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산너머 산이다. 추락하는 성적속에 사령탑 김기태 감독의 자진사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겹친 LG가 선수들의 삭발투혼에도 불구하고,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LG는 2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 5개가 난무하는 공방전 끝에 8대 9로 역전패했다. 마무리 봉중근까지 조기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으나 1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봉중근이 9회와 10회에 연거푸 실점을 허용하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LG는 올시즌 불과 19경기(4승 1무 14패)를 치른 시점에 연장전에서만 무려 1무 5패를 기록하며 지독한 징크스에 시달렸다.
 
이날 경기는 김기태 감독의 자진사퇴가 있었던 다음이라 초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감독 사퇴에 따른 자책감과 승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LG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이었다.
 
양팀은 초반부터 엎치락뒤치락하는 공방전을 펼쳤다. LG는 삼성 선발 배영수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만 오지환과 박용택, 조쉬벨(투런)이 홈런 3방을 뽑아냈다. 삼성에 7회 4점을 내주며 5-7로 역전당했을때는 8회 삼성의 필승조인 심창민과 차우찬을 상대로 볼넷 3개와 안타 3개 묶어 3점을 뽑아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밀어내기 볼넷 득점 이후 오지환의 깊숙한 중견수 플라이볼을 삼성 이영욱을 잡았다 놓치면서 두 명의 주자가 한꺼번에 홈에 들어온 것도 행운이었다. 투지를 발휘한 LG에 모처럼 승리의 기운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조급증은 막판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경기 내내 한 템포 빠른 투수교체를 단행했던 LG는 타선의 분발에도 필승조가 번번이 리드를 날려 버렸다. 7회 3명의 투수를 내세우고도 4점을 허용했던 LG는 8회 1사후에는 마무리 봉중근을 일찌감치 마운드에 올리는 강수를 선택했다. 봉중근은 8회를 무사히 넘겼지만 9회에는 1사후 2안타와 볼넷으로 만루를 내준 뒤 김상수에게 다시 볼넷을 허용, 동점을 허용했다.
 
봉중근의 등판은 18일 한화전 이후 무려 6일 만이었다. 기록상으로 봐도 봉중근은 휴식일이 길었던 경우 구위가 오히려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1점차 리드에서 이미 투수력을 다 소모한 LG로서는 봉중근외에는 카드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패착이었다.
 
9회 말 중요한 순간에 나온 실책성 플레이로 봉중근의 기운을 빠지게 했다. 하필이면 8회 악연의 주인공이던 삼성 이영욱과 LG 오지환의 희비가 또한번 엇갈리는 반전이 일어났다. 1사 1,3루의 위기서 1루주자 이영욱이 어설픈 주루플레이를 펼치다가 협살에 걸렸다. 공을 쥔 유격수 오지환이 이영욱을 따라가다가 3루 대주자 박해민이 홈으로 쇄도할 기미를 보이자 그대로 홈 송구를 했다.
 
하지만 박해민은 오지환의 송구를 눈치채고 재빨리 3루로 귀루했다. 포수가 공을 다시 3루로 던졌지만 박해민은 세이프가 선언됐다. 이틈에 이영욱이 다시 2루로 내달렸고 이때 LG 2루에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LG는 2루로 송구조차 못해보고 주자 두 명을 모두 살려주고 말았다. 2사 2루나 3루가 되었어야 할 상황에 1사 2.3루로 바뀐 것이다.
 
이번 패배, 정신적 타격 될 가능성 크다
 
하마터면 이날 경기의 최대 역적이 될뻔했던 이영욱은 8회 자신을 울린 오지환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LG로서는 주자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만 다급했던 오지환이 3루주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좀더 여유있게 공을 처리했다면 3루주자를 협살시키고 이영욱의 2루 진루로 충분히 막을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맥이 빠진 봉중근은 두 타자를 연이어 볼넷을 내주며 밀어내기로 동점을 허용했다. 기가 꺾인 LG는 10회 말에 또다시 봉중근을 등판시켰으나 세 타자에게 연속안타를 내주며 허무하게 끝내기를 허용했다. 10회 초 등판한 삼성 마무리 임창용은 2승을 챙겼고, 최형우는 끝내기 결승타점을 기록했다.
 
LG에게 이번 패배는 1패 이상의 정신적 타격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감독 사퇴로 인한 혼란 속에, 선수들 전원이 삭발투혼을 보였고 가장 믿을 수 있는 봉중근을 마무리로 내보낸 경기마저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이렇게 까지 해도 안 되는구나'하는 패배의식이 자리 잡는다면 선수단의 사기가 급격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승리에 대한 투지와 집착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날 경기는 지나친 조급증이 오히려 승부를 그르친 경우였다. 이기겠다고 덤벼들면 오히려 더욱 안풀리는 것이 야구다.
 
LG는 경기 내내 마음만 앞섰을 뿐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했다. 봉중근의 등판 시점을 비롯한 전반적인 투수운영, 한 베이스라도 더 가기 위한 세밀한 주루플레이, 내야진의 협력 수비 등 중요한 고비에서 LG는 투혼만으로 메울 수 없는 정교함과 냉철함의 부재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LG가 올시즌 꼴찌로 추락한 이유가 투지가 부족해서가 아님을 보여준 장면들이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