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풍의 스파게티서부극을 차용해 <군도>를 통쾌한 활극으로 만들었다.

영화 <군도>의 한 장면 ⓒ 쇼박스


지난 27일 오후 2시 EBS에서 방영한 영화 <석양의 무법자>(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1967년 개봉)를 보면서 나는 약 47년 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나 볼 기회를 가졌다.

이마와 눈, 입 그리고 볼까지 잔뜩 찡그린 표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유를 알겠다. 태양 아래 노출된 채로 평생을 촬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젊은 이스트우드의 외모는 우월하다. 원제가 <The Ugly, The Good, The Bad>인 <석양의 무법자>는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의 캐릭터를 보니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오리지널 버전인 듯 흡사하다.

늘어져버린 <군도>, 차라리 2부작으로 쪼갰다면

나는 영화 <군도>를 보는 내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떠올렸다. 인트로에서 말을 타고 내달리며 흐르는 옛 서부 영화 음악과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군도>의 제목을 비슷하게 바꿔 본다면, <착한 놈, 교활한 놈, 무식한 놈>쯤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의적이 착한 놈이라면, 교활한 놈은 잔인한 부호(富豪) 조윤과 탐관오리가 될 것이고, 일자무식으로 대변되는 극 중 주인공 도치 등을 비롯한 백성들이 무식한 놈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비유는 상징적일 뿐이다. 의적이라지만 불법적이고, 교활한 부호지만 서자로서의 차별과 고통을 겪었으며, 무식하다지만 백성들은 자연의 가르침에 익숙해 지혜롭기 때문이다.

영화는 조윤을 연기한 강동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윤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기 때문인데,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조윤은 홍길동의 다른 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자로서의 핍박과 설움이 밑거름이 되어 무도를 닦아 고수가 되는 것까지는 홍길동과 같기 때문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은 의적이 되어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을 혼내준다. 조윤은 탐관오리들과 손을 잡고 백성들 수탈에 더욱 지능적이고 악랄한 수법을 사용한다. 서자로서의 차별이 사회에 개인적으로 발현되는 두 형태 중 어느 쪽이 좀 더 현실적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다.

아쉽게도 민란의 주역 도치와 그 일당들에게 홍길동처럼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갖춘 인물이 없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힘깨나 쓰던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산채를 이루고 의적이 되었으니 제대로 훈련을 받은 관군과 사병에게 언젠가는 격멸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의 한 장면. 악덕 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졸부 조윤(강동원 분)은 그 악랄함과 대비되는 미모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영화 <군도>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장점들을 고루 갖추었다. 그래서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대하드라마로 만들어 갈채를 받았던 윤종빈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백정 돌무치(하정우 분)가 의적 도치가 되는 과정, 조윤이 백성들과 종들을 수익의 원천으로만 여기고 또, 자신이 상속자가 되기 위해 제수와 조카를 없애려는 과정, 민초들을 수탈하는 잔인한 방법의 배경에 탐관오리와의 정경유착이 등장하는 과정, 백성들의 분노가 임계에 이르러 폭발하게 되는 과정. 이것들을 너무 자세히 표현하느라 영화가 늘어져 버렸다.

차라리 영화를 둘로 쪼갰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의적 군도(群盜), 지리산의 추설을 이끌던 대호(이성민 분)가 조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이야기가 일단락 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도치와 추설의 정신적 지주, 땡추(이경영 분)를 구심으로 대부분의 군도가 재활을 도모할 수 있었고 조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 후일을 도모하면서 첫 번째 이야기가 마무리 됐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속편에서 도치와 조윤의 대결 외에 백성들의 분노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좀 더 흥미로우면서도 역동적으로 표출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다 내놓느라고 두 시간 반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선택하다니, 감독의 선택은 어떤 관객에게는 고역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관객은 무조건 '민란의 시대'를 선택했으니 말이다.

영화의 엔딩은 인트로 때와 마찬가지로 도치와 그의 군도가 된 백성들이 들판을 신나게 달리면서 우리의 인생에 반드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임을 알린다. <석양의 무법자>는 서부 개척 시대에 엘도라도를 찾아 헤매는 못난 놈, 좋은 놈, 나쁜 놈들을 그린 영화다. 황금 앞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배신이 무시로 자행되는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스토리란 얘기다.

영화 <군도>는 조선 말의 시대상을 서부 개척 시대의 음악을 이용해 장쾌한 대하드라마로 그리고 있지만 결코 시원하지 않다. 당시의 비극적 결말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계속된 채로 맺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히어로 도치와 군도가 아직 살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

군도 민란 강동원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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