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해법 의 한 장면

▲ 슬기로운 해법 의 한 장면 ⓒ 시네마 달


세월호 사태 때 민간인 잠수부라 사칭하는 홍가혜의 허위 인터뷰를 내보낸 MBN 뉴스특보의 오보는 성급함이 빚어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오보가 비단 MBN만의 일일까.

태준식 감독의 영화 <슬기로운 해법>은 이른바 '조중동'을 타깃으로 보수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 다큐멘터리다. 3년 전에 찍은 태풍 사진을 2012년 볼라벤의 태풍 사진이라고 보도했다가 망신살을 탄 <조선일보>나, 철도 노조 파업으로 서울대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는 <중앙일보> 모두 성급함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냈다.

중립적인 언론이란 있을 수 없다. 각 언론사 나름대로 언론사만의 프레임으로 사건을 규정하고 해석하기에 매체마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슬기로운 해법>은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와 권위주의를 민주주의의 모토로 규정하고 이를 독자에게 프레임으로 제공하는 언론사가 조중동임을 꼬집는다.

새는 한 날개로만 날 수 없다. <슬기로운 해법>은 조중동이 보고 싶어 하는 사건만 뉴스로 다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쌍용차 사태나 YTN 언론인 해고처럼 굵직한 사안임에도 조중동의 프레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도하지 않은 뉴스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 보수 언론이 모든 사건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게 아니라 다루고 싶은 사건만 다룰 때 균형 감각을 잃은 뉴스가 될 수 있음을 영화가 꼬집는 것이다.

슬기로운 해법 의 한 장면

▲ 슬기로운 해법 의 한 장면 ⓒ 시네마 달


또, 영화는 보수 언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 지도자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펜대를 통해 난도질할 수 있음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빌어 표현한다. 언론의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을 천명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참여정부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는 이는 다름 아닌 조중동이라는 이름의 보수 언론이었다.

봉하마을로 내려간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사법 재판의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조중동은 그를 향한 여론 재판을 형성했다. 언론이 견제의 기능을 넘어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반대 진영에게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포털 시장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네이버처럼 조중동의 국내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지금의 언론 시장에서 균형의 추를 맞추기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부단히도 어려운 작업으로 보일 법하다.

한 언론사의 프레임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식을 넘어서기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 매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을 때 우리나라 언론의 제대로 된 두 날개, '슬기로운 해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영화는 제안하고 있다.

이런 식의 해법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다소 맥이 빠질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대안 언론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아는 것보다는 대안 언론을 위해 우리가 아는 걸 실천으로 적용하는 게 얼만큼 중요한가를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게 <슬기로운 해법>의 미덕이 아닐까.

만인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개인이 언론의 소비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언론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고취시키고,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두 날개의 자세를 가질 때 영화 제목만큼이나 언론에 대한 슬기로운 해법이 가능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슬기로운 해법 태준식 언론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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