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소니 픽쳐스


일본의 거장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카우보이 비밥>. 2071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언젠가는 그 안의 광활한 우주, 그 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이 잔뜩 섞인 믿음은 2014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통해 보다 유쾌한 모습으로 현실이 됐다.

물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의 전반적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SF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두 작품의 유사점은 매우 분명하다. 그 첫 번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 모두 미래의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SF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 세계를 미지의 미래, 우주 공간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장르 특유의 비현실성이 무리없이 수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견고하게 구축된 세계 안을 활보하는 주인공의 직업이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점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의 또 다른 닮은 부분이다. 더벅머리에 오드아이, 길고 날씬한 몸에 감색 수트를 걸친 채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은 이소룡의 절권도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몸짓과 사격실력으로 우주 수배자들을 사냥한다. 이에 비해 방독면 같은 특수 헬멧을 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피터 퀼, 크리스 프랫 분)는 종아리까지 떨어지는 가죽코트를 휘날리며 단단하고 두꺼운 몸이 무색하도록 재빠르게 목표물을 추격한다. 둘의 외양이 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파이크 스피겔과 스타로드 모두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빠진 듯이 행동하다가도 전투 상황에 돌입하면 '상남자'로 변신하는 매력적인 갭을 가진 '스페이스 카우보이'들이다. 공교롭게도 스파이크 스피겔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성우 야마데라 코이치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일본 더빙판의 스타로드 역을 맡았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현상금 사냥꾼인 두 인물에게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제트 블랙, 페이 발렌타인, 에드워드 웡이 스파이크 스피겔과 함께 전 우주를 여행한다. 한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는 가모라(조 샐다나 분), 드랙스 더 디스트로이어(데이브 바티스타 분), 그루트(빈 디젤 분), 로켓(브래들리 쿠퍼 분)이 스타로드와 한 배를 탔다. 각 주인공들은 우연한 계기에 동료들과 만나 단순한 현상금 사냥을 넘어서 보다 거대한 목표물을 함께 쫓게 된다. 각 작품의 주요 내러티브는 스파이크 스피겔과 스타로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지만, 그들의 동료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사연들이 사건을 일으키기도, 해결하기도 하며 작품 속 스토리 진행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설정들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에서만 사용됐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히어로물이 작품 안에서 강력한 주인공과 그를 보좌하는 동료들의 존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갔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이 개중 독특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결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타 작품들에서는 극 중 인물들의 멋진 모습이나 장기를 부각시키며 그것들이 합쳐졌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다. 이러한 작품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비현실의 극단, '우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 속에서는 주인공의 결점이라는 거대한 균열 안으로 동료들이 끼어들고, 그들은 그대로 거친 모양의 덩어리가 된 채로 적과 맞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한 장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특히 이처럼 깨져 버린 도자기 조각을 접착제로 붙였을 때 오히려 그것이 훨씬 단단한 결과물이 된다는 역설을 보여 준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이 마지막에 결국 혼자 적진에 뛰어드는 것으로 오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함과 동시에 동료애를 보여줬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는 모종의 거대한 정의보다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같이 악당 로난(리 페이스 분)의 앞에 선다.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더라도 오늘을 위해 2인 3각의 끈을 묶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인물들은 밝은 미래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다른 영웅들보다 관객들의 마음에 가깝게 다가간다. 어떤 방법을 써도 보완되지 않을 것 같았던 등장인물들의 한계는, 바로 이 순간, 그들이 동료애라는 끈끈한 아교를 통해 함께 했을 때 극복된다. 훌륭하게 대열을 정비한 강한 군대 대신 오합지졸들이 모였지만, 그들은 끝내 적을 무릎 꿇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작품 안에서 사운드 트랙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카우보이 비밥>의 유사한 부분이다. <카우보이 비밥>이 '스페이스 재즈'를 표방했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스페이스 올드팝'이다. 전자가 롤링스톤즈의 곡명들을 TV 시리즈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차용하고, 칸노 요코의 노래를 영상 위로 흘려 보냈다면 후자는 B.J 토마스의 히트곡을 블루 스웨드가 리메이크한 'Hooked On A Feeling'이나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 등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속에 잠자고 있던 명곡들을 끌어 왔다. 그리고 이 음악들은 두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효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끈적한 재즈가 스파이크의 오드아이를 통해 보여지는 묵직한 느낌의 우주를 시적으로 표현한 반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올드팝은 화려한 3D 영상과 더불어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스타로드 일행의 경쾌한 우주활극에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제부터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이야기만 해 보자. 히어로물의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기본 원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혹은 내)가 이기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일단은 히어로물인 탓에 동일한 원칙을 고수하지만, 여기에 '어쩌다 보니'라는 또 하나의 단서가 추가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인물들은 세계를 구하겠다는 범우주적 다짐을 한다거나, 거대한 적을 상대로 하는 진지하고 강렬한 복수극을 펼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만난 이들은, '어쩌다 보니' 엄청난 힘을 가진 '오브'를 둘러싼 이들과 부딪히게 되고, '어쩌다 보니' 궁극의 적 로난과 겨룬다. 그 결과, 스타로드 일행은 '어쩌다 보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 수호대가 돼 버렸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서의 구절로도 설명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 '어쩌다 보니'의 정서 덕에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또 대개 시리즈로 진행되는 히어로물은 회차를 거듭할 수록 영웅으로서의 자신과 보통의 자신 사이에서 오는 정체성의 고민에 머문다. 이에 비해 되는 대로 펼쳐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신선함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인물들은 여타 히어로물 속 캐릭터처럼 엄청나게 강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히어로'라는 수식이 무색하도록 좀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는 미셸 공드리의 <그린 호넷>이나 <킥애스>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언급했듯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무대는 우주다.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나오는 이 영화 속의 액션들은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다르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디언즈.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디언즈. ⓒ 소니픽쳐스


딱 잘라 '영웅'이라고 부르기는 그렇지만, <맨인블랙> 시리즈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극이다. 그러나 <맨인블랙>의 주인공 케이(토미 리 존스 분)와 제이(윌 스미스 분)가 모두 인간인 반면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구성원들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로 좀 더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사실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타로드 조차도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다. SF 장르에서 인간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유사한 모습의 캐릭터들을 주역에 배치시킨 것과 다르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인성을 갖춘 나무인간 그루트나 생체실험을 통해 지능을 갖추게 된 라쿤 등 이질적 존재들이 주인공과 함께 싸운다. 비록 스타로드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리더격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평등하다. 지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조차 타자화된 이들이 한데 모였을 때, 마치 각기 다른 그림의 한 부분이지만 아귀가 묘하게 맞는 퍼즐 조각들의 합을 보는 기분이 든다.

최고의 환경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들이 있다. 가장 큰 화면과, 그 화면이 시야에 꽉 차는 위치의 좌석, 그리고 온 몸을 뜨겁게 진동시킬 수 있는 사운드 시스템이 필요한 영화들 말이다. 상반기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과 <엣지 오브 투모로우>, 하반기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그런 영화라 단언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온몸을 전율케 했던 일렉트로(제이미 폭스 분)와 스파이더맨(앤드류 가필드 분)의 전투신 같은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가득 차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엔 '기가 빨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 마블 코믹스 영화의 우주 진출이 너무도 반가운 까닭이다. 3D 효과의 수준으로 영화 표 값을 매긴다 가정했을 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관람한다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것이다.

추신: 관람 환경을 택해야 한다면 <명량>은 사운드가 좋은 영화관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화면이 큰 영화관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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