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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똥 기저귀 갈기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아비가 그 일을 훌륭히 해내고 말았답니다.
 어린아이의 똥 기저귀 갈기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아비가 그 일을 훌륭히 해내고 말았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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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묽네."
"에어컨을 틀어서 추워 그러나. 집에서는 괜찮았어?"
"집에서는 온도를 더 낮게 해서 틀었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전에도 묽은 똥을 누었어요."

딸과 아내의 대화입니다. 대변만 좀 묽어도 걱정이 되는 게 어린아이 키우기입니다. 둘은 큰 걱정을 합니다. 실은 외할아버지 집(우리 집)에 와서 서준(손자 녀석)이가 묽은 똥을 눈 건 아닌가 싶어 우리 내외는 긴장했습니다.

딸의 말로는 집에서도 그랬다니 일단 안심입니다. 우리 부부는 속으로 빨리 된 똥을 볼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서준이 건강이 걱정됩니다. 여차하면 병원에 갈 생각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서준이는 그리 불편한 것 같지 않습니다. 놀기도 잘하고, 오늘은 옹알이가 더 늘었습니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거지요.

화장실에 안 가는 두 사람

한 번 맞춰보실래요?

"화장실에 안 가고 똥을 싸도 칭찬받는 이가 누군지 아세요? 두 사람..."

왕에게는 복이나인, 서준에게는 할아비, 할매, 아빠, 엄마가 복이나인입니다.
 왕에게는 복이나인, 서준에게는 할아비, 할매, 아빠, 엄마가 복이나인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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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눈치채셨죠? 하나는 어린아이입니다. 이미 서준이 대변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거 못 맞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 서준이는 화장실에 '화'자도 모릅니다. 그냥 드러누워 싸대죠. 그래도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탓하다니요? 똥을 누느라 얼굴만 빨개져도 온 가족이 달려들어, "우리 서준이 똥 누는구나!" 그러면서 턱을 치켜올리며 대견스러워하는 걸요. 서준이에게는 똥 누는 것도 가족을 향한 이벤트랍니다. 그 이벤트에 넋을 잃는 게 제 엄마·아빠고, 할아비고, 할매고요. 허 참!

그럼, 어린아이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왕이랍니다. 조선 시대 임금님들은 화장실에 안 갔답니다. 그럼 어디서 볼일을 볼까요? 그냥 내전에서 봅니다. 그것도 궁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어린아이야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냥 누어도 시원하기만 하지만, 왕은 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일을 봐야 하니 제대로 나왔을까 모르겠어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 2012)에서 가짜 광해(이병헌)가 나인들이 부복한 가운데 매화틀 위에 올라앉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매화틀'은 '매우틀'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왕이 사용하던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매화틀 밑에 둥글고 기다란 요강을 놓아 변이 그곳에 떨어지도록 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복이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 광해가 볼일을 보는 장면입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복이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 광해가 볼일을 보는 장면입니다.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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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주로 하는 궁녀를 복이나인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불쾌한 직업입니까? 그러나 그때는 그게 선택 받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복이나인들은 주로 내전 침실의 등불 켜기, 불 때기, 담뱃대·재떨이 청소 등을 담당하는 복이처(僕伊處)에 속한 궁녀들로 왕이 부르면 언제든 대기하고 있다가 달려가 매화틀을 들이밀고 용변 보는 장면을 엎드려 애시청(?)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 굉장한(?) 냄새를 흔쾌히 맡으면서.

그 냄새가 매화향을 닮았다 해서 왕의 대변을 '매화'라고 한 거고요. 아직은 서준이의 '매화'(?)는 냄새가 안 나지만 점점 자라면서 이 녀석의 변에서도 냄새가 진동하겠지요. 그러나 그 냄새 때문에 녀석의 대변보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복이나인은 왕이 용변을 보고 나면 명주 수건으로 밑을 닦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즉시 용변을 수거하여 전의감으로 들고 갑니다. 매화는 전의감 소속 내의원들에 의해 즉시 검사에 들어갑니다. 색깔을 보고, 냄새를 맡고, 변의 묽기를 관찰하고, 심지어는 찍어서 맛을 보아 왕의 건강상태를 그때그때 체크했다고 합니다.

복이나인 자처한 할배

복이나인은 왕이 무사히 용변을 보고 나면 이렇게 외쳤습니다.

"전하! 경하 드리옵니다~!!"

왕에게 매화틀이 있다면, 제 손자 서준이에게는 이것들이 있습니다. 참 편해 졌습니다. 광목 끊어다 우리 아들딸 키웠는데 말입니다.
 왕에게 매화틀이 있다면, 제 손자 서준이에게는 이것들이 있습니다. 참 편해 졌습니다. 광목 끊어다 우리 아들딸 키웠는데 말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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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할아비가 복이나인을 자처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준이가 똥을 싼 겁니다. 딸이 아이를 엉거주춤 안고 앉아 있습니다. 왜 그러냐니까 서준이가 똥을 쌓는데 치워주기가 싫다는 겁니다. 아직 눈이 감긴 채 말입니다. 아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딸의 투정인 거죠.

얼른 서준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거사를 시작했습니다. 기저귀를 헤쳐 보니 보기 좋게 '매화'로 그림을 그려놓았네요. 다행히도 그렇게도 걱정했던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똥이 묽지가 않아서요. 딸의 말로는 정상적인 변이랍니다.

똥 싼 기저귀를 빼고 아이를 안고 욕실로 가 밑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80일이 된 아이라 목 가누기가 안 되는 터라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흐느적대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나름 훌륭하게(?) 복이나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답니다. 새 기저귀를 갈아주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하. 이쯤 되면 팔불출이 따로 없는 거죠? 하여튼 '꼴불견, 팔불출' 등등의 언어로 이 서준이 할아비를 욕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손자 낳아보고 나서 얘기하라니까요."

서준이의 똥이, 그냥 똥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매화'라니까요. 먹고, 싸고, 울고, 놀고, 자는 것이 하루일과인 서준이가 그 일과 중 중요한 한 가지를 완수한 겁니다. 오늘도 시원하게 싸고 시작하는 서준이의 하루가 기대됩니다. 어떤 미지의 즐거운 세계로 우릴 인도할지.

귀요미 제 손자의 연출된 포즈입니다. 천사가 따로 없죠?
 귀요미 제 손자의 연출된 포즈입니다. 천사가 따로 없죠?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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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더러운 이야기] 공모 글



태그:#꽃할배 일기, #손자 바보, #기저귀, #똥,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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