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K리그 클래식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금도 1위를 내달리고 있는 포항 선수들은 여러 모로 수준이 높았다. 상대 팀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과감하게 던지는 경기였지만 끝까지 침착하게 대응할 준비를 하고 경기장에 들어섰던 것이다.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 줄 아는 순간의 판단이 믿음직스러운 승리를 이끌어냈다. 강팀의 위용이 충분히 느껴졌다.

황선홍 감독이 이끌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한국)가 16일 저녁 7시 오사카에 있는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4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E그룹 세레소 오사카(일본)와의 방문 경기에서 전후반 나란히 한 골씩을 터뜨리며 2-0의 완승을 거두고 남은 1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1위 자격으로 16강 토너먼트 진출권을 따냈다.

스틸 타카의 '선택과 집중'

철퇴 축구로 상징되는 울산 현대 호랑이의 우승 예상을 뒤엎고 지난 해 K리그 클래식 우승 트로피를 극적으로 들어올린 포항 스틸러스의 축구는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라고 해서 '스틸 타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티키 타카'로 불리는 FC 바르셀로나의 탄탄한 조직력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력은 지난 해만 반짝 빛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지금도 진화중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시즌 초반 두 경기에서 내리 패하며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느새 당당히 1위(8경기 16점, 5승 1무 2패 18득점 10실점) 자리에 올라서 있다.

그 비결은 '선택'과 '집중'에 있었다. 한 마디로 매우 효율적인 패스 축구를 구사하되 상대 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는 포인트를 기막히게 잡아낼 줄 안다는 뜻이다. 불필요하게 많은 선수들이 넓은 공간을 한꺼번에 커버 하느라 무턱대고 뛰어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3자 패스'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2~3명의 선수가 만들어내는 공격적 움직임만으로도 훌륭한 결과를 얻어낸다.

상대 선수와 겨루는 드리블, 스피드 경쟁이 우선이 아니라 제2, 제3의 동료가 빠져들어가는 타이밍을 지능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경기에서 얻어낸 두 골 장면만으로도 이 부분이 충분히 입증되었다.

포항의 필드 플레이어들은 상대 수비 라인의 스피드가 급격히 줄어들 때를 기다렸다가 뒤통수를 때릴 줄 안다. 그것도 극소수의 멤버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듬직하게 해내고 있으니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남다르게 나온다.

황선홍 감독 특허품, '이명주' 사용 설명서

경기 시작 23분만에 포항은 그 첫 결실을 얻어냈다. 흔히 축구 경기 도중 옆줄 밖으로 공이 나가면 대체로 선수들은 숨을 몰아쉬며 집중력을 잃기 쉽다. 포항 선수들은 이 빈 틈을 정확하게 찾아낼 줄 알았던 것이다.

더구나 크로스나 다름없을 정도로 긴 던지기 실력을 자랑하는 김대호가 왼쪽 측면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허를 찌르기 좋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왼쪽 끝줄 앞까지 공을 몰고 들어갈 수 있었던 포항은 골문 앞 집중력까지 높이며 귀중한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 주인공은 미드필더 이명주였다.

황선홍 감독은 역시 이명주 사용 설명서를 새로 발간한 명작가였다. 주장 김태수와 새내기 손준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이명주를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세우며 '토종 제로 톱 공격 전술'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었다.

이 때 포항 미드필더들은 한꺼번에 두 명 이상씩 달려들어 무모하게 슛을 남발하지 않는다. 마치 단계를 차근차근 밟듯이 상대 골문을 위협한다. 이 선취골도 김재성의 1차 슛이 막히고 흘러나온 것을 이명주가 2선에서 달려들어가며 마무리지었다. 한국 국가대표 후보 문지기 김진현이 세레소 골문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국가대표팀에 올라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능력도 충분히 발휘했던 이명주는 황선홍 감독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수비 부담을 최대한 덜고 뛴다. 그러다 보니 과감한 슛, 절묘한 패스 감각, 공간 점유의 3박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 와중에 갈 길 바쁜 세레소 오사카는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미드필더 미나미노 다쿠미가 포항 미드필더 손준호에게 위험한 태클을 시도했다가 압둘라 하산 모하메드 주심으로부터 빨간 딱지를 받고 아예 쫓겨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러다보니 후반전의 화두는 당연히 '포항의 역습'이 되고 말았다. 65분, 상대 수비수 뒷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타이밍을 잘 잡은 손준호에게 기막힌 찔러주기가 이어졌고 여기서 더 완벽한 패스가 김승대를 빛낸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란코 포포비치 세레소 오사카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그들이 자랑하는 골잡이 디에고 포를란(우루과이)을 과감하게 불러들이고 수비형 미드필더 소메야 유타를 들여보냈지만 포항의 중원을 허물지는 못했다.

57분에 미드필더 스기모토의 왼발 중거리슛이 포항 골문 구석으로 뻗어갔지만 문지기 신화용은 왼쪽으로 날아올라 멋지게 쳐내고 말아 아쉬움을 남겼다.

포항 스틸러스는 오는 23일 밤 8시 안방인 스틸야드에서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와 E그룹 마지막 경기를 펼치게 되는데 지금까지 얻은 11점의 승점으로 인해 단독 1위를 확정하고 한결 여유 있는 선수단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23일 일정보다 20일 낮 2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 클래식 9라운드 FC 서울과의 방문 경기 일정에 더 주목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 잡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때보다 안정된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욕심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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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AFC 챔피언스리그 E그룹 5라운드 결과(16일 저녁 7시,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

★ 세레소 오사카 0-2 포항 스틸러스 [득점 : 이명주(23분), 김승대(65분,도움-손준호)]

◎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
FW : 김승대(67분↔배천석)
AMF : 고무열, 이명주, 김재성(74분↔박선주)
DMF : 김태수, 손준호
DF : 김대호(86분↔신영준), 김광석, 김원일, 신광훈
GK : 신화용

★ 부리람 유나이티드 1-0 샨동 루넝

◇ E그룹 현재 순위(2위까지 16강 진출)
1위 포항 스틸러스 5경기 11점 3승 2무 11득점 6실점 +5
2위 부리람 5경기 5점 1승 2무 2패 5득점 9실점 -4
3위 세레소 오사카 5경기 5점 1승 2무 2패 8득점 8실점 0
4위 샨동 루넝 5경기 5점 1승 2무 2패 8득점 9실점 -1
축구 이명주 황선홍 챔피언스리그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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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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