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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헝거 게임! 확률의 신이 당신의 편이기를!"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 게임> 시리즈는 '캐피톨'이라는 중앙도시가 나머지 구역을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캐피톨은 구역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헝거 게임'이라는 행사를 연다. 매년 12개 구역에서 10대 남녀 24명을 뽑아 한 명만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하고, 시청자인 캐피톨 시민들은 이를 TV로 보며 환호한다.

죽음의 게임 대상자로 뽑힌 24명의 소년소녀들은 확률의 신이 자신의 편이기를, 2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확률의 신은 이 중 23명의 편은 분명히 아니다. 23명은 싸움 기술이 부족해서, 스폰서(게임 내에서 자신을 지원하는 재력가)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그저 운이 없어서 게임 중 사망한다.

이 엄청난 확률(수많은 소년소녀 중 24명에 들 확률, 그리고 게임에서 23명을 물리치고 이길 확률)을 뚫은 단 한 명에게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 외에도 엄청난 혜택이 주어진다. 호화로운 집에 살며 매달 연금을 받으며 캐피톨의 인기도 한 몸에 누린다. 이 때문에 잘 사는 구역인 1번, 2번 구역에서는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일종의 '살인 과외'를 받은 후 게임에 자원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살아남은 그들도 대부분 행복하지 못하다. 게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의 기억에 시달린다. 약이나 술로 고통을 달랜다. 캐피톨 시민들의 사랑은 이상한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우승자는 매년 캐피톨로 불려가 그들의 노예나 성 노리개가 된다. 이를 거절하면 캐피톨은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이는 방식으로 처벌을 내린다.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헝거 게임에서 '확률의 신'에게 선택받은 이들은 '캐피톨의 연인'이 되어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헝거 게임에서 '확률의 신'에게 선택받은 이들은 '캐피톨의 연인'이 되어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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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다. 1991년 8월 8일, 알바니아 난민 2만여 명을 실은 화물선 '블로라' 호가 이탈리아의 바리 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확률의 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었다. 당시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극심한 경제적·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알바니아의 두러스 항에서부터 배에 오르기 위한 '확률 전쟁'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12명이 물에 빠져 사망하기도 했다. 그 중 이 사진에 찍힌 2만여 명은 운 좋게 배에 오를 수 있었고 새 나라에서 새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외국에 도착하자 그들은 불법 입국자 신세가 됐다. 이탈리아 당국에서 난민들이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지 못 하거나 항구에서 뙤약볕을 쬐며 음식도 없이 기다려야 했다. 몇몇은 물에 뛰어들어 탈출을 꾀했다. 그러다 결국 사용이 중지된 축구장에 임시 수용됐고, 몇 번의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이 며칠 후 알바니아로 귀국조치됐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터키 해안가에서 세 살짜리 난민 어린이의 시신이 발견돼 전세계에 충격을 줬다. 그도 가족과 함께 유럽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다가 변을 당했을 터다. 아이의 아버지인 압둘라 쿠르디(40)는 아내와 두 아들의 사망을 접한 후 "꿈꿨던 모든 게 끝났다"며 절망했다고 한다.

유럽 각국이 난민 수용 정책을 펼치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음에도, 실제로는 난민선을 다시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4년이 지났지만 1991년과 달라진 건 없다. 확률의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소설 <헝거 게임>에서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우승자들을 중심으로 암울한 현실에 반기를 드는 반란이 일어난다. 영화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의 한 장면.
 소설 <헝거 게임>에서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우승자들을 중심으로 암울한 현실에 반기를 드는 반란이 일어난다. 영화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의 한 장면.
ⓒ 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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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또한 '확률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모두 '확률 전쟁'이다. 선택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열심히 한다면 나도 마치 '헝거 게임 우승자'처럼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헝거 게임'의 확률의 신이 23명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 확률의 신도 모두에게 미소를 날리지는 않는다.

독일 하노버대학교의 엥겔하트·바그너 교수가 2014년 2월 발표한 토론 논문을 보면, 연구 대상 24개국 중 한국의 '인지상향 이동성(나의 사회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은 가장 높다. 반면 '실제상향 이동성(실제 사회 수준이 올라가는 정도)'은 20위로 하위권이다. 즉, 내가 확률의 신에게 선택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만, 실제 선택받는 이는 극소수란 얘기다. 게다가 사회 비용 지출(Social expenditures)은 24개국 중 꼴찌다.

선택을 받는다 해도 완전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취업만 하더라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면 야근, 사내 경쟁, 상사의 질책 등 또 다른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정을 만들려 해도 높은 집값과 생활비가 그들을 괴롭힌다.

결국 편하게 사는 이들은 애초부터 이런 확률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이들, 즉 <헝거 게임>에서는 캐피톨 시민들, 난민 문제에서는 전쟁이나 불안이 없는 사회의 시민들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소수의 상위계급이 이에 해당할까.

판타지 소설에서는 이런 암울한 상황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해결한다. 캐피톨에 의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타파해 나간다.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우리는 언제까지 확률의 신이 나의 편이기를 바라고,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착각'할 것인가?


태그:#헝거게임, #난민,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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