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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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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분간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놓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먼저 회견이 시작되기 전부터 질문지가 나돌면서 짜여진 각본대로 연출된 '쇼'였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질문에 나선 12개 언론사의 성향이 보수 일색이어서 청와대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언론사들만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죠. 일리 있는 비판도 있고 일부 오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우선 국내 언론 질문자 선정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청와대 기자단은 종합일간지, 경제지, 지역지,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 인터넷, 종합편성채널 등 매체별 기자단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질문 던진 12명의 기자, 어떻게 선정됐나

대통령 기자회견을 앞두고 매체별 기자단을 대표하는 간사단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결과 질문권은 종합일간지·지역지·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에 각각 2개씩, 경제지·인터넷·종편에 각각 1개씩이 배정됐습니다. 여기에 청와대 기자단 간사인 연합뉴스에 1개, 외신에 2개의 질문권이 돌아가면서 총 12명의 기자들이 질문에 나서게 됐습니다. 또 질문 내용이 겹치지 않게할 목적으로 각각 어떤 주제의 질문을 할 것인도 사전에 조율이 됐습니다.

물론 질문자 선정은 기자단 자율에 따랐습니다. 종합일간지의 경우는 추첨을 통해 <동아일보>와 <세계일보>가 질문 기회를 얻었고 나머지 매체들도 관례를 따라 간사가 질문에 나서거나 추첨 등의 방식으로 질문자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운이 없었는지 진보 성향의 매체들은 모두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라서 질문권을 확보하려는 기자들의 경쟁도 치열한데요. 또 언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을지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특정 매체를 배제하려 했다면 강력한 항의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공개적인 비판 대상이 됐을 겁니다. 적어도 청와대가 정권에 유리한 언론사만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셈입니다.

물론 현장에서 이정현 홍보수석이 사전에 정하지 않은 것처럼 질문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되다 보니 정권과 껄끄러운 매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처럼 보인 측면은 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저도 몇몇 지인들로부터 <오마이뉴스>는 왜 질문을 안했느냐, <오마이뉴스>가 나서서 '돌직구'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때마다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짜고 친 고스톱? 사전 질문 조율은 과연 필요했나

그런가하면 청와대 기자단이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하고 박 대통령이 미리 준비한 '모범답안'을 참고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된 기자회견 형식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기자단이 청와대에 질문을 사전에 전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관행이었습니다. 가장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됐던 참여정부에서도 기본적인 질문들은 사전에 조율된 적이 많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후 대부분의 기자회견에서 사전에 협의된 질문만 받는 형식을 고수했습니다. 그나마 2011년 4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관련 기자회견에서는 사전 질문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해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죠.

이런 관행에 대해 일부에서는 생중계로 진행되는 기자회견이라 대통령으로부터 깊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궁금한 내용에 대해 사전에 충실한 답변 준비를 하는 게 필요하다며 옹호하기도 합니다.  생중계로 진행되지 않는 정치인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해 답변을 준비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생방송 기자회견이나 토론에서 유독 실수를 많이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여왔는데요. 지난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하경제 활성화'로 잘못 발언하는 등 실수를 연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같은 트라우마 때문에 생중계 기자회견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전 질문 조율 없는 기자회견을 기자단이 요구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고 민감한 질문에도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미국 대통령들의 모습이나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 가장 많이 권위를 털어냈다는 평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박 대통령에 기대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형식보다는 내용... 실망스러웠던 답변 내용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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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입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는 형식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나왔음에도 답변 내용이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박 대통령의 답변 중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고 기존에 밝혔던 생각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기자회견', '짜고치는 고스톱'과 같은 비판이 거셌던 것은 형식보다는 알맹이 없는 회견 내용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측면이 커 보입니다. 기자들이 추가 질문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간 답변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원천봉쇄된 탓도 있겠지만요.

사실 박 대통령은 작년 한해 동안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정치부장, 논설실장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만찬을 함께 했는데요. 당시 미리 질문을 조율하지도 않았고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이 오갔습니다.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게 대부분이었고 그 내용도 모두 기자들에게 공개가 됐습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소통 노력으로 당시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파문과 인사 파동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청와대가 이 같은 전례를 참작해 두 번째 기자회견부터는 '불통' 논란을 씻을 수 있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요? 방송사 생중계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해야겠지만 앞으로는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아, 보다 많은 매체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고 추가 질문까지 이어지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돼야겠지요. 청와대에서 과거 비정상적으로 진행돼온 대통령의 기자회견 형식의 정상화에도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 초대 받지 못한 언론들

아쉬움은 또 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청와대 춘추관에 상주하면서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 모두가 초대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번갈아가며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청와대 풀기자단에 속한 매체들만 기자회견장 출입이 허용됐는데요. 청와대 경호실에서 기자회견장 입구를 지키고 서서 일일이 기자 명단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풀단에 속하지 않은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이 있는 춘추관 2층이 아니라 1층 기자실에서 TV를 통해 대통령의 회견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청와대 기자실에 상주하지 않는 외신 기자들에게도 기자회견장이 개방됐는데 정작 국내 언론들은 풀기자단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현장 취재 기회를 박탈당한 셈입니다.

청와대는 기자회견장 자리부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모든 기자들이 참석해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서 생긴 '긴급 조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 기자단을 둘로 갈라놓은 취재 제한, 없어져야할 비정상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요?


태그:#박근혜, #기자회견,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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