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서거 50주년을 맞아 그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 등의 자료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주목받았던 한해다. 톰 행크스가 제작한 영화 <파크랜드>가 미국에서 개봉했고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역시 새롭게 DVD가 출시됐다. 또한 영부인이었던 재클린이 생전에 남편의 암살에 관해 증언했던 비밀 녹음테이프 일부가 공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케네디가 백악관의 전쟁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던 13일의 기록이 책으로 출판됐다. 그런데 우연인 것일까. 케네디의 삶을 돌아보면 노무현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최근 개봉된 영화 <변호인>이 한몫을 하기도 한다.

<변호인>이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충격

현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변호인>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옮겨 재구성한 작품이다. 개봉 전에는 별점테러에 시달렸고, 개봉 후에는 대량예매 후 취소를 반복하는 티켓테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럼에도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이 영화는 실제 관람객들의 극장 사이트 평점 또한 9점을 넘기며 상당히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확실히 <변호인>은 잘 만든 작품이다. 극의 전체를 흐르는 일관된 분위기는 진지하고 깊이 있으며 장면 하나하나에도 영화의 주제가 녹아들게끔 잘 연출되어 있다. 가볍거나 유치하지도 않고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휴머니즘이 살아있다. 하지만 <변호인>은 어느 순간 폭발하는 지점을 통해 관객들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는 원래 보수적인 반공주의의 틀에 머물던 사람이다. 돈 많이 버는 것이 목표이자 과제인 그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는 학생들을 두고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고 다닌다며 국밥집 주인의 아들을 훈계하기까지 한다.

 영화 <변호인> 스틸 컷

영화 <변호인> 스틸 컷 ⓒ 위더스필름㈜


그랬던 그가 권력의 폭력성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뜨거워진다. 그리고 법정에서 폭발하는 그의 외침은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예고편에 잠깐 등장하는 장면처럼 헌법 1조에 따라 국민이 바로 국가라는 것을 지적한 후 열변을 토하는 내용들은 이 영화의 백미다.

또한 영화는 현실과 겹치는 지점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진다. 부당한 권력집단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법을 어기며 국민을 탄압하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80년대의 그러한 실상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관객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심판받지 못한 과거로 인해 처참하게 꼬여 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이 이 영화가 현재 집권 세력의 반대편에서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이 영화를 두고 한편에서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권력을 가진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반역자이며 빨갱이였을 테니까. 또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왜 집권여당이 과거에 노무현을 탄핵했으며 그들과 연합하는 세력이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을 일삼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권력의 적, 국민의 편에 서는 대통령

케네디가 처해있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냉전과 평화의 줄다리기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평등과 인권, 평화를 외치며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에도 그 뜻을 이어가는 것은 험난했다. 재임 초기에는 CIA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작전을 허가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망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용병단체가 피그스 만을 침공하도록 승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쿠바와의 전면전을 원하는 CIA와 군부의 지속적인 요청에 마지못해 절충안을 낸 것이었고, 더 이상의 확전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케네디의 입장이었다.

또한 케네디는 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과 비밀리에 평화를 조율하는 편지들을 교환하며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쿠바 미사일 사태가 핵전쟁의 위기로 번졌을 때도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고 소련과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CIA와 군 수뇌부 등은 전쟁을 원하고 있었다. 쿠바를 지원하는 소련에 대해 선제 핵공격을 주장했던 군 장성들 가운데 한 명은 백악관에서 케네디의 면전을 향해 겁쟁이라는 모욕까지 던질 정도였다.

 노동자들과 악수하는 케네디

노동자들과 악수하는 케네디 ⓒ 영화 자료화면


한편 케네디가 취임하기 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별사를 통해 한 가지 경고를 남긴 바 있다. 당시까지 미국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거대한 부패고리인 군 조직과 군수업체의 결탁이 그것이다. 그는 고별사를 통해 군·산 복합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말을 남긴 후 케네디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줬는데, 이는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로 백악관에는 소련과 그 우방국들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끊임없이 제안하며 베트남전의 확대를 주장하는 군인과 관료들이 있었다.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무기를 납품하는 군수업체들과 결탁해 있던 그들에게 케네디는 적국을 보호하는 반역자이자 빨갱이 그 자체였다.

집권 시기 동안 이들과 대립하며 평화의 원칙을 강조했던 케네디는 자신의 암살이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는 휴가 중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백악관을 향한 쿠데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이후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에게 이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세븐 데이스 인 메이>는 그러한 배경으로 탄생한 영화였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염려하면서도 케네디가 군부 권력자들과 맞섰던 이유는 핵전쟁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이었던 형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전 24시간 안에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는 승자 없는 싸움이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아 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는 과제, 민주주의와 평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무현 역시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반대편에 선 권력자들의 시각에 노무현은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노무현이 종북 빨갱이라는 듯 매도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 땅에 핵전쟁 불안이 조성됐던 순간은 불과 몇 달 전이다.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반발하며 군사적 긴장을 조성했을 때, 정부는 북한이 도발하면 바로 응징하겠다는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자칫하면 전면전이 벌어져 목숨을 잃을 각오를 죄 없는 우리 국민들이 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무척이나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는 기막힌 일이 2013년 초에 벌어졌었다.

더욱이 북한이 핵으로 남한을 공격하면 인류가 용서치 않을 것이라던 국방부 대변인의 언급은 한편으로는 공허함을 던져주기까지 했다. 남한 국민들이 핵전쟁 속에 전멸하더라도 미국과 우방국들이 대신 나서서 복수해 줄 것이라는 뜻 아니면 무엇인가. 이처럼 무책임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핵전쟁이라면 왜 노무현처럼 평화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일까. 

어찌됐든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과제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넘어왔다. 노무현은 죽음에 몰렸고 케네디는 암살당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철지난 반공주의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종북주의자로 탄압한다. 미국에서는 냉전시대 소련의 자리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대신했고 전쟁관련 산업은 여전히 건재하다.

불황이 장기화 되고 안정적인 일자리 대신 비정규직이 넘치는 시대에 달갑지 않은 민영화 바람까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파업을 이어가던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 5천여 명이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언론사 건물을 부수고 들이닥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정부가 국제인권기준 및 노동기준을 위반했다면서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갑자기 영화 <변호인>의 말미, 최루탄 속에서 백골단과 맞서던 송우석 변호사의 외침이 귀에 생생하다. "시민동지 여러분! 시민동지 여러분! 시민동지 여러분!"

JFK 케네디 변호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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