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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창 아주대 에너지학과 겸임교수
 김영창 아주대 에너지학과 겸임교수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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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6일 오후 4시 33분]

"자기 돈 내고 전기 쓰겠다는데 왜 전기 쓰지 말라고 협박하나. 국민이 봉인가."

'전력 위기'는 없었지만 '협박'은 끝나지 않았다. 발전기 한 대라도 불시에 고장 나면 지난 2011년 9월 15일과 같은 '순환 정전'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경고도 결국 '엄포'로 끝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전력거래소는 오히려 온 국민이 절전에 동참한 덕에 최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며 또 다른 위기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한국전력거래소는 지난 12일부터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된다며 대국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한여름 폭염에도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건물까지 냉방을 멈췄고 일부 공장은 아예 일손을 놔야 했다. 하지만 전력수요 급증으로 예비력이 100만kW(킬로와트)대까지 떨어질 거란 예상과 달리 지난 사흘 예비력은 줄곧 400만kW 이상을 유지했다.

결국 산업체 수요 관리 등으로 충분했을 텐데 공연히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순환 정전'까지 앞세운 위기감 조성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보는 이도 있다. 바로 전력거래소 전무 출신이면서 우리나라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문제를 지적해온 김영창(66) 아주대 에너지학과 겸임교수가 대표적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전력 소비가 많은 곳에) 절전을 유도할 일이지, 이렇게 온 나라가, 장관까지 나서 전 국민을 상대로 절전하라고 협박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미국이 그럽니까, 일본이 그럽니까?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난리가 났어도 우리처럼 하진 않았습니다."

"예비력 부족하면 블랙아웃? 발전기 고장보다 송전망 문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이날 무더위보다 이틀째 이어진 '전력수급 비상 상황'을 더 답답해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전력거래소가 전국 송전·발전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전력계통 붕괴를 막는 장치인 EM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예비력도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9.15 순환 정전 사태가 발생한 것도, 미국보다 몇 배 많은 예비력을 확보하면서도 매년 '전력수급 대란'을 걱정하는 것도 결국 EMS 때문이란 것이다.

예비력이란 '실시간 운전 중인 발전기가 갑자기 고장 나거나 전력수요가 급증해 전력수급 균형이 깨질 경우에 대비해 최대 전력수요보다 초과 보유하는 공급여유능력'(전기위원회)을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예비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블랙아웃(광역정전)이나 전국 발전기가 동시에 멈추는 '전력계통 붕괴'가 발생하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실시간 운전 중에 예비력이 부족하면 순환정전이나 예고된 정전으로 부족한 예비력을 확보해요. 예비력이 부족하다고 블랙아웃이 발생한다는 보장이 없는 거죠. 또 우리나라처럼 전력설비 규모가 8000만kW가 넘는 나라에선 발전기 고장으로 전력 계통이 붕괴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송전망 문제로 계통 붕괴가 일어날 확률이 더 높은데 전력거래소는 예비력 400만kW란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어요."
9.15 정전 사태 이후 최대전력수급 및 예비력 변화 추이
 9.15 정전 사태 이후 최대전력수급 및 예비력 변화 추이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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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현재 전력거래소 시장운영규칙에 규정한 운영예비력 400만kW도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한다. 가장 용량이 큰 100만kW급 발전기 2기가 실시간 운전 중 동시에 고장 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200만~250만kW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도 예비력 150만kW를 유지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한때 예비력 기준을 300만kW까지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예비력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전력수급 상황이 미국보다 더 안정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400만kW면 원전 4기가 동시에 고장 날 용량인데 그럴 확률은 '제로'예요. 전력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걸 감추려고 쓸데없이 많은 예비력을 확보하다보니 매년 수천 억 원씩 연료비만 낭비하고 있는 거죠."  

김 교수는 공공연한 '전력위기 협박'이 이명박 정부 이후, 특히 9.15 사태 이후 등장하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에도 전력수급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전 국민적인 정전 훈련이나 절전 캠페인까지 공공연하게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수시로 크고 작은 정전이 일어나요. 다만 급전원이 순환 정전을 하려면 엄격한 절차에 따라야 하고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EMS를 제대로 안 쓰니까 정확한 근거가 없는 거예요. 결국 순환 정전을 결정하면 사표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 순환 정전 사태까지도 안 가려고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거죠."

미국의 경우 EMS를 활용해 정확한 예비력을 예측할 수 있어 비상시에는 미리 약속한 대형 전력구매자의 전력 공급을 순차적으로 차단하는 식으로 예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계획된 순환 단전'인데, 9.15 사태 때는 정확한 예비력을 계산하지 못해 주먹구구식으로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예비력이 부족하겠다 싶으면 우리처럼 텔레비전에 방송 안 해요. '최우선 고객' 리스트가 있어서 전력 구매자에게 미리 얘기해서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대신 기본요금 같은 고정비를 탕감해줘요. 우리 같이 전력사용요금 같은 변동비를 탕감해주면 실제 절약한 전력요금보다 더 많은 보상비를 받아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1년에 12시간은 공급 부족이 '정상'... '전력수급 대란' 과장"

12일 전력거래소 긴급전력수급대책상황실에서 언론사들이 전력수급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12일 전력거래소 긴급전력수급대책상황실에서 언론사들이 전력수급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 황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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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전력수급 대란'에 대한 정의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흔히 발전 설비 부족을 전력수급 대란 원인으로 돌리지만 애초 공급 부족 상황을 감안해 발전설비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설비 투자계획을 할 때 1년에 0.5일(12시간) 정도는 공급 부족이 발생할 걸 감안해요. 공급 부족 상황이 전혀 없게 하려면 설비 투자를 무한대로 늘려야 하기 때문이죠.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1년에 1시간씩 12번 정도는 공급이 부족해 산업체 전기를 절약하든가 부하를 차단하든 해야 하는 데 이런 것까지 수급 대란으로 봐야 하는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그렇게 본다면 우린 매년 한여름에는 냉방을 못하고 한겨울에는 난방을 못하는 상황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거죠."

결국 전력거래소는 주어진 설비를 최대한 가동해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게 본연의 역할인데도 400만kW 예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어떤 대란이 발생하는지 설명도 하지 못하면서 막연히 '블랙아웃' 공포만 부추겨 왔다는 것이다.

정작 김 교수가 걱정하는 건 예비력 부족보다 송전선 과부하다. 최근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쪽 전문가로 참여하면서도 원론적으로 송전선 필요성은 인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송전선의 과부하는 바로 전력계통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발전기 한두 기 멈추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전력수요 절반 가까이가 서울과 수도권 쪽에 몰려있고 발전기는 영남 쪽에 몰려 있어요. 그런데 지난 12년 사이 전력수요와 설비용량은 2배 가까이 늘었는데 송전선 용량은 겨우 20% 늘었어요. 전력 수송에 한계가 있는 거죠. 이러다 만약 하나가 툭 끊어지면 주변 것도 같이 끊어지는 종속사고가 발생해요. 이게 2003년 뉴욕 대정전이 일어난 이유예요. 송전선로에 과부하가 생기면 발전기 예비력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어요." 

송전선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송전선 탈락으로 발생하는 종속사고를 감안해 전력계통을 운영해야 하는데 전력거래소가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력거래소가 비용 문제를 내세워 송전선 탈락 같은 상정사고 분석 없이 경제 급전을 해온 사실 지난 7월 초 국회-정부 합동 기술조사 결과에서 드러나기도 했다.(관련기사: 예비력 모자라 전력위기? 전력거래소 '주먹구구' )

끝으로 김 교수는 '절전=도덕'이란 편견, 한발 더 나아가 전력수급 부족을 내세워 전기 요금을 인상하려는 움직임에도 일침을 가했다. 정부가 단순한 에너지 절약 차원의 '상시적 절전'과 전력설비 부족을 해소하려는 '일시적 절전'을 뒤섞어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전도 중요하지만 절전에 따른 조업 단축이나 사무실 근무 환경 악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 GDP 감소도 함께 따져봐야 해요. 물론 석유, 석탄 등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건 맞아요. 이건 시간에 관계없이 꾸준히 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 얘기하는 절전은 에너지 부족 때문이 아니라 매년 특정 기간, 특정 시간대에 전력 사용이 집중돼 발전기 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 두 가지는 구분해야죠. 이건 전기 요금 올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요." 


태그:#김영창, #전력위기, #블랙아웃, #순환정전, #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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