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무 살 겨울방학, 나는 '마트알바'를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앞두고 용돈벌이가 필요해 알바구직사이트를 뒤져서 찾은 일자리였다. 2005년 당시 롯데리아 시급이 3100원(8시간 근무시 2만4800원)이었는데 와인선물세트는 8시간 근무에 일급이 무려 6만 원이었다. 짭짤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롯데리아 알바부터 전단지 알바 등으로 비교적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마트알바는 색달랐다.

정글과도 같았던 마트알바의 세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업체에 이력서를 넣고 제품 설명을 들은 뒤 출근을 했다. 대부분의 명절 알바는 단기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업체나 중간 인력회사를 통해 마트에 들어가 면접도 보고 교육도 받지만 '서면 근로계약서'는 쓴 적이 없다. 10일 동안 일하기로 하고 매출이 나쁘면 이틀 만에 잘리기도 한다.

명절 때 마트 직원들은 모두 바빠 초짜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거들떠도 안 본다. 물어물어 교육장을 찾아 교육을 듣고 이름표를 받았다. 마트 내 시설이나 고객응대 방법을 모두 외워 적어낸 뒤에야 이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출근 날, 나는 이곳이 '정글'이란 걸 알게 되었다. 타 업체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같은 곳 말이다. 선물세트 매대는 제품별로 모여 있는데 주류는 와인 업체 5곳과 양주 업체 4곳, 전통주 업체 4곳이었다.

명절 기간 동안 마트에서 두세 번은 큰 싸움이 난다. 옆 매대 물건을 폄하하거나, 이미 물건을 고른 손님을 설득해 자기 제품을 파는 사람들 때문이다. 내 물건만 잘 팔면 될 게 아니라, 옆 업체 물건을 살 고객을 함부로 뺏으면 안 되고 뺏겨도 안 된다.

대학교 4학년 때 학비 마련을 위해 다시 마트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친한 언니의 권유로 시음부터 판촉까지 주말 알바는 다 했다. 그렇게 주말 알바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명절 선물세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마트 알바에도 상도덕이 있다... 자칫하면 "개념없다"

지난 설 백화점 진열대에 놓인 전통주들.
 지난 설 백화점 진열대에 놓인 전통주들.
ⓒ 남기인

관련사진보기


업체마다 부르는 일급은 다 다르다. 명절 마트 알바는 일급 6만 원에서 많게는 8만 원까지 받는다. 그래서 '꿀알바'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일급이 높은 일자리는 의심부터 해야 한다. 매장 내 경쟁이 심해서 오래 못 버티거나, 근무조건이 열악해 마트 직원 몫까지 일해야 하는 사업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와인 코너에서 3년째 명절을 보내고 있다. 알바가 잘해야 매출이 오른다는 걸 업체도 알기 때문에 경력이 있는 경우 높은 일급을 받을 수 있다. 잘 파는 베테랑은 제품 설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옆 판매대 도우미를 잘 구스르거나, 완력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백화점에 일하러 갔던 동생은 알바하는 동안 내내 땅바닥만 쳐다봤다고 한다. 고객의 발이 옆 판매대에서 제 쪽으로 넘어와야만 제품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 타 업체 물건을 보는 손님에게 인사했다는 이유로 다른 알바한테 "개념없다"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업체가 주는 인센티브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비싼 제품은 하나 팔 때마다 1000원씩 인센티브를 붙여주거나, 완판(제품을 다 파는 것)을 하면 일급을 만 원씩 올려주는 식이다. 완판을 했을 경우에는, 일을 쉬어도 일급을 준다. 10일 동안 행사를 하는데, 8일 만에 완판하면 2일을 쉬어도 일급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알바가 완판을 목표로 일하게 되고 경쟁도 과열된다.

싸움도 많고 치사한 일도 많다. 일부러 타 업체의 종이가방이나 증정품을 망가트리거나 숨기기도 한다. 스무 살과 서른 살짜리 알바가 서로 싸우기도 한다. 인센티브 앞에는 나이도 경력도 없이 모두 경쟁자다. 명절마다 '도떼기시장' 같은 광경이 펼치지는 이면엔 모두 '인센티브'가 있다.

3년 동안 6번의 명절 알바, 판매왕의 경지에 오르다

최근 3년 동안 6번의 명절을 지내면서 친한 언니와 나는 '판매왕'의 경지에 올랐다. 앞에서 열거한 싸움과 경쟁은 '초짜'나 하는 짓이다. 요령이 생기면 경쟁 업체 도우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경쟁 업체에 초보가 들어오면 밥도 사주고 오래 쉬고 오라고 부추긴다.

쉬는 시간은 4시간마다 30분으로 정해져있지만 창고를 왔다 갔다 할 일이 많은 명절 때는 누가 얼마나 쉬는지 감시하는 직원도 없다. 반대로 매출압박으로 쉬는 시간도 반납한 채 일하기도 한다. 일급만 받으면 되는 초짜 알바들은 사양 않고 쉬러간다.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완판종결자'들은 10시 출근 10시 퇴근을 불사한다.

경쟁업체가 쉬러 가면 그동안 내 제품을 판다. 자리를 비운 타 업체 제품을 안 좋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예의상 한두 개 대신 팔아주고 평소에 맛있는 걸 사주고 잘해주면 내가 없을 때도 내 물건을 팔아준다. 치사하지만 싸움이 나는 것보단 평화로운 방법이다. 그렇게 나와 언니는 2년 동안 이런 방법으로 완판을 쳤다. 물론 업체의 매출 압박도 심하다. C인력업체는 명절마다 전국에 있는 알바 카톡방을 만드는데, 카톡으로 매출을 보고하게 하고 경쟁을 붙인다. 매출 때문에 인격적인 모독을 받을 때도 많다.

근무조건은 마트마다 다르다. 9시간 근무에 30분 휴식 두 번, 점심시간 1시간은 어딜가도 같지만 마트마다 노동 강도가 다르다. 일반 마트는 세트기간 동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 불편한 한복이나 정장을 입고 선물세트 팔으랴, 창고에서 물건 가지고 와 진열하랴, 고객님 쫓아가서 계산하랴, 상품권 챙겨주랴, 제품 포장해서 늦지 않게 택배 부치랴. 한 업체마다 한 명씩만 고용하니 서로 돕지 않으면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싸우는 일이 잦지만 화해도 빠르다. 싸워서 토라지면 나만 손해다. 마트에 업체 고정 직원이 없으면 그 많은 일을 혼자 다하니 명절알바를 하고 나면 몸살이 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 동안 쉬는 날 없이 일하기도 한다.

반면 외국계 기업 대형마트에선 알바는 판매만 하면 된다. 택배도 없고, 증정도 없고, 진열은 마트 직원이 한다. 일반 마트 알바가 하는 일과 비교된다. 마트 마다 고객 유치 과열에 생겨난 상품권 증정, 택배 서비스, 기타 세세한 고객만족 서비스가 가뜩이나 경쟁 속에 판촉을 하는 알바에게는 이중고이다. 

명절 알바들이여, 몸 바쳐 일하지 마시라

백화점 단기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다 손목을 다쳤다.
 백화점 단기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다 손목을 다쳤다.
ⓒ 남기인

관련사진보기


명절 알바들이여! 인센티브에 눈멀어 몸 상하게 일하지 마시라. 결국 '제 살 깎아먹기'다. 업체가 매년 작년 매출을 기준으로 인센티브 목표를 잡으니 '성대결절'이 오도록 열심히 해도 인센티브 못 받는 사람이 많다. 매출이 좋은 점포랑 비교하며 매출 압박을 주니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알바도 많다.

판촉도우미인 줄 알고 지원했다가 매일 눈치보면서 노가다 수준의 일을 한 뒤로는 마트 근처에도 안 오는 알바들도 많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아봤자 상품권 몇 장, 하루치 일급 정도다. 당장 1~2만 원 때문에 병원비가 더 나온다. 업체 배불리기에 희생당하지 말자.

근로계약서를 받거나 근로계약서 작성이 어렵다면 근무환경이라도 꼼꼼히 물어보자. 매출에 따라 하루 만에 해고되기도 한다. 명절 단기 알바는 주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많이 하는데 4대 보험도 안 되고 고용도 불안정하다. 혹시 노동 강도가 높아 성대결절이 오거나 다치면 산재는 가능하니 꼭 신청하자.

전국의 마트 알바여! 이번 추석도 어서, 무사히 지나가길.

알바상담소가 말하는, 추석 단기 알바 이것만은 알고 하자!
단 한 시간을 일해도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재법 등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근로계약서는 필수!
근로계약서에는 임금, 근로시간 등이 담긴 문서로 반드시 작성해서 사장님과 한 부씩 갖고 있어야 합니다.

2. 최저임금 이상 받으세요
올해 최저임금은 5,210원!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는 것은 모두 위법이며 최저임금으로 계산된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가산임금 받으세요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연장수당, 야간수당, 휴일수당이 각각 50%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연장근로수당: 하루8시간, 주4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
- 야간근로수당: 밤10시부터 새벽6시까지의 노동
- 휴일근로수당: 주휴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휴일로 지정한 날의 노동

4. 산재보상 챙기세요
단기알바도 일하다 다쳤으면 치료비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실수를 해서 다친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는, 알바상담소 ☎ 1800-7525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알바연대 회원입니다.



태그:#추석알바, #알바, #마트알바, #알바노조
댓글

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