다. 맥간으로 돌아갈 버스 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하지만 이웃집 아줌마를 따라나선다면 집으로 초대해 준 아이 엄마와 할머니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것 같았다. 나는 아이 엄마와 할머니에게 거듭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이 애매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내게 미소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아무런 조건도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아닌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만난 산촌 사람들, 그들의 미소가 아까 마셨던 짜이만큼이나 달콤하게 다가왔다.

나는 마을을 빠져나와 언덕 위에 누워 있는 개들 틈에 앉았다. 언덕 위에서는 버스가 오고 가는 것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생각 없이 멍 때리기를 즐기고 있는 틈을 타, 어느새 마을에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마을에 산 그림자가 내려앉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목초지에 풀어 놓았던 가축들을 몰고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맥간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잘못 탔지만...

당나귀를 몰고 가는 인도 사람. 산그림자가 마을에 내려 앉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다들 풀어 놓은 가축들을 몰고 집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나귀를 몰고 가는 인도 사람. 산그림자가 마을에 내려 앉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다들 풀어 놓은 가축들을 몰고 집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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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언덕 위에 누워 있던 개들이 앞다리를 쭉쭉 펴가며 슬금슬금 일어서기 시작했다. 코를 벌름거리며 내 주위를 빙빙 돌던 녀석들이 갑자기 컹컹 짖어 대며 언덕을 뛰어 내려간다. 어느 짐승인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나 보다. 잠시 후 개들이 뛰쳐나간 길을 따라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맥간으로 향하는 버스 시간이 39분이나 남아 있었기에 나는 개들과 달리 슬금슬금 언덕길을 내려가 종점에서 버스를 돌려놓은 기사에게 물었다.

"맥간으로 갑니까?"
"다람살라로 갑니다."

옆에 있던 차장이 끼어들었다.

"맥간으로도 갑니다. 버스가 곧바로 출발하니 타세요."

나는 맥간을 거쳐 다람살라로 가는 버스로 알고 금방 출발한다는 버스를 잡아탔다. 맥간으로 가는 버스 시간과 얼추 같은 시간이었다. 버스는 5분도 채 안 돼 출발했다. 중간에서 몇몇 사람이 올라탔다.

맥간을 거쳐 간다는 차장의 말에 따라 무작정 올라탄 버스. 잘못된 버스였지만 티베트 여인의 미소를 만날수 있었다. 그 보살의 미소를 떠올리며 먼지 풀풀 나는 인적없는 신작로를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맥간을 거쳐 간다는 차장의 말에 따라 무작정 올라탄 버스. 잘못된 버스였지만 티베트 여인의 미소를 만날수 있었다. 그 보살의 미소를 떠올리며 먼지 풀풀 나는 인적없는 신작로를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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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오르는 한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얼떨결에 나도 따라 웃으며 목례를 했다. 그녀의 미소는 마을에서 만난 여인들의 미소와 또 달랐다. 빨려들어 갈 듯한 그윽한 눈빛과 미소는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평범한 티베트 여인네들의 전통 의상 '츄빠'에 '빵댄'이라 불리는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내 뒷좌석에 앉았다. 50대 중반쯤 됐을까.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눈빛과 미소를 사진기에 담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금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미소를 보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그녀의 눈가에 잡힌 주름살조차 아름다웠다. 나는 공연히 창 밖에 사진기를 들이대고 도로를 점거하다가 어슬렁어슬렁 비켜서고 있는 소들에 초점을 맞춘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해볼까. 하지만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나는 티베트 여인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도로를 점거하다가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길밖으로 비켜서는 소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댔다.
 나는 티베트 여인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도로를 점거하다가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길밖으로 비켜서는 소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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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여기서 내려요!"
"예? 나요?"
"그래 당신, 여기서 내라고요."

티베트 여인의 미소에 취해 있는 내게 버스 차장이 거듭해서 말했다.

"여기 맥간 아닌데요."
"저, 길로 곧장 걸어가면 맥간이 나옵니다."

차장은 저 길이 맥간으로 가는 길이라며 손짓을 했다. 버스는 내가 내리지 않으면 곧장 출발할 기세였다. '맥간을 거쳐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질 틈도 없이 서둘러 버스 출구 앞으로 나서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티베트 여인이었다. 그녀가 내게 미소를 건네며 뭔가를 내밀었다. 사진기 보호집이었다. 서두르는 바람에 버스 바닥에 흘렸던 것이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건네지도 못한 채 급히 버스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다. 그녀 역시 내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를 보낸다. 순간 나는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띤 보살상을 떠올렸다. 아니, 그 어떤 그림이나 조각이 저 자애로운 미소를 본 뜰 수 있겠는가. 그녀의 미소는 살아있는 보살의 미소였다.

맥간과 다람살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버스가 아니라 그녀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도로 양편으로 몇몇 식당과 구멍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지역에서 차장이 손짓으로 알려준 맥간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낯선 곳에 내려준 버스 차장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내가 차장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맥간 가는 버스를 제대로 탔다면 어찌 저 티베트 여인의 미소를 만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신작로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어두운 산 그림자를 밟고 걸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히말라야 설산을 나침판 삼아 어둠이 다가오고 있는 신작로를 걷고 또 걸었다. 인적 없는 신작로 위로 아주 뜸하게 지프나 트럭이 탈탈거리며 다가와 뽀얗게 먼지를 쏟아내고 사라졌다. 그들은 더러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내게 번득이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맥간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를 인도 거지 취급했던 한국인 중년 사내가 내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이렇게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혼자 밤길을 걷다가 알몸으로 발견되었다는 등 흉흉한 소문이 자자한 인도에서 그것도 어둠이 내리고 있는 인적 없는 낯선 길을 혼자서 걷다니... 겁을 상실한 놈, 정신 나간 놈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정신 나간 놈처럼 맥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목구멍이 따끔거릴 만큼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티베트 여인의 미소를 떠올리며 걷고 또 걸었다. 그 티베트 여인의 미소가 어둠이 깔리고 있는 인적 없는 신작로 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사람만큼 두려운 존재가 어디에 있겠으며 또한 사람만큼 자애로운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마음으로 길을 가느냐의 선택은 결국 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태그:#인도거지, #산간 마을, #순박한 인도 여인들, #티베트 여인의 미소, #두려움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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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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