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시즌 13차전을 앞둔 지난 14일. 대구구장에는 미묘한 전운이 감돌았다. 1위를 수성하고자 하는 디펜딩챔피언 삼성과 LG의 대결은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는 수사를 덧붙이며 폭발적인 이목을 끌었다. 전날 발생한 조동찬-문선재의 충돌로 인해 양팀 팬들은 한껏 격앙되었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경기 전까지 삼성은 54승 2무 34패, LG는 56승 36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삼성이 승차 없이 근소한 승률로 LG를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승리가 더 절박한 쪽은 LG였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LG는 후반기 들어 처음으로 1위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LG가 페넌트레이스 후반기에 1위의 자리를 지켰던 것은 1997년 7월 16일이 마지막이다.

양팀 모두 반드시 잡아야했던 이날 경기에 삼성은 차우찬을, LG는 신정락을 선발로 내세웠다. 차우찬은 1회 선취점을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이후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7과 2/3이닝을 2실점으로 막는 역투로 팀에게 승리를 안겼다. 개인 기록으로는 시즌 8승째(4패)였으며, 평균자책점도 3.59로 낮췄다.

최근 들어 호투를 거듭하고 있는 차우찬이지만, 전반기 성적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선발과 중간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동안은 필승계투조에 속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는 아무 때나 올라오는 투수가 되었다. 심지어 패전처리로 등판하는 날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최고 투수에 빗댄 차바시아라는 기분 좋은 별명 대신, 폭탄을 의미하는 차르봄바라는 유쾌하지 못한 별명도 얻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았던 차우찬의 부활은 7월 25일 경기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이날 차우찬은 성적 부진으로 퇴출된 외국인 투수 로드리게스 대신 마운드에 올랐다. 잘 던져줄 거라는 믿음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마땅한 선수가 없어 올린 땜빵선발에 가까웠다. 이 경기는 차우찬 개인에게 68일 만의 선발등판이었으며, 동시에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오치아이 투수코치 트위터에서 캡쳐

오치아이 투수코치 트위터에서 캡쳐 ⓒ 오치아이 트위터


지나달 25일. 이날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의 투수코치를 맡았던 오치아이(落合英二)의 마흔다섯번째 생일이었다. 선동열-양일환-오치아이로 이어지는 걸출한 투수코치들을 보유했던 덕에, 삼성은 10여년 간 리그 최강의 불펜을 구축해오고 있다. 최강 불펜의 든든한 비호 아래 삼성은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 투수코치로 재임하던 시절, 오치아이가 가장 아꼈던 투수는 차우찬이었다. 차우찬은 역대 최고의 유망주 풍년으로 평가되는 2006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삼성이 2차지명 1순위로 이름을 불렀던 선수였다. 현재 활약 중인 2006년 신인들의 명단(한기주, 이재원, 김기표, 유원상, 손용석, 김효남, 나승현, 류현진, 손영민, 강정호, 민병헌, 박경태, 황재균, 배장호, 조용훈, 김유신, 황성용, 최주환, 모상기, 유재신, 유선정, 양의지, 이명기)을 고려할 때, 삼성이 차우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른 것은 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차우찬은 프로에서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적어도 오치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1군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판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차우찬의 평균자책점은 6.11, 4.17, 6.09였다. 하지만 오치아이를 만난 이후로 차우찬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2010년과 2011년, 차우찬은 2년 연속 10승 투수가 되었다. 평균자책점 역시 2.14, 3.69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오치아이는 차우찬의 등판이 있을 때마다 그의 피칭을 평가하고 격려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차우찬을 불에 비유하고, 류현진을 물에 비유하며 차우찬의 장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언급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다.

삼성 구단은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오치아이와 연장계약을 원했지만 그는 삼성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내가 많이 아팠던 데다가 자신의 존재로 인해 토종 투수 코치들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었다. 김태한 코치에게 투수코치 직책을 넘겨준 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오치아이 시절 팀의 에이스였던 차우찬은, 오치아이가 떠난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12년의 차우찬은 6승 7패에 6.02의 평균자책점이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2013년에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차우찬이었으나, 오치아이의 생일인 7월 25일 경기를 앞두고는 심기일전을 단단히 했다.

이날 경지 전 차우찬은 오치아이에게 스승님의 생일선물로 승리를 바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오치아이 투수코치 또한 이 일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랑스럽게 공개하며, 차우찬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팬들에게도 차우찬을 믿어달라고 주문했다.

스승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던졌기 때문일까. 차우찬은 이 경기에서 6과 1/3이닝 동안 120구를 뿌리며 NC 타선을 무실점(1피안타)으로 막아냈다. 5이닝 동안 안타를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 경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7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8개의 삼진을 빼앗으며 위기를 재차 극복해냈다. 팀이 승리했음은 물론이다.

지난달 25일 이후 차우찬은 총 4번 마운드에 올랐다. 8월 2일(대 LG)에는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6이닝 3실점으로 퀼리티스타트를 거두었다. 중간계투로 등판한 8월 8일(대 한화)와 8월 9일(대 한화) 경기에서도 각각 1과 1/3이닝 무실점, 4이닝 2실점의 수준급 호투를 선보였다. 후반기 들어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8월 14일(대 LG) 경기마저 7과 2/3이닝 2실점의 위력투를 선보이며 팀이 선두자리를 지키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몇 경기를 통해 차우찬의 부활을 예단하긴 이르지만, 분명 그는 예전의 차우찬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삼성은 프로 원년부터 강팀의 위용을 지켜오고 있지만, 좌완 에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팀이다. 비운의 에이스로 유명한 이선희, 재일교포 출신의 김일융 정도가 전부이다. 차우찬은 그러한 삼성팬들의 좌완 에이스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선수이며, 실제로 2010년과 2011년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삼성팬들은 잃어버린 좌완 에이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보여줄 차우찬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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