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제작 영화사 월광, 아래부터 '군도')가 어제 개봉했다. 영화사(史)와 유명감독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시네필(Cinephile, 영화광을 뜻하는 프랑스어)'까지는 못 되어도, 윤종빈 감독의 작품들만큼은 알고 있노라 자부하는 터. 작년부터 기대해온 작품이 개봉하는 날 영화관을 찾았다.

'군도: 민란의 시대' 포스터 군도(群盜) 지리산 추설의 '신거성' 돌무치(하정우)와 무관 출신 '땅귀신' 조윤(강동원)의 대결구도

▲ '군도: 민란의 시대' 포스터 군도(群盜) 지리산 추설의 '신거성' 돌무치(하정우)와 무관 출신 '땅귀신' 조윤(강동원)의 대결구도 ⓒ '군도: 민란의 시대' 공식홈페이지


'불편함.' 윤종빈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가 '군도'에 앞서 감독한 작품은 딱 세 편이다. 어느 한 편도 맘 편히 볼 수 없었다. 대학 졸업작품이자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군대 내 상하관계에서 비롯한 폭력을, 다음 작품 '비스티 보이즈(2008)'는 '호빠 선수들(여성전용 호스트바의 남성 종업원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폭력을 다뤘다. 윤종빈을 스타 감독으로 만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의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은 폭력의 맛을 보며 '조폭'보다 더 나쁜 인간이 되어갔다.

마초들의 세상, 그리고 그들의 언어인 폭력을 다뤄온 감독의 팬으로서 그의 '액션활극'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뭇 달랐다. 줄곧 현대극만 만들어온 윤종빈의 첫 사극은 어떤 모습일지 별 관심이 없었다. 출연이 확정된 배우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화려했지만 여기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떤 문제의식과 불편함을 던져줄까, 그게 궁금했다. 백성들이 "못살겠다 갈아보자"하며 일어나는 내용이라기에 '계급갈등'이나 '혁명' 등의 단어를 떠올렸다. 급기야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던 윤종빈이 이제는 민족과 역사를 다루려는 것 아닐까!" 하는 사심 가득한 억측(?)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느꼈던 '당혹감'

개봉을 얼마 남기지 않고 공개된 예고편과 인터뷰 등을 보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프로스포츠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초호화 캐스팅'에, 감독 스스로가 오락액션영화로 봐 달라는데. 굳이 인상 팍 쓰고 뜯어보고 재가며 볼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로 보자고 결심했다. "블록이든 여름날 더위든 시원하게 싹 날려버리는 액션영화다, 그냥 즐기면 된다"고 거듭 되뇌었다.

하지만 왠걸, 그 정도로는 부족했나 보다.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예상했던 주제도, 시각도, 문법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종빈만의 무언가가 나오겠지 싶어 기대했다. "어? 어? 이게 아닌데..." 영화의 리듬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댔다. 윤종빈 감독 스스로도 호불호가 갈릴 것을 각오했다는 내레이션이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지나치게 친절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속도감 있는 웨스턴풍 음악에 완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영화는 무거운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웃음기가 가득했다. 하정우(돌무치 역)와 마동석(천보 역)이 뱉어내는, 순수하지만 날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걸쭉한 농도의 욕설설. 그리고 조진웅(태기 역) 특유의 모자란 듯 넉살 좋은 입담이 웃음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 꽤나 귀여운 유머를 구사하는 내레이션도 웃음에 한 몫했다. 멋들어진 액션신들은 마치 무협만화 페이지처럼 '촤라락' 넘어갔다. 강동원(조윤 역)의 클로즈업에서는 영화관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성애자 남성인 나도 넋을 놓고 그의 미모를 감상했다.

영화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에 흥행공식은 있을지언정 '재미공식'은 없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쏟아지는 무수한 시청각적 자극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은 관객의 몫이다. 이 작업을 기꺼이 하게 만드는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다.

눈과 귀에 강렬한 자극을 주면서도 끊임없이 뇌를 쓰게 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다. 지금까지 윤종빈 감독의 영화들은 관객들을 날카롭게 찌르는 동시에, 관객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일 여지를 충분히 줘 왔다.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게 정리될 수 없는 것들이었으며, 극중 인물들에 나와 우리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도 무언가 불편하고 찜찜했다. 영화의 여운은 퍽 오래 갔다.

'군도'는 분명 매력적인 영화다. 같은 남자지만 넋놓고 보게 되는 강동원(조윤 역)의 칼춤 하나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개성 강한 배우들의 연기, 재치있는 연출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관객층을 고루 감당할 만하다. 하지만 감독 이름 석 자만 보고 영화관을 찾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영화과 재미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은 이전 작품들과는 전혀 다르다. 세 번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익숙해졌다 생각한 윤종빈의 세상을, '군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민란(民亂)이라는 소재에서 메시지를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영화는 백성들의 봉기에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

윤종빈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윤종빈의 군도'가 아닌 '군도'를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도'가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만 관객들은 윤종빈이 아니라 하정우, 강동원을 보고 극장에 오니까 걱정하지 않는다는 농도 덧붙였다. 영화 자체가 아니라 감독의 배신(?)에 초점을 맞추는 팬들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리뷰에 정작 영화 내용은 없고 감독 이야기 뿐이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윤종빈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윤종빈의 군도'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덧붙이는 글 즐기라고 만들어놓은 영화를 즐기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뭐든 파헤치고 의미를 부여해야 직성이 풀리니... 이참에 고쳐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응원합니다, 윤종빈 감독님.
'군도: 민란의 시대' 윤종빈 영화의 재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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