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신>의 알 마문 감독

영화 <머신>의 알 마문 감독 ⓒ 김재우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댄다. 그리고 멍한 채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회사로 향한다. 기계처럼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으로 향한다. 다음 날 아침,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 주변 현대인의 일상이다. 최근 촬영을 마친 단편영화 <머신>은 이런 현대인의 삶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두 머신(기계)처럼 살고 있다고 느꼈어요."

<머신>의 감독 알 마문(Al Mamun·38)씨의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같이 똑같은 일상을 살아온 것일까?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풀어낸 단편영화 <파키>(2013년)에 이어 단편영화 <머신>을 제작 중인 마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그는 이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이하 AMC) 사무국에서 후원과 조직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가까이에 있는 AMC 사무실에서 그와 만났다.

인터뷰 하기 전 통화에서 그는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했다. "아니, 뭐 감독님이라고…" 쑥스러운듯 말끝을 흐렸다. 한국말이 어색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만나보니 정말 '감독님'이라는 말을 듣는 걸 수줍어했다. 그는 영화 제작을 배운 지 이제 1년이 되어가는 초보 감독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마문씨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을까? 그는 1998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경기도 마석 가구공단에서 목수 일을 시작했다. 2009년 한국 국적을 얻어 '한국인'이 되기 전까지 11년 동안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을 바라보았다. 그 후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이주노조에서 활동하며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21일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다시 마석 가구공단으로 돌아가 일하던 중 AMC 사무실 공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활동가로 함께하고 있다.

"작년에 이주민 감독 독립영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수업을 듣고 꿈을 꾸게 된 거죠. '꼭 집회에 가지 않더라도 나의 목소리,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11년간 이주노동자로 목수 일... 2013년 단편영화 <파키>로 데뷔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알 마문 감독의 첫 번째 작품 <파키>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알 마문 감독의 첫 번째 작품 <파키> ⓒ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그래서 그가 메가폰을 잡은 첫 영화 <파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어려움을 소재로 한 영화 <파키>에선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 '파키'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 <파키>는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와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초청 상영됐다. 그의 바람대로 집회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 영화 <머신>은 <파키>보다 한층 더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전작 <파키>가 이주노동자라는 소재를 두고 한국 사회를 바라보았다면 <머신>에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다루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두 머신처럼 살고 있다고 느꼈어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가 꼭 닮아 있다는 것이다. 마문 감독은 본인의 삶조차도 그러하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그래요.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사무실 오는 길에 커피 한 잔 마셔요. 매일 그래요. 일상이 똑같아요. 모두가 똑같이 살고 있다는 거죠."

<머신>의 주인공도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살던 중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처럼 살아가던 주인공이 강아지를 만나 집에 데려와서 행복을 느끼다가 결국 행복을 떠나보내고 다시 기계 같은 삶으로 돌아간다는 스토리다. 마문 감독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강조하진 않았지만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제작 초반부터 많은 일들이 그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는 섭외된 촬영 장소인 오피스텔의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변 스태프들을 침착하게 다독였다. "'괜찮아, 안 되면 우리 집에서 찍으면 돼'라고 했죠"라고 말했다며 웃는다.

스태프들은 이런 감독이 어땠을까? 촬영감독 이정훈(27)씨는 "우선은 편안하게 해주셔서 좋았다"면서 "(다른 감독 중에는) 권위적인 분도 많고 형식을 따지거나 자기 고집이 강한 분이 많은데 (마문 감독은) 늘 소통하고 대화하려고 했다"고 평한다.

가장 큰 사건은 오디오가 먹통이 된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보니 오디오가 녹음되지 않았던 것이다.

"기계 결함이 있었어요. 원래 대사도 별로 없는 영화예요. 뭐 어떡해? 할 수 없잖아요?(웃음)"

그의 말을 듣는 도중, 순간 영화 <세 얼간이>에서 "알 이즈 웰(All is well)"을 외치는 주인공 란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걸까?

"그냥 집에서 소리를 만들었어요. 개 밥 먹는 소리는 내가 밥 먹으면서 짭짭짭 소리 냈어요. '아 이 정도면 대단한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귀한 시간 투자해서 영화 볼 텐데... 1초 1초가 부담"

 영화 <머신>의 알 마문 감독

영화 <머신>의 알 마문 감독 ⓒ 김재우


이렇게 안 좋은 사건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배우와 스태프들을 공개모집 했는데, <파키>의 입소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머신> 제작에 지원한 것이다. PD와 촬영감독 1명씩 공모했는데 각각 7명, 20명이 지원했다. 총 4명의 배우 모집에는 170명이 몰렸다. 스태프 2명과 강아지를 포함한 제작진이 구성됐고 지난 1월 17일부터 3일간 모든 촬영이 끝났다.

곧 개봉을 앞둔 두 번째 영화에 대해 그는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첫 작품을 찍을 때도 그렇진 않았는데 1초, 1초가 부담이 돼요. 사람들이 귀한 시간을 투자해서 영화를 볼 텐데 아무렇게나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를 땐 편하게 하면 됐는데 알게 되니깐."

AMC 활동가로 일하면서도 요즘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 생각뿐이다. "영화는 자기 자식처럼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못 잔다"며 얼마 전에 터졌다가 아문 입술을 보여준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 그는 촬영감독과 회의 중이었다. 이어 음악감독과도 회의가 있다고 한다. 영화 촬영 후에도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언제쯤 시사회를 할 예정인지 묻자 시사회라는 단어조차 너무 거창하단다. 우선 3월 초에 영화를 함께 제작한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불러 상영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에겐 영화 말고 한 가지 더 고민이 있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AMC 운영과 관련된 것이다. 그동안 AMC가 이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마문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기사에 남겨달라고 말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AMC가 있어서 제가 감독 꿈을 꿨어요. 저를 포함해서 아니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여기서 문화예술 활동도 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거든요. 이 단체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뉴스레터 2월호에도 실립니다.
알 마문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머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