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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룸카페가 무엇인지 아는가? 룸카페는 일반 카페와 달리 방(room)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룸카페는 3층이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이었다. 두 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 칸막이와 커튼이 설치되어 있어서 손님이 분리된 공간에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컴퓨터를 할 수 있다. 자리마다 대형쿠션과 푹신한 매트가 있어서 편안하게 앉아 쉴 수도 있고 TV로 최신영화나 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다.

기본 두 시간으로, 한 명당 8천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카페에 들어서면 쿠키, 아이스크림, 각종 허브차, 홍차, 과일주스, 탄산음료, 커피, 빵, 슬러시 등을 별도 요금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셀프바(self bar)가 있다.

분리된 공간 때문인지 둘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커플들이 룸카페를 자주 찾는다. 좀 더 큰 자리에서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끔은 가족들끼리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더러는 혼자 와서 약속시간까지 기다리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도심 룸카페 주말 알바의 하루

나는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룸카페 문을 열고, 포스기를 켜고 개점을 한다.
 나는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룸카페 문을 열고, 포스기를 켜고 개점을 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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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나는 구인사이트를 통해 룸카페 주말 알바를 신청했다. 면접을 보라는 연락에 면접을 봤는데, 곧 다시 연락이 왔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사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말고 면접을 본 애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네가 인상도 좋고 나이도 더 많아서 뽑았어."

이미 예상했던 대로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시급은 5500원이었고 손님이 없으면 일찍 퇴근해도 됐다. 어떻게든 알바비를 아끼려는 사장의 꼼수였다. 종각에 위치한 룸카페는 주말마다 손님이 참 많았다.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손님이 더 많이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룸카페 문을 열고, 포스기를 켜고 개점을 한다. 다음엔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 머리카락, 음료수 자국들을 청소하고, 손님들이 이용하고 어질러 놓은 것들을 정리했다. 야외 테라스 재떨이에 커피 찌꺼기를 채워 넣고, 전날 차려져 있었던 각종 음식그릇을 설거지하고 주스와 쿠키를 다시 채워 넣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손님이 오면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돈을 받고 자리로 안내했다. 오후 2시에 다른 알바가 올 때까지는 이런 일들을 모두 혼자서 했다.

날이 더워지는 초여름이라 일을 하고나면 온 몸이 땀범벅이 되곤 했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혼자 룸카페를 깨끗이 청소하면서 나름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장은 근무 중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해서 손님이 몇 팀이나 있는지 확인했다. 때로는 TV 작동법을 익히는 데에 쩔쩔매기도 하고(우리 집엔 TV가 없다) 높은 층에서 청소를 하다가 손님이 온 것을 듣지 못해 사장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데이트 장소인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이가 더 많아서 뽑았다?'는 사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룸카페 알바를 하기 시작한 뒤 한 달 정도 후에야 알게 됐다. 사장은 '서비스업은 표정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표정이 '항상 우울해 보인다'며 나에게 근무시간동안 활짝 웃으라고 했다. 일이 힘들어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 억지로 웃기까지 해야 하다니….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억지로 웃는 것이 더 힘들었다.

감정노동이 극에 달했을 때가 있는데, 그날도 여느 때처럼 커플 손님이 카페를 나가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바닥을 닦기 위해 쿠션을 들었는데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작고 흐물흐물하고 반투명했다. 눈을 크게 떴다. 사용한 콘돔이었다.

"……."

깜짝 놀랐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자리마다 손님들이 있었고 비명을 지르거나 하면 손님들한테 방해가 되니까. 비닐장갑 낀 손으로 콘돔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휴지통에 갖다 버렸다. '설마'하는 마음에 장판을 들어보았다. 콘돔 포장지가 뜯어진 채로 장판 밑에 깔려있었다. 너무 불쾌했다.

'나이가 더 많아서 뽑았다?'는 사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룸카페 알바를 하기 시작한 뒤 한 달 정도 후에야 알게 됐다.
 '나이가 더 많아서 뽑았다?'는 사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룸카페 알바를 하기 시작한 뒤 한 달 정도 후에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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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님들이 온돌이 깔린 자리를 찾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니깐 추워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칸막이가 있긴 하지만 천장이 뚫려서 소리도 다 들리는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할 일 했으면 본인들이 잘 정리하고 챙겨서 나가든가 해야지 뻔히 알바가 치우는 공간에 그런 것들을 숨겨놓다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알바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화가 났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만지기 싫은 것도 손으로 치워야 하고... 손님이 이미 떠나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나는 마치 하녀가 된 기분이었다. 사장이 처음 '나이가 많아서 뽑았다'는 것이 이런 걸(?) 보고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일 줄은 몰랐다. 그날 나는 손님들을 보고도 웃지 못했다.

"너 간판 불 왜 안 켰어!"

한 번은 개점을 하면서 간판 불을 켜지 않은 적이 있었다. 물론 실수였다. 오후에 출근한 사장님의 입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른 집은 다 반짝반짝한데 우리만 시커멓잖아, 아이구, 이거 주말장산데."

나는 혼나는 것보다는 안절부절못하는 사장님의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종각이면 서울 중심가라 임대료도 엄청 비쌀 텐데. 거기다가 음식값, 전기세, 수도세, 알바비를 제하면 정말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야 한 달 생계비를 겨우 벌 수 있는 나와, 일하지 않고도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을 건물주는 참 다르다고 느껴졌다. 또 그렇게라도 알바에게 분풀이를 해야 하는 사장님이 불쌍하기도 했다.

결국 룸카페에서는 두 달 정도 일하고 그만두었다. 주말에 다른 일들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도 참 열심히 했었지만 무엇보다 쓰다버린 콘돔을 손으로 집어서 버릴 때의 그 불쾌한 촉감과 기분은 아마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입니다.



태그:#알바, #알바노조, #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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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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