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2년 전 선보였던 <범죄소년>과 곧 개봉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까지 두고 보면 이정현은 마치 저예산·독립영화의 단골 배우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의 <명량> 출연소식은 팬들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지 않았을까.

출연 결정이야 이미 2년 전에 했다. 다만 이정현이 어떻게 <명량>에서 혀가 잘려 말을 못하는 정씨 여인 역을 소화할지 궁금증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순신 역의 최민식이 극의 묵직함을 책임지고 끌고 갔다면, 정씨 여인 이정현과 그의 남편인 탐망꾼 임준영을 맡은 진구는 필부들의 사투를 보임으로써 비장미를 전하는 축이 됐다. 출연분량은 많지 않지만, 두 사람은 극 중 명량 해전에서 결정적 공을 세운다.

"정씨 여인만의 수화를 개발하는 것이 숙제였다"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에 출연한 이정현을 본 직후 만나길 원했다. "다음 작품에서 꼭 함께 해요"라는 말이 영화계에선 "조만간 밥이나 먹자"는 인사치레처럼 됐다지만, 김한민 감독은 그 약속을 지켰다. 분량이 적거나 대사가 없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캐릭터에 매료된 이정현은 흔쾌히 참여하기로 했다. 실로 오랜만의 상업영화 출연이 이렇게 결정된 거다.

<명량> 자체가 워낙 규모가 큰 작품이었기에 부담감이 컸다. 사극 역시 중국 역사드라마 이후로 4년 만이기도 했다. 이정현은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정씨 여인으로 살았다"며 "촬영 15일 전부터는 모든 약속도 취소하고 음식 조절 등을 통해 살을 더 뺐다"고 준비 과정을 전했다.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명량' 이정현 "원래 하루 종일 찍기로 했던 치마 흔드는 장면이 빨리 끝나 다행이다 싶었는데,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걸 추가하자고 하셔서 결국 하루 종일 찍었어요(웃음). 다행히도 감독님이 절벽 장면을 넣어주셨더라고요." ⓒ 이정민


16년 전 영화 데뷔작인 <꽃잎> 때도 이정현은 "넌 연기를 모른다"는 장선우 감독의 호통을 들으며 시골 마을에서 내내 미친 소녀처럼 지낸 배우다. 마을 어른들이 이정현을 정말 미친 소녀로 보고 자기 집에 데려가 씻기고 밥을 먹일 정도였다는 건 영화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역사서에 정씨 여인에 대한 기술이 있다더라고요. 실제로 말을 못했던 사람 같지는 않아요. 감독님이 영화적 장치를 만들어 주셨어요. 혀가 잘려 바다에 버려질 뻔했던 여인을 탐망꾼이 구해서 함께 살림을 꾸린 설정이에요. 당연히 수화를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원래부터 말을 못했던 사람이 아닌 만큼 저만의 수화를 개발하라는 숙제를 내주셨죠. 그래도 수화의 기본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유튜브 등에서 가요를 수화로 노래하는 영상들을 봤어요.

그 감성을 근거로 정씨 여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죠. 당시 수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전장으로 보냈잖아요. 그 심정을 떠올리며 촬영했어요. 현장에선 저 혼자 연기해야 했기에 긴장도 많이 했죠. 원래 하루 종일 찍기로 했던 치마 흔드는 장면이 빨리 끝나 다행이다 싶었는데,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걸 추가하자고 하셔서 결국 하루 종일 찍었어요(웃음). 다행히도 감독님이 절벽 장면을 넣어주셨더라고요."

▲ [스타영상] '명량' 이정현', "내가 생각하는 이순신은?"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내가 생각하는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독립영화 헤로인? "다양한 캐릭터 언제든 환영"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명량' 이정현 "그저 우리는 광화문 근처에 세워진 동상, 위대한 성웅 등 얄팍한 지식만 있잖아요. 그 분의 역사를 알고 나니 영화 도입부부터 울컥했어요." ⓒ 이정민


출연작에 애정이 없는 배우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특히나 이정현은 깊이 몰입했고 그만큼 애착을 크게 느끼는 편이다.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 갔던 <범죄소년>과 달리, <명량>에는 최민식을 비롯해 류승룡, 조진웅 등이 있어 한결 마음은 편하다고 했지만, 영화 편집 중 주변의 우려를 듣고 김한민 감독에게 바로 전화하는 등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곤 했다.

"고민과 걱정이 많았을 텐데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거 같아 신기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당시 이순신 장군께서 전쟁을 치렀을 때는 진짜 어땠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저 우리는 광화문 근처에 세워진 동상, 위대한 성웅 등 얄팍한 지식만 있잖아요. 그 분의 역사를 알고 나니 영화 도입부부터 울컥했어요."

영화 얘기로만 몇 시간을 보낼 기세였다. 사실 중국에서야 가수로서 면모가 부각돼 앨범 활동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큼 그는 배우 이정현으로 인정받길 원하고 있었다. 이정현은 "좋은 작품을 늘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명량' 이정현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고 스태프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다음 날 분량을 얘기하는 그런 과정이 행복해요. 우정이 두터워질 수밖에 없죠. 연기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더욱 커지고요." ⓒ 이정민


"<범죄소년>도 그랬고, <앨리스>도 좀 캐릭터가 강해요. 살인누명을 쓴 한 여자의 삶을 그렸죠. 사실 가벼운 역할에 대한 바람도 있어요. 한동안 저예산 영화 시나리오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갔어요. <앨리스>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추천해주셨어요. 결국 만날 운명이었겠죠. 

이야기와 캐릭터만 좋으면 어떤 작품이든 안 가리니까 소속사에서 꺼렸던 건 사실이에요. 돈도 안 받고 촬영했거든요. 근데 <명량>을 찍고 나니 개런티라며 돈을 주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아,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개런티가 나왔었지'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고 스태프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다음 날 분량을 얘기하는 그런 과정이 행복해요. 우정이 두터워질 수밖에 없죠. 연기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더욱 커지고요."

이정현에겐 소박한 목표가 있었다. "가수 활동으로 좋아해주신 팬도 있지만, 할머니가 돼서도 연기하고 싶다"는 이정현은 "대선배인 윤여정 선생님, 최불암 선생님이 참 멋있다"고 말했다. 상업영화 주인공이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캐릭터를 하기보단, 새로움을 전하는 캐릭터를 하고 싶어 했다. 미증유의 이정현, 매번 그렇게 그는 좋은 배우로 완성돼가고 있었다.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명량>에서 정씨 여인 역의 배우 이정현이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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