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광활한 우주 공간에 대한 뭇 사람들의 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공포와 동경심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이러한 감정은 기실 평범한 한 개인이 일평생 경험하지 못할 미지의 영역에 관한 의구심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크다. 이러한 동경과 두려움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숱한 SF 장르물들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최근 들어 주류 상업영화에 심심찮게 도입되고 있는 3D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점진적인 외연 확장을 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래비티>를 논하기 전에, 앞서 제작되어 세간의 호평을 받았던 영화 <아바타>와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들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공간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를 3D 화면으로 구현하여 작가, 연출자가 착안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스크린 속 이미지들이 비록 실감나게 구현되었을지언정, 이러한 3D 이미지들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공간을 묘사한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허구의 텍스트를 보다 진실에 가까워 보이게끔 빚어내려는 노력이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를 두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시도임을 미루어보자면, 최근 할리우드 주류 상업영화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3D 영화는 '진짜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려는 영화산업의 욕망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허구에 기반을 둔 영화적 상상력이 스크린 속 2차원적 이미지를 초월할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시각을 사로잡는 유려한 3차원 이미지가 그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이성적 전제를 기꺼이 묵인하게 된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는 이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등을 필두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 물에서 그려진 우주공간의 모습과는 달리, <그래비티>에서 묘사된 지구 근처 우주공간은 차라리 황량한 사막을 연상시키는 적막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장장 17분 간 펼쳐지는 롱테이크 장면은 전경에서 움직이는 배우들보다는 후경에 자리 잡은 우주공간의 압도적인 광활함에 초점을 맞춘다. 채워지지 않은 암흑의 여백은 스크린을 넘어 암전된 상영관에까지 확장되어 보다 깊은 밀도를 자아낸다. 이제껏 체험하지 못했지만 어딘가에 실재할 것이 틀림없는 공간에 대한 시각적 인식은 경외감에 가까운 공포를 느끼게 하며, 여기서 3D 화면이 구현하는 입체적 깊이감은 단순한 3차원적 눈속임을 능가하는 초월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


<그래비티>의 상영시간은 평균적인 상업영화에 훨씬 못 미치는 91분으로, 굉장히 단출한 서사구조를 지닌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제작사가 요구하였던 시나리오의 수정사항-맷 코왈스키와 라이언 스톤 사이의 로맨스, 라이언의 과거회상 플래시백, 미사일 공격의 구체적인 묘사 등은 쿠아론 감독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로지 라이언이 처하게 된 생존의 위협과 고립을 실시간에 가깝게 묘사하였는데, 이렇듯 곁가지적 요소에 기대지 않은 내용상의 선택적 집중은 우주공간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어우러져 관객의 몰입감을 배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영화의 주요인물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와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분)의 관계는 꽤나 흥미로워 보이는 부분이다.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의 베테랑 비행사로서 우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맷과는 달리, 의사 출신의 통신 엔지니어인 라이언은 여러모로 우주에서의 임무에 미숙함을 드러낸다. 로켓팩 수트를 입고 여유로이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맷은 지구 바깥의 세계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그에 비해 라이언은 우주라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이질감과 불확실성에 공포를 지니며, 맷이 경탄해 마지않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체감할 여유조차 지니지 못한다. 두 사람은 우주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어 큰 차이를 드러내지만, 각기 다른 개인사적 아픔으로 인해 지구에서의 삶에 큰 미련과 목적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딸을 잃은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라이언은 우주왕복선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이후에도 생존을 향한 본능적 의지를 잃지 않고 고군분투하지만, 그것이 지구로 안전히 귀환해야 한다는 확고한 목적의식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그러한 그녀에게 '귀환'의 당위를 일깨운 인물은 다름 아닌 맷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라이언을 살려 보내려는 맷의 의지는 그녀의 막연한 생존욕구에 불씨를 당긴다. 맷과의 교신이 끊긴 직후, 희박한 산소량에 기대어 천신만고 끝에 우주정거장에 당도한 라이언은 갑갑한 우주복을 벗어 던진 채 무중력 상태 가운데 몸을 웅크려 찰나의 휴식을 취한다. 이러한 라이언의 모습은 마치 자궁 속에 수태한 태아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장면 이후, 그녀가 숱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지구의 땅을 밟는 아찔한 여정은 라이언이라는 인물의 '재탄생' 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일까.


귀환선에 몸을 실은 채 지구 어딘가의 바다에 불시착한 라이언은 뭍으로 기어 올라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지구의 흙을 밟는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인류 진화과정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다. 이는 생명 탄생의 초석에 해당하는 운석 충돌 이후, 외계로부터 당도한 생명의 배아 물질이 지구의 환경 가운데 원시생명체를 탄생시켰고, 해양을 중심으로 활발한 진화를 이룩한 일군의 고등생명체들에 의해 인류가 도래하였다는 생물학계의 어느 학설을 연상케 한다. 이를 두고 보자면, 라이언의 귀환은 애초 지구에 속했던 인물의 '귀향'이라기보다, 우주에서의 삶을 육화한 맷의 희생에 의해 '재탄생'된 라이언의 '도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래비티>의 세계관은 한층 확장된다. 지구에서 우주로, 다시금 우주에서 지구로. 라이언의 눈에 비친 지구의 푸른 산하는 한층 아름다운 빛을 띤다. <그래비티>는 이렇게 신화를 완성하였다.

2013.10.27 13:35 ⓒ 2013 OhmyNews
그래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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