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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발뉴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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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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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은 한국 언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공영방송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급기야 KBS 노조는 길환영 사장 퇴진을 주장했고, 이사들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사장 해임 제청안을 7:4로 가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을 받아들여 길 사장을 정식으로 해임했다.

기자가 '기레기'를 넘어 흡혈귀 취급받는 현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상호 <GO발뉴스> 기자를 지난 8일 이한열기념관에서 만나 의견을 들었다.

길환영 KBS 사장 해임에 대해 이 기자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며 "곧 이어질 사장선임과 이에 대한 투쟁이라는 두 번째 싸움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기자는 최근 호평을 받는 JTBC 뉴스보도에 대해 "상업주의 언론은 자유로운 이점도 있으나,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손석희 사장에 대해서도 "JTBC는 손 사장 한 명 쫓아내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하다"며 "그러나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상호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길환영 사장이 해임됐는데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고 봅니다. 모처럼 손을 잡고 싸운 KBS 양대 노조는 향후 닥칠 두 번째 싸움을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두 번째 싸움이란 곧 이어질 사장 선임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권은 일방통행식 시스템을 바꾸지 않을 게 명백합니다. '국가개조'라는 명분으로 수구적 철권통치를 강화할 겁니다. 공영방송 KBS 사장을 포기할 이유가 만무하지요. 공정방송을 위한 적임자보다는 정권의 '위기'를 돌파해 낼 안정감 있는 인사를 선임할 겁니다."

- KBS가 파업을 시작할 땐 MBC 노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세월호 참사 후 일명 '기레기'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어요. 박 정권도 이런 비판 여론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향후 세월호 국정조사 대상에 KBS 길환영 사장이 예정돼 있는데, 그걸 최대한 차단하고 싶었을 겁니다. 정권의 보도통제 매뉴얼과 길 사장의 정권 눈치 보기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정조사의 칼끝이 결국 청와대로 향할 테니, 사전에 연결 고리를 끊어야지요. 이번 길 사장 해임은 편향보도, 청와대 옹호 보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청와대 '그분'에 대한 경호차원에서 이뤄진 미세조정에 불과합니다."

- 이제 관심은 차기 사장에게 쏠리는데요.
"국민TV 김용민 PD가 <미디어오늘> 민동기 편집장이랑 하는 팟캐스트가 있어요. 거기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를 사장으로, 최경영 기자를 보도본부장으로 임명하면 인정하겠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그 정도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길환영보다 훨씬 애매한 인물을 내려보낼 겁니다."

- KBS 노조 파업 때 MBC 노조는 움직임이 적어 비판을 받았는데요. 
"MBC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해고와 징계가 일상화됐죠. 공정언론 추진 세력의 감행 의지가 크게 약화됐습니다. 무엇보다 MBC 내부의 공정보도 투쟁을 위한 인적구성이 망가졌습니다. 무려 50~60명에 달하는 '구사대' 기자들이 이미 보도국 주요 출입처와 보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파업의 효용성이 제거된 조직이 됐습니다."

"현장 기자생활 20년... 이번 참사에서 평정심 무너지더라"

-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에 바로 내려가셨잖아요. 
"하루 반나절 동안 지켜보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다 구조하겠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점점 '이거 아닌데...' 하며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현장 기자생활 20년을 하면서 웬만한 대형 사건, 사고를 겪어봤어요. 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무너지더라고요.

300명에 달하는 단원고 학생들이 시시각각 죽어가는데 아무런 대응을 못 하는 구조 당국을 보면서 제가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난 뒤, <고발뉴스> 전 스태프들에게 짐 싸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 말에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겨서 입원한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방송 현업에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나가 후배들 기사를 봐주고, 취재 기획 등을 도와주고 있었어요. 다시 현장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니,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내려갔어요. 그렇게 다시 현업에 복귀했죠."

- 과거와 이번 참사 보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점이 과거와 다릅니다. 먼저, 비민주적 정권에 예속·유착된 언론이 정치적 성격의 대형 참사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보여줬어요. 언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례가 될 겁니다."

- 또 다른 점은 뭔가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인데요. 세월호 참사는 참혹한 '리얼 서바이벌' 상황이었습니다. 구조대가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생존자를 구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는데, 골든타임을 넘기도록 한 사람도 못 구했죠. 골든타임이 지나가는 장면이 생중계 돼 전 국민이 가해자가 된 듯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0년 전 이라크 파병 관련 김선일씨 사건 기억하시죠? 그때도 충격이 상당히 컸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테러'의 전 과정이 생중계됐고,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300여명이었습니다. 

해난사고라는 '대국민 테러'가 발생했는데 탑승자 전원이 시시각각 사망했죠. 사고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국민들은 가장 끔찍한 잔혹영화를 강제로 관람하고 나온 뒤의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관 밖으로 나와도 더 참혹한 현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도리어 국민들을 상대로 '너희를 개조하겠다'고 합니다. 야당은 세월호 사태 50일이 넘도록 혹시 불똥이 자기들 쪽으로 튈까 두려워 찍소리도 못 냈죠. 이 정도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국가 부재 수준입니다." 

- <연합뉴스> 기자를 욕하기도 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저는 약 20년 동안 공영방송에서 방송한 사람입니다. 욕을 했다는 건 중요한 방송 사고지요. 실수입니다. 제가 통제하지 못 한 거죠. 그건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피해 가족들은 사실상 언론에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정부의 구조대책이 일방적으로 홍보됐고, 가족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못 했으니까요. 

어머니들이 나서서 당시 현장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저에게 사회를 봐달라고 요청하시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지만, 중재자로서 해야할 역할을 위해 잠시 (기자인) 저를 내려놨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 취재 도중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별 거 아니었어요. 잠을 못 자서요. 제가 머리가 아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작년에 가벼운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거였나요?
"아니에요. 전조증상을 느꼈어요. 한 번 아파봤기 때문에 그게 다시 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말이 어눌해지고, 어지럽고, 집중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잠을 자야 하거든요. 스트레스도 아주 안 좋은데... 그런데 사고 이후 두세 시간 이상 잠을 못 잤어요. 종일 바닷바람 맞으며 분노와 울분이 넘쳐나는 기사를 만지다 보니, 다시 탈이 난 거죠. 팽목항을 떠날 수 없어 진도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 그런데 어떻게 다시 바지선을 타게 됐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세 번째로 사고 해역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당초 두 번 모두 해경 측의 비협조와 노골적인 협박으로, 바지선을 대지도 못하고 쫓겨나왔는데요. 언론은 죄다 '실패'라고 기사화했거든요. 이번에도 방해가 예상됐고 심지어 이종인 대표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첩보까지 입수했습니다.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달리 고민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대표가 '무섭다'며 함께 있어달라는 문자까지 보내는 바람에 그냥 달려갔죠." 

"손석희는 충분히 평가해줘야"

<GO발뉴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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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의 JTBC행을 강하게 비판하셨어요. 최근 세월호 보도로 JTBC 뉴스가 호평을 받았습니다.
"JTBC를 포함한 종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특혜, 삼성 일가의 미디어 장악 구상에 따른 JTBC의 전략적 역할론에 대한 비판은 유효합니다. JTBC는 삼성 등 자본과의 유리한 관계를 세월호 보도에서 십분 활용했다고 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언론들이, 시장에 의존해 일부나마 미국식 상업주의 자유언론을 표방한 적이 있었는데, (JTBC는)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상업주의 언론은 정치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고문하는 고등계 형사보다, 회유하는 조선인 통역이 악질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장은 달콤한 말에 끌리겠지만, 결국 저들의 각본대로 독립운동 조직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는 시민의 이해와 궤를 달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자본의 이익 추구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미디어를 앞세운 자본의 조작은 계속된다는 게 역사적 교훈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중이 JTBC와 손석희라는 자유 언론인을 분리해서 평가하길 권합니다. 손 사장은 시장과 정치권력에게 장악당한 MBC에서 벗어나 JTBC를 선택해 자신의 자유언론에 대한 실현 의지를 지켰고, 지금까지 그의 실험은 성공적인 듯 보입니다.

지금은 엉망이 된 MBC가 보여주듯, 언론은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 비즈니스'를 하는 곳입니다. 잘 나가던 공영방송이 몇몇 언론인들이 축출된 뒤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처럼, JTBC는 손 사장 한 명이 쫓겨나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합니다.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상호, #세월호,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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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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