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스페인에서는 2014 FIBA 농구월드컵이 진행중이다. 한국은 지난해 필리핀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에 오르며, 1998년 그리스에서 열린 구 세계선수권 이후 무려 16년 만에 세계대회 진출 티켓을 따낸 바 있다. 조별리그 D조에서 속한 한국은 현재 앙골라와 호주에 패해 2패를 기록 중이다.

아쉽게도 명색이 A대표팀 1진이 출정한 세계 대회인데도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게 냉정한 현실이다. 한국에서 농구의 인기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SBS 스포츠가 중계를 맡고 있는 이번 농구월드컵은 현지와의 시차상 프로야구 및 해외축구 중계와 시간이 겹쳐서 대부분 녹화중계로 편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국내 농구팬들은 "아무리 그래도 대표팀이 출전하는 국제대회 경기가 어떻게 매일 같이 열리는 프로야구 경기나 해외스포츠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을 수 있냐"며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재 한국농구의 위상이기도 하다.

더욱 애석한 것은 한국농구가 이러한 무관심과 냉대를 반전 시킬 만한 '한방'을 이번 농구월드컵에서 아직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중계에 실망한 것도 모자라 농구팬들을 두 번 실망시킨 꼴이다.

FIBA 랭킹 '31위'의 한국은 같은 조는 물론이고 이번 대회 출전국 중에서도 최약체급으로 분류된다. '1승 이상'이 이번 대회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한국은 앙골라와 호주를 상대로 대체로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패배하며 이변을 연출하는 데 실패했다.

강팀을 상대로 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후회없이 불태웠느냐다. 최선을 다했고 과정에 충실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남는 것은 있다. 하지만 한국농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과정부터 부실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때와 비교하여 전력보강이나 준비과정에서 크게 나아진 부분이 없었다. 농구월드컵에 참가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짧아도 1년, 길게는 몇 년 전부터 이 대회를 목표로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친 것과 달리, 한국은 프로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대표팀을 소집하여 훈련에 돌입했다. 전임사령탑 역시 현역 프로 소속인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을 다시 한 번 대표팀에 겸임 시킨 것도 농구 선진국들과는 큰 차이다. 더구나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일정이 맞물리면서 한국은 농구월드컵 자체를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전초전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대표팀 구성도 원활하지 않았다. 작년 아시아선수권 주축 멤버 중 김민구(음주운전)과 이승준(아킬레스건)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최대 변수로 지목되었던 귀화선수 영입은 농구협회가 OCA(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와 FIBA 규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촌극이 밝혀지며 망신살만 뻗친 채 무산됐다. 아시아무대에서조차 이란과 중국 등의 높이에 고전했 듯 한국은 아시아보다 몇 수위의 전력을 갖춘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총칼 앞에 막대기를 들고 싸우러 나선 꼴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와 유일하게 달라진 부분은 평가전 개최와 해외 전지훈련이었다. 농구대표팀은 7월 뉴질랜드와 홈-어웨이로 5차례의 평가전을 가졌다. 홈에서는 8년 만에 공식 A매치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만-일본과도 비공개 평가전을 치렀다. 경기내용과 관중동원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7월 31일 뉴질랜드와의 마지막 평가전을 끝으로 대표팀은 한 달간 제대로 된 팀과 실전을 치르지 못했다. 최소한 아무 것도 안한 것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역시 정상적인 준비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감독과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팀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농구계 집행부의 전략 부재에 근본 원인이 있다.

경기감각의 저하는 농구월드컵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1승 제물'로 꼽혔던 앙골라와의 1차전에서 한국은 컨디션과 조직력의 난조를 드러내며 졸전 끝에 패했다. 앙골라 역시 첫 경기의 부담감이 컸고 경기력이 썩 좋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2차전에서는 호주에 완패하며 문태종-오세근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확실한 목표의식과 방향설정없는 주먹구구식 대표팀 운영이 불러온 패착이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과 일정이 맞물리는 농구월드컵에 대한 동기부여가 애당초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뉴질랜드 평가전 이후 한 달간의 무성의한 실전 공백은 처음부터 농구월드컵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굳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예 여자대표팀처럼 농구월드컵에서는 젊은 선수들 위주로 2진을 파견하느니만 못했다.

아마도 농구월드컵에서 경험과 경기감각을 쌓아서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전초전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농구월드컵은 그렇게 대충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대회가 아니다.

한 달 사이에 동일한 엔트리로 2개의 국제대회를 한꺼번에 소화하는 것은 체력적 부담이 매우 크다. 부상자가 나올 경우 회복 기간도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대회 2경기 만에 벌써 문태종과 오세근이 부상을 당했다. 만일 이들의 상태가 심각하다면 한국은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게임에도 치명타를 맞게 된다. 또 농구월드컵을 자칫 최악의 결과로  마감할 경우, 아시안게임까지 대표팀 분위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팬들의 바람이야 어찌됐든, 농구계 관계자들은 아마 지난 앙골라와 호주전이 생중계되지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안도할지 모른다. 만일 생중계라도 됐다면 "이 따위 농구 경기를 대표팀이랍시고 프로야구나 EPL을 결방시켰냐"는 비농구팬들의 원성을 들었을지 모른다. 그나마 앞으로 생중계되는 강호 슬로베니아와 리투아니아전 등은 모두 많은 팬들이 보기 힘든 새벽 3시 중계라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1승이 꼭 중요한게 아니다. 한국농구와 세계와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하고,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조금씩 그 격차를 좁혀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발견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명색이 세계무대에 나서면서 여전히 최소한의 기본 자세와 준비과정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한국농구의 현 주소를 보면서, 팬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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