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 영화는 강박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전반을 웃음으로 채웠다면 후반은 감동으로 마무리. 웃음과 감동의 순서가 간혹 바뀌기도 하지만 대체로 웃기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기는 플롯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최근 한국 코미디 영화가 고수해온 흐름이다.

영화계에서는 입버릇처럼 한국 관객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한다. 단순히 웃기는 코미디 영화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 어떤 감동이나 철학의 주입 없이 웃기기에만 몰두해서 흥행했던 한국 코미디 영화가 근 5년 안에 있었나 싶다. 코미디 전문 감독이라 불리던 영화 감독들의 이름도 잊힌 지 오래. 참 아쉽게도 어떤 영화의 제목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철저히 웃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영화들은 관객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면했다. 그래야만 한국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감동 반 웃음 반'의 훈훈한 코미디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의 보는 눈이 이만큼 높아졌다고 허세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의 대쪽 같은 호불호로 지금 한국 코미디 영화는 천편일률적으로 '감동 반 웃음 반'을 지향한다. 편히 웃으러 갔다가도 괜히 한 번 씩 울컥하는 자신을 만난다. 자동적으로 그러한 영화에 호감이 생긴다. 너무 작위적이지만 않다면 관객의 감정을 톡톡 건드려주는 이런 영화들이 최근에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지난 해 첫 천만 영화였던 <7번방의 선물>이 '감동 반 웃음 반' 코미디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현재 한국 관객의 기호를 가장 영리하게 반영한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다. 최근에 개봉한 <수상한 그녀> 역시 마찬가지. 바보 아빠의 부성애와 할머니의 판타지로 웃음과 감동 모두를 잡은 두 영화는 관객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처럼 비슷한 플롯 안에 소재만 달리한 이야기의 영화가 예술을 하겠다는 영화 제작사의 손이 아닌 이윤을 최우선가치로 하는 기업가의 손에서 생산될까봐 하는 문제다. 만약 그런 방식으로 영화가 공장의 상품처럼 생산된다면 코미디 장르는 당분간 획일화 될 것이다.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주성치 영화' 같은 독보적인 코미디는 이제 없을지 모른다.

<무비 43>, 뇌와 가슴을 비워야만 즐길 수 있는 코미디가 왔다

 영화 <무비 43>에 출연한 휴 잭맨

영화 <무비 43>에 출연한 휴 잭맨 ⓒ REALTIVITY MEDIA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30일 개봉한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 <무비 43>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철저한 B급 코미디'를 지향한다. 감동, 철학은커녕 이해되기를 거부하고 웃기는 데에만 전력투구하는 정력적인 코미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이다. 휴 잭맨, 케이트 윈슬렛, 리차드 기어, 나오미 왓츠 등 이름이 그 자체로 고유명사이며, 얼굴이 곧 명함인 스타 배우들이 옴니버스 구성의 이 영화의 각 에피소드를 책임지고 있다. 그들이 펼치는 연기는 그들의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SNL급의 '병맛' 코미디. 힌트를 하나 주자면 휴 잭맨은 자신의 목에 무려 '고환'을 달고 나온다.

'스타 배우들이 왜 굳이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계속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이 영화 안에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다. 사자성어(?)로 '기상천외, 상상초월, 이해불가'. 영화 전체가 온통 엉망진창이기에 합리적인 접근을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저 보이는 대로 즐겨야 이 영화가 기획한 코미디에 웃을 수 있다.

영화 <무비 43>은 약자의 페이소스가 묻어났던 '주성치 영화'와도 다르고 수많은 시리즈와 패러디 물을 만들며 성인 코미디의 히트 상품으로 군림한 <아메리칸 파이>, <무서운 영화> 시리즈와도 궤를 달리하는 형언불가의 자유분방함과 당황스런 코드가 매력인 독보적 영화다. 뇌와 가슴을 온전히 비워야만 즐길 수 있는 변태성향의 상품이며 관객의 강한 비위를 강요하는 쓰레기 향의 영화가 바로 <무비 43>이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이 영화가 확실히 문제작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문제아, 반항아 보다 한 수 위인 '돌+아이'같은 영화다. 보자마자 자신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불호가 확실한 영화로 앞서 비교 예시로 제시한 주성치 영화나 <아메리칸 파이>류의 영화들을 즐긴 관객들에게는 그간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어떤 방해공작 없이 웃기는 데만 열중했던 영화, 이야기 구조의 논리를 배제하고 몇 마디 말장난만으로도 배꼽을 뺏던 영화를 그리워했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청량음료와도 같은 상쾌함을 선사할 것이다. 한 번 이 영화의 코미디에 웃었던 관객은 두 번, 세 번도 웃게 된다. 이 영화의 저급한 코미디에 웃었다고 해서 본인의 영화 보는 눈은 의심하지 말길. 이 영화 썩 괜찮은 B급 영화다. 웃었으면 그만인 것이다.

더럽고, 불쾌하고, 징그러운 모든 것들이 한 편에

 영화 <무비 43>에 출연한 할리 베리.

영화 <무비 43>에 출연한 할리 베리. ⓒ REALTIVITY MEDIA


스타 배우들을 모셔다 놓고 제 멋대로 굴린 이 영화에도 단점은 있다. 그중 가장 아쉬운 점은 옴니버스 구성이라는 명목 아래 지나치게 많은 에피소드를 욱여넣은 것이다. 흔히들 가짓수가 많은 분식집은 라면도 맛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에피소드의 가짓수가 지나치다보니 클립마다 편차가 생기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재밌는 단편은 기억에 남지만 재밌지 않은 단편은 그 어떤 것도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90분의 상영시간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질 좋은 콘텐츠가 턱 없이 부족한 것이다.

기자가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단연 첫 번째 단편인 휴 잭맨과 케이트 윈슬렛의 소개팅이야기다. 멀쩡해 보이는 둘의 만남에 웃음을 주는 건 아주 단순하고 저급한 장치 하나다. 바로 휴 잭맨의 목에 달린 '고환'.

영화는 고환을 목에 단 휴 잭맨의 행동과 이에 시종일관 당황한 반응을 보이는 케이트 윈슬렛의 표정을 대비시켜 코미디를 만들어 낸다. 카메라가 괜히 스프를 비춰 이상한 상징을 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관객의 이상한 상상을 부추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냥 구는 이 영화의 엔딩은 결국 케이트 윈슬렛의 수모로 끝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웃게 되는 '유체이탈' 코미디다.

이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홈스쿨링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교 분위기로 아들을 가르치는 부모의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이상한 프러포즈를 요구하는 여자친구의 이야기 등이 있다. 글로 순화하기에 버거운 내용의 이야기들이 90분간 스크린을 장악한다.

더럽고, 불쾌하고, 징그러운 모든 것을 과감히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한 <무비 43>.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획된 감동에 울컥하며 자신의 감정을 영화에 맞추는 일 없이, 그저 얼굴 근육을 과감히 웃는 데에만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참! 반드시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서 선택할 것. 지나치게 이성적인 자, B급 영화를 배격하는 자는 관람불가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관객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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