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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존 던(1572~1631)의 시, <묵상집 17> 중에서-

죽음을 알리는 종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을 그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전쟁에 나가 주검이 되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요. 존 던 신부의 시나 참전의 경험을 살려 글을 썼던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 왜 지금 이 꽃할배의 마음을 차고 들어오는 걸까요.

'탄생 100일 외출금지' 선언이 풀리다

서준이가 백일을 맞아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유모차를 타고 백일잔치 식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서준이가 백일을 맞아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유모차를 타고 백일잔치 식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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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딱하기도 하죠. 손자 녀석이 자기 백일에 자다 울다, 울다 자다, 고작 그것만 한 거예요.
 참 딱하기도 하죠. 손자 녀석이 자기 백일에 자다 울다, 울다 자다, 고작 그것만 한 거예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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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당사자를 위하여 종은 울린다고 말합니다. 제 손자 백일도 제 손자를 위해 있었을까요? 제 손자 녀석 서준이 백일잔치(잔치를 한 것은 아니니 '백일기념일' 정도가 맞는 표현입니다)가 지난 달 20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자 녀석 서준이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진행됐답니다.

누구를 위한 백일잔치인가요? 네, 간단히 그걸 말하려는 건데 너무 거창하게 시작했나 봅니다. 서준이가 이 세상에 나온 지 기어이 100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서준이로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날이었던 겁니다. 어른들만 신났던 서준이의 백일, 그걸 고발하려고요. 하하하.

딸내미(서준 애미)는 이미 지난달에 친정에 와서 서준이를 야외로 데리고 다니면서 단련을 시켰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사위가 글쎄 '탄생 100일이 지나기 전에는 외출금지'를 선언했다지 뭐예요. 혹 아이도 그렇고 산모도 그렇고 건강에 해로운 일이나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런 거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딸아이 친구들이 아이 보러 온다고 해도 백일 지나면 오라고 미루고, 가족들도 백일 지나고 보자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준이 모자는 정말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지난 달 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80일쯤 되었을 때 친정에 와서 쉬다 갔거든요.

그때 우리 내외는 사위의 그런 '보호하심'에 아랑곳없이 마구 밖으로 데리고 다녔답니다. 딸내미에게 옛날 고려짝 이야기 듬쑥하게 하면서 말입니다.

"예전엔 낳은 지 3일 만에 논으로 밭으로 나가 일했어. 낳은 지 세 달이나 됐는데 걱정할 거 없어. 옛날 아이들은 애미애비 들에 나간 새 닭똥 쥐어먹고도 잘도 컸단다."

하하. 이러면서 딸내미와 서준이를 강하게 다뤘답니다.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데 아이도 외출을 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밤에 잠도 더 잘 잤습니다. 첫날 외출한 밤에는 글쎄 6시간이나 깨지 않고 잤답니다. 한 시간이 무섭게 깨는 아인데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고무되어 딸내미는 자꾸 외출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 맘껏 모자를 데리고 다녔답니다.

딸 가진 죄인, 이런건가요?

회가 한 접시 가득, 얼마나 먹음직스런가요. 서준인 보기만 했답니다.
 회가 한 접시 가득, 얼마나 먹음직스런가요. 서준인 보기만 했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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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와 곁들여 나온 음식이 너무 먹음직하고 풍성합니다. 서준이에겐 그림의 떡이지만....
 회와 곁들여 나온 음식이 너무 먹음직하고 풍성합니다. 서준이에겐 그림의 떡이지만....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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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집으로 가 맞은 백일, 서준이를 데리고 시집식구들과 함께 꽤 괜찮은 일식집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찍어 보낸 사진을 보니 일식요리 제대로군요. 싱싱한 회에 다채로운 쓰끼다시(다른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 입매로 곁들여 내놓는 음식)가 너무 푸짐하군요.

얼마나 신났을까요? 누구? 시집어른들과 서준이 애미애비 말예요. 친정부모인 우리야 딸 가진 죄인이니까. 그 곁에도 못 가고 말입니다. 백일 되기 전에 이미 서준이에게 기념되라고 기념반지 한 개 사 끼워준 것밖엔 없네요. 추석 때도 추석 훨씬 전에 서준이를 데리고 딸 내외가 왔더라고요. 서준이 녀석 못 본 사이에 얼마나 컸던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이렇게 친정부모는 제대로 아이 기념일에 맞춰 손주를 볼 수 없는 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딸 가진 죄인, 딸 가진 죄인" 할 때는 그게 도무지 무슨 얘긴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이런 게 딸 가진 죄인 노릇이란 거더라고요.

그런데 묘하게도 '딸 가진 죄인 노릇'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꼭 그 날만 날인가요. 그 전날도 날이고 그 훗날도 날이죠. 하기야, 백일잔치를 거들막하니 했다면 우리 내외도 참석했겠지요. 그냥 식구들끼리 점심 한 끼 먹는 행사였으니 친정부모인 우리가 낄 자리는 아닌 거지요. 딸내미가 요새 애미지만 그런 짓(잔치) 안 하는 것 보니 보기 좋습니다.

"서준아, 엄마 젖 먹고 무럭무럭 크거라!"

서준이 증조할머니께서 아이 탄생 100일 만에 손수 납시어 손자를 배알하고 계십니다. 흐뭇해하시네요.
 서준이 증조할머니께서 아이 탄생 100일 만에 손수 납시어 손자를 배알하고 계십니다. 흐뭇해하시네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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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음식이 서준이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모유만 먹고 이내 잠에 빠졌습니다.
 그 많은 음식이 서준이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모유만 먹고 이내 잠에 빠졌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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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딱하기도 하죠. 손자 녀석이 자기 백일에 자다 울다, 울다 자다, 고작 그것만 한 거예요. 누구 하나 음식 한 젓가락 집어준 어른들이 없는 거 있죠. 자기들만 배가 터져라(?) 먹었데요. 딸내미는 모처럼 포식했다고 싱글벙글이고요. 어, 참! 자기가 누구 덕에 먹은 건데.

여기 사진 좀 보세요. 이 많은 음식들이 얼마나 먹음직스럽냐고요. 근데 어른들만 먹었어요. 글쎄. 이거 누구를 위한 백일인가요? 아이는 온종일 유모차에 얹어놓고 자기들끼리만 신났던 겁니다.

그래도 보람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증조할머니를 처음 뵈었거든요. 증조할머니는 손자(제 사위)의 당부 따라 아이 탄생 100일 동안을 꾹 참으셨다가 접근금지가 풀린 백일에 손수 납시어 손자를 배알하셨던 겁니다. 제 손자 녀석이 오서방네 귀한 2대 독자가 맞는 모양입니다. 그 사랑스러운 눈빛을 받고 손길에 스쳤으니 서준이 녀석 장군감으로 자라겠죠.

어른들만 맛있는 것 드시고 우리 서준이에게는 모유가 고작이었지만, 실은 그것만큼 맛있는 게 또 있던가요. 모유의 좋은 점 한 번 알아볼까요. 원할 때 먹을 수 있다(단 엄마가 곁에 있을 때만). 조리할 필요가 없다. 덥힐 필요가 없다. 젖꼭지 등 조리기구 일체가 필요 없다. 너무 짜거나 맵지 않다.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최고로 맛있다는 거죠. 그중 가장 좋은 것,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예, 우리 서준이가 적어도 이 정도는 먹어주는 센스 있는 아이랍니다. 비록 자기 백일 잔칫상에는 앉아보지도 못했지만, 그 잔칫상에서 열심히 먹은 어른들보다 훨씬 오래 살 확률도 높고요. 무엇보다 제 엄마가 즐겁다니 더 맛있는 젖이 나오지 않겠어요. 이쯤 되면 그리 억울한 백일잔치는 아닌 것 같네요.

"백일 맞은 손자 녀석, 서준아! 축하한다. 엄마 젖 먹고 무럭무럭 크거라!"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100일, #서준이, #백일잔치, #딸 가진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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