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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히 말하는 '감정노동'이 무서웠다. 두려우니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아마도 쉽게 쑥스러움을 느끼던 20대 초반까지의 성격 탓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들 수능을 치고 나서 편의점이나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공사장에서 묵묵히 공사자재를 나르는 쪽을 택했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익숙하지 않은 타인과 말을 나누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에는.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나는 4년째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바로 보안요원이다. 불리는 이름에서는 정장을 입고 폼나게 어딘가 혹은 누군가를 지키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웃으면서 다양한 질문에 응답해 주는 역할에 가깝다.

현역으로 2년간 복무하고, 또다시 2년을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이 크게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밌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4년간 보안요원으로서 마트와 병원을 거쳐오며 지금은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도시의 외곽에 있는 조용한 지점에서 근무하면 편하다던데, 나는 바보 같게도 지원하는 곳마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지점이라 늘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했다. 기차역 옆의 마트나 큰 병원 중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그런 곳 말이다.

그러다 보니 굵직한 사건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있던 적도 있다. 마트에서 일했던 2010년에는 언론에서도 조명된 '통큰치킨' 파동이 있었고,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최근에는 지난 1월의 '카드대란'을 몸소 겪었다. 병원에서 일하던 중에는 응급실에서 밤낮없이 근무하기도 했다.

출입구에 선 보안요원은 화풀이용 쓰레기통?

애초에 사람들은 분노가 생기면 그저 그 순간에 얼른 배출하고 싶을 따름이고, 가까이 있는 보안요원이 가장 적절한 감정의 분출대상인 셈이다.
 애초에 사람들은 분노가 생기면 그저 그 순간에 얼른 배출하고 싶을 따름이고, 가까이 있는 보안요원이 가장 적절한 감정의 분출대상인 셈이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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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안요원으로서 일해본 경험에 따르면 '보안요원 사용법'은 크게 세가지였다. 하나는 '길찾기'다. 마트에서 일할 때에는 7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어디에 가야 어떤 물건을 찾을 수 있는지 모조리 암기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3개 건물로 이루어진 곳 어느 지점에 안과나 이비인후과가 있는지, 어느 병실이 몇 번째 건물에 있는지 기억해 내곤 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물어오면 즉각 알려주는 것이 업무였기 때문이다. 물론, 가물가물할 때에는 무전기로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거나 안내데스크의 컴퓨터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

두 번째는 '진압'이다. 건물이나 특정구역 내에 취객 등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투입되어 상황을 진정 시키고 피해를 막는 일이다. 직원이나 다른 고객에게 폭언이나 구타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가피하게 무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스총이나 전자충격기를 휴대하면서 '쓸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때로 상황은 우리의 기대와 반대로 벌어지기도 하니까. 심지어는 흉기를 들고 병원에 난입한 '과거 정신과 입원 환자'를 만난 동료가 상황을 무사히 진압한 적도 있다.

세 번째는 바로 '불만사항 응대'이다. 보안요원을 따로 둘 정도로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고객센터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출입구 앞에 서 있는 보안요원에게 자신의 불만을 쏟아내곤 한다. 고객센터와 달리 찾아가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일할 당시에는 '통큰치킨'이 해당 지점에서 하루에 200마리 한정판매라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욕설과 고함을, '카드대란' 때는 개인정보 유출의 책임을 묻는 비난과 호통을 고스란히 듣고 서 있어야 했다.

내가 치킨의 판매량이나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보상 절차를 정하는 책임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그걸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람들은 분노가 생기면 그저 그 순간에 얼른 배출하고 싶을 따름이고, 가까이 있는 보안요원이 가장 적절한 감정의 분출대상인 셈이다.

"야, 이 OO놈들아! 니네가 이따위로 하고도 돈을 받아먹어? 에라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천차만별의 욕설을 골고루 듣는 순간, 잘근잘근 씹다가 뱉어진 껌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싶어진다. 아니, 심지어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씹던 껌을 뱉어서 내 손에 쥐어주고 가는 고객도 있다. "나 바쁘니까 대신 버려 달라"는 것인데, 그럴 때는 그야말로 내가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다.

할 수 있는 대답은 "죄송합니다" 뿐... 우리가 동네북인가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죄송합니다"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죄송합니다"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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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요원이 근무시간에 받는 요구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건물 앞에서 "내 개를 데리고 있어 달라"며 무작정 목줄을 쥐어주고 뛰쳐간 사람 때문에 교대시간을 놓쳐 점심을 굶은 적이 있다.

마트 앞에서 늘 노숙하는 사람이 대뜸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에 "지금 근무 중이라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쫀쫀한 직원이네"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한번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가득 채운 카트를 들이밀고는, "주차장까지 카트를 가지고 와달라"는 건장한 중년 남성을 만나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현재 근무중이라 정해진 위치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요. 그 대신 주차장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 새끼야, 내가 이 마트에 쓴 돈이 얼마인지 알아? 나 VIP 고객이야. 너 잘리고 싶어? 점장한테 전화라도 한 통 넣어주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서 술냄새가 확 풍겨왔다. 나를 향한 삿대질은 금방이라도 손가락으로 내 코를 찌를 기세였다. 직원에게 무리한 요구와 막말을 하는 사람이 어째서 VIP라는 것인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리를 비우면 다른 직원과 고객에게까지 곤란해지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에는 "내 아들 살려내라"고 절규하는 유가족에게 멱살을 잡혀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일도 있다. 구급차에서 이미 숨진 환자였는데 "병원의 과실로 죽었으니 너희가 책임져라"는 거였다. 가족을 잃은 슬픈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날 애꿎은 화풀이로 무릎에 들었던 피멍은 여전히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은행에서 일하면서는 대기고객이 많은 상황에서 "내가 급하다. 얼른 업무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떼쓰는 고객도 있다. 모두 동등한 입장의 고객들이기에 은행을 방문한 순서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면, "무슨 직원이 이리 무능하냐"는 말이 되돌아온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죄송합니다"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부탁입니다, 보안요원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주세요

흔히 '서비스직'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른다. 앞서 표현한 것처럼,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직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쌓이는 피로도 독이 될진데, 감정에 쌓인 피로는 오죽할까? 피곤함은 자고 일어나면 풀린다지만, 고객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소모되어 바닥난 내 감정은 어떻게 다시 채워줄 수 있을까?

나를 분풀이용 샌드백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생각만 해도 벌써 소름이 돋는다. 내가 만약 출근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꼽는다면 분명 1순위는 그런 고객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라졌던 공포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생겨날 것 같은 심정이다. 

직원을 상대로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잠깐 한 번이겠지만, 나쁜 감정은 감정노동자에게 쌓이고 또 쌓여 사람을 좀 먹는다. 부디 부탁한다. 보안요원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디선가 마주한 유니폼을 입은 상대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똑같은 감정과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의 가족과 친구도 누군가에게는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노동자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보다 더 약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가 당신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이 많은 기업들의 모토인 한국에서,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을의 처지' 서비스직 노동자를 마주치는 잠깐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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