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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방송된 '파워 블로거 한마디에..'10년 직장' 관두려 한 사연'중의 한 장면
 뉴스에 방송된 '파워 블로거 한마디에..'10년 직장' 관두려 한 사연'중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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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6일 한 감정노동자의 사연이 저녁 뉴스의 전파를 탔다. 10년 동안 성실히 근무해온 주부사원이 고객의 항의에 그만두게 됐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파워 블로거 한마디에... '10년 직장' 그만 둔 한 주부사원

보도에 따르면 한 대형 마트에서 특정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5천 원권 상품권을 주는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직원의 실수로 타제품에 행사 표시를 붙여 놓았는데 한 손님이 그 물건을 들고 상품권을 받으러 왔다. 해당 직원은 실수에 대한 사과와 함께 상품권 증정이 해당되지 않는 상품이었지만 상품권까지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손님은 갑자기 사진을 찍으며 "내가 파워 블로거다, 방금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말하면서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고객은 하루 방문객 약 1천여 명이 넘는 유명 블로그 운영자였고, 실제로 자신의 블로그에 '직원이 곧바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잠을 못 자겠다' 등의 비난 글을 올렸다.

이미 사과를 받아냈고 상품권까지 받았음에도 직원에게 불리한 내용 위주로만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블로그에 이 사건이 오르자 마트 측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아이의 엄마였던 해당 직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10년 넘게 근무한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은 실로 컸다. 글 하나로 인해 마트는 물론 힘없는 감정노동자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기 직전까지 매장 귀퉁이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는 동료 직원의 방송 인터뷰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사례 하나만 보더라도,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눈물과 한숨을 삼키는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배려 몇 마디로 상담원에게 받은 흐뭇한 답장

3년 전의 일이다. 자동차보험의 만기를 10여일 앞두고, 어떻게 알았는지 전국에 있는 대부분 보험회사의 텔레마케팅에 시달렸다. 조금 비싸지만 기존에 가입한 설계사를 통해 이미 재가입하기로 했기에,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는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불편한 익숙함'이 되어버린 전화를 노련하게 거부해야 하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험상담원으로 부터 받은 답장 문자메시지
 보험상담원으로 부터 받은 답장 문자메시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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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의 전화를 매정하게 거절하며 끊지 못하는 평소 성격이 문제였다. 그러니 보험 가입권유 텔레마케팅이 끊이질 않고 더욱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 중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전화로 권유한 한 상담원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정말 큰 마음먹고 거절하리라 다짐했다.

"저기요, 상담원님. 죄송한데요. 기존 설계사에게 연장하기로 해 버렸네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제가 더 죄송하네요. 하루 종일 전화하시느라 수고하실 텐데, 가입권유가 잘 안되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아,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보험을 들어 주신 거나 다름없네요. 그럼, 오늘도 행복하시고, 다음 기회에라도 꼭 한 번 더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은하루 되시고요... 거듭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지속적인 누군가의 수고에 조금 미안하다고 생각한 순간,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알림 음이 울린다. 

'타사 이용하셔도… 하시는 일마다 대박 나고 성공하세요!…'

참 기분 좋은 답장이다. 나의 배려 몇 마디가 상담원에게 위로가 됐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기쁘다. 물론 1년 후 내 자동차보험 갱신은 이분에게 돌아갔다. 

암행 감찰 직원에게 적발된 지인, 결국 사직

몇 년 전, 강남의 유명백화점 수입 전문매장에서 오랜 기간 판매 업무를 해온 친척 한 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애환을 토로했다. 그러더니 통화 막바지에 슬며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고객만족 평가점수가 하위권이라 일을 그만 두게 될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인터넷 고객센터 '칭찬합니다' 코너에 유령글을 올려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허위로 직원 칭찬글을 올려달라는 의미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일반 고객을 가장하여 직원의 친절도, 판매기술, 환불 응대 분위기 등을 암행 감찰하는 직원에게 몇 차례 적발됐단다. 폭언에 가까운 말을 당하며 싫은 표정 한 번 비치지 않았지만 웃지 않은 것이 감점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오랜 근무로 웬만한 고객의 '횡포'에도 끄떡없을 만큼 맷집이 생겼지만 '고객은 왕'이라는 비아냥거림에는 굴욕감과 당혹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단다.

할 수 없이 인위적으로 고객응대 점수를 올리자니 이런 부탁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소가 따뜻한 직원'이라는 제목의 낯 뜨거운 몇 줄의 칭찬 글을 올려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 한달 후 친척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만족'의 족쇄를 벗지 못하고,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고마웠다"는 안타까운 마지막 음성만 내 귓전을 때렸다.  

무엇이든 요구하고 그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도 무관한 일로 불평을 하는 고객들은 감정노동자들의 의욕을 끊임없이 고갈시킬 뿐이다. 감정노동자들의 감정은 세월에 닳아 없어질 뿐이다. 

물론 감정노동자들의 고객 응대 태도는 서비스업에서 빠져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문제다. 실적은 물론 고객과의 최전방 대면창구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고객 재방문을 유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것도 종업원의 몫이 크다. 하지만 진정한 고객만족을 받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배려가 우선이다.

감정노동자의 문제는 우리 삶의 '바로미터'

백화점서 대우받고 싶어하고 '갑질'하는 고객을 빗댄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
 백화점서 대우받고 싶어하고 '갑질'하는 고객을 빗댄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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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이제는 감정노동자들에게 '당신은 회사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인격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고객만족을 평가하는 감시체계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회사 내부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까지 더해진 감정노동자에게 고객만족을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군림하며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은 없는지, '고객'이라는 이름의 내 자신을 먼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감정노동자가 내 가족, 내 이웃이라는 생각을 가질때  진정한 고객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응모글입니다.



태그:#감정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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