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플레이오프의 깜짝스타 최재훈의 활약이 플레이오프에서도 연일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타석에서는 플레이오프 1, 2, 3차전에 걸쳐 5타수 1안타의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면 존재감이 크게 달라진다.

2차전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8회말에는 윤요섭 타석에서 던진 변진수의 빠지는 공을 몸을 날려 잡아냈고, 곧이어 찾아온 1사 3루 위기에서는 허를 찌르는 견제로 3루 주자 손주인을 횡사시켰다. 이어지는 2사 2루에서는 정수빈의 원바운드 송구를 잡아 박용택을 홈에서 아웃시키는 만점 플레이.

최재훈의 슈퍼세이브는 3차전에서도 이어졌다. 5:4로 근소하게 앞선 9회 초 1사 2루에서 터진 정성훈의 안타 때 임재철의 송구를 잡아 이대형을 홈에서 아웃시켰고, 뒤이어 나온 이병규의 안타 때에는 민병헌의 송구를 받아 문선재를 홈에서 아웃시키며 경기를 끝냈다. 올 포스트시즌이 낳은 최고의 스타라고 해도 무방할 최고의 활약이었다.

그러나 신고선수 출신의 그는 두산의 주전포수가 아니었다. 최재훈의 원래 임무는 이제는 베테랑 포수가 되어가고 있는 양의지의 백업이었다. 양의지는 주전 마스크를 쓴 첫해인 2010년에 20홈런을 때려내며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했고, 이후 4년째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양의지 또한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2차 8라운드 지명, 전체 순번 59위에 불과한 '주목받지 못한 신인'이었다. 이런 선수들을 발굴하고, 키워낸 '포수왕국' 두산의 힘은 대체 무엇일까.

프로 원년부터 베어스는 '포수왕국'의 팀이었다. 1982년의 OB베어스만 해도 김경문, 조범현, 정종현이라는 국가대표급 포수 3인방을 보유하고 있었다. 1986년에는 청보 핀토스에서 트레이드 되어온 김호근까지 가세해 10홈런을 치며 주전포수 경쟁에 더욱 불을 붙였다. 그러나  김경문과 조범현의 벽을 넘지 못한 그는 1990년에 다시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도 '포수강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파이팅이 좋았던 박현영, 공격력이 뛰어났던 이도형, 수비가 훌륭했던 김태형이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다. 이 중 포수의 본업에 가장 충실했던 김태형이 줄곧 마스크를 쓰게 되자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박현영과 이도형은 삼성과 한화로 각각 팀을 옮겼다. 심지어 이들 때문에 2군을 전전하던 조경택은 한화로 이적한 뒤 '99 한화'의 주전 포수가 되어 이글스 역사상 첫 우승을 이끌었다.

포수왕국 두산의 '화룡점정'은 90년대 후반에 이루어졌다. 1996년에 최기문, 1997년에 진갑용, 1999년에 홍성흔이 차례로 입단했다. 최기문은 수비가 뛰어난 안정적인 포수였고, 진갑용은 타격과 수비가 모두 수준급인 포수였다. 그러나 주전마스크를 쓰게 된 것은 포수로서의 기량은 다소 부족했으나 공격력과 파이팅이 좋고 스타성이 있었던 홍성흔이었다.

홍성흔에게 밀린 최기문은 1998년부터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진갑용 또한 1999년에 삼성으로 팀을 옮겼다. 그리고 두 포수는 새로운 팀에서 만개한 기량을 펼쳤다. 2006년 시즌에서는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4개 구단이 두산 출신의 포수에게 주전 마스크를 맡기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삼성 진갑용, 두산 홍성흔, 한화 이도형, 롯데 최기문)

김응룡 현 한화이글스 감독은 오래 전부터 선수 욕심이 많기로 유명했다. 팀에 들어올 자리가 없는 선수라도 좋은 선수라면 데려오고 싶어했고, 팀 내에서 뛰어난 선수가 후보를 전전해도 다른 팀에게는 내주지 않으려 했다. 훌륭한 백업을 손에 꽁꽁 쥐고 있으려는 심보는 사실 모든 감독들의 공통된 성향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놀부 심보'는 포수왕국 두산의 역사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좋은 선수 여럿이 한 포지션에 겹치더라도 2군에서 썩히는 보통의 팀들과는 달리, 두산은 이들을 트레이드 카드로 적극 활용하여 팀의 구멍을 메우는 동시에 선수에게도 앞길을 터주었다. 비단 포수뿐만 아니라, 투수와 야수 전 포지션에 거쳐 두산은 트레이드에 가장 적극적인 팀으로 꼽힌다. 

1982년 OB부터 2013년의 두산에 이르기까지, 베어스가 좋은 포수들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베어스산 포수의 덕을 본 수많은 다른 팀들이 덩달아 불행해졌을 것이며, 꾸준히 좋은 포수를 키워낸 포수왕국 베어스의 역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고인 물은 썩으며, 나갈 길을 터줘야 들어오는 물 또한 생긴다는 자연의 이치를 '팀 베어스'는 수십년째 손수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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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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