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정민을 연기하는 정은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정민을 연기하는 정은표. ⓒ 연극열전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과 카메오로 잠깐 등장해도 포털 검색어로 화제가 된 배우가 있다. 시청자들이 정은표를 알아 보고 환호했다는 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웃긴 캐릭터가 각인된 덕도 있지만,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아우라가 제일 크지 않았을까.

정은표는 천상 연기자다. 연기가 좋아 어릴 적부터 연극배우를 꿈꾸고 TV와 스크린을 넘나들지만 연어가 고향을 그리워하듯 항상 무대를 그리워하는 배우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정민을 연기하는 정은표를 3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코믹 연기가 트레이드 마크?..."고민이 많다"

- 대본이 맘에 들어 작품을 수락한 걸로 알고 있다. 기존의 연극 작품과는 다르게 맘에 든 점이라면.
"대부분의 연극은 이야기나 캐릭터가 젊다. 이 연극은 나이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50대의 이야기다. 제 나이가 아직 50이 안 되었는데, 50이 넘어서 이 작품을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쯤은 완벽한 50대는 아니어도 흉내낼 수 있는 나이다."

-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간다는 건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 어떤 여배우는 서른 살이 되는 걸 너무 좋아했다. 서른이 되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을 거 같아서 좋아하더라. 당시 저는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서른이 넘어간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늘 연기하며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코믹 연기를 많이 한다. 박철민씨도 비슷한 고민을 하리라고 본다. 감초 연기가 제 연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마음속에서 '이게 맞는 걸까, 제대로 연기하는 걸까' 하는 고민이 많다. 그래서 코믹하게 연기할 법한 연기를 일부러 놓고 갈 때도 있다. 50이 넘으면 지금보다 다른 느낌의 연기가 나올 거 같다."

- 코믹한 연기도 주무기지만 <해를 품은 달>에서는 코믹이 다가 아니었다.
"연출님과 상의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게 '너무 웃기지 말자'였다. 너무 웃기는 코드로 가면 진정성이 떨어지고 연기하며 재미가 떨어질 거 같았다. 진지하게 가는 걸 우선으로 하고 그 중에서 재미있는 연기를 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도 시청자는 진정성 있는 연기보다는 코믹한 연기를 많이 기억한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도 이런 고민이 많다. 웃기는 것보다는 텍스트가 갖는 중심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어떤 역을 맡으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었다. 영화를 찍을 때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제 주변에 오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을 다 찍고 나서야 친구가 다가왔다. 반면에 결혼 후에는 역할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어떤 역을 맡으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었다. 영화를 찍을 때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제 주변에 오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을 다 찍고 나서야 친구가 다가왔다. 반면에 결혼 후에는 역할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연극열전


- 정민은 연옥을 바라보면서 우정과 사랑 중 어느 감정에 치우치는 걸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이 크다. 저 역시 너무 좋은 사람에게는 100만큼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한다. 연옥도 그렇지만, 정민도 마음은 있지만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잘 표현하지 못한다. 연옥에 대한 사랑은 있지만 아닌 척하고 지내는 인물이 정민이다."

- 삶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던 게 연기로 나타날 때가 있는가.
"결혼하기 전에는 어떤 역을 맡으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었다. 영화를 찍을 때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제 주변에 오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을 다 찍고 나서야 친구가 다가왔다. 반면에 결혼 후에는 역할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거운 역할을 한다고 해서 캐릭터를 갖고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연기를 마치면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연기에 빨리 몰입하고 빨리 빠져나오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 연극열전이 선보인 작품에 많이 참여했다.
"처음 할 당시에는 연극열전이라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지 않았다. 하는 도중에 연극이 연극열전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어떤  프로젝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은표가 이 작품에 잘 들어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발사 박봉구>는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작품이다. 조명과 음향실이 따로 있었다. 공연이 워낙 잘 되어서 그걸 뜯고 객석을 늘릴 정도였다. 지금의 아내가 제 공연을 보고 인연이 되어 결혼한 작품이기도 하다."

"방송·영화는 경제적 위로, 연극무대는 정신적 위로"

 "방송과 영화를 통해서는 경제적으로 위로받지만 마음으로 위로받는 곳은 연극 무대다. 무대에서 제 연기를 표현하고 관객에게 연기하는 정은표를 보여준다는 건 희열이다."

"방송과 영화를 통해서는 경제적으로 위로받지만 마음으로 위로받는 곳은 연극 무대다. 무대에서 제 연기를 표현하고 관객에게 연기하는 정은표를 보여준다는 건 희열이다." ⓒ 연극열전


- 2년 전에 셋째가 태어나서 즐거움이 더할 거 같다.
"스스로 생각할 때 좋으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사기당할 수도 있고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지금의 제 인생은 행복하다. 너무 좋으니까 조심하게 된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현상 유지'라고 말한다. 머물러 있자는 게 아니라 지금 너무 좋으니까 좋은 걸 유지하는 차원의 현상 유지다.

저 혼자라면 조심하지 않을 텐데 아내와 아이가 있어서 조심하게 된다.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오래 사는 거다. 제 나이 49세에 18개월인 아들이 있다.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아빠인 저는 건강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한둘이 아닌 셋이다 보니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하지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 다른 이들이 저희 가정을 볼 때 '정은표의 집은 예쁘게 산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

- 대중은 연극배우 정은표가 아닌 탤런트 혹은 영화배우 정은표로 기억한다.
"그렇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연극이 좋아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연극을 하면 경제적으로 열악하다. 돌파구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방송과 영화를 하게 된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풀렸다.

제가 가진 것보다 좋게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가끔은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방송과 영화를 통해서는 경제적으로 위로받지만 마음으로 위로받는 곳은 연극 무대다. 무대에서 제 연기를 표현하고 관객에게 연기하는 정은표를 보여준다는 건 희열이다."

-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 끝나면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진실되게 연기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관객이 재미있을 거 같은 장면에서는 애드리브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연출가와 약속한 저만의 연기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다. 예전 같으면 더 재미있게 연기하려 하거나 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시간 내내 제가 나오니 튀거나 웃길 필요가 없다.

박철민씨나 조재현 선배가 하는 공연을 보지 않았다. 만일 공연을 보았다면 유혹을 받았을 거 같다. 정은표가 만드는 정민을 연기하고 싶었다. 박철민씨의 애드리브나 조재현 선배가 푸는 역할이 저와는 다르다.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면 따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거 같았다. 그걸 따라하면 제가 준비한 연기 중심이 무너질 거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제 공연이 끝난 다음에야 다른 캐스팅을 볼 거 같다."

- 답변을 들어보니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거 같다.
"<이발사 박봉구>만 보더라도 끝나고 나면 탈진할 정도로 힘든 작품이었다. 더블로 하는 게 싫어서 재공연 할 때에는 원캐스팅으로 연기했다. 제가 만든 캐릭터로 연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도 분명히 정은표만의 정민이 있다. 다른 배우의 정민이 섞이는 순간에 자만의 개성이 사라질 게 분명하다. 같은 걸 연기하면 안 된다. 세 명의 다른 연기를 보는 관객이 있다면 '정은표는 이런 식으로 풀었네' 하고 보셨음 한다."

별에서 온 그대 해를 품은 달 김수현 정은표 그와 그녀의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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