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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 들을 청(聽)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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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는 '엄마'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듣고 '엄마'라는 그 생(生)의 첫 마디를 할 수 있게 될까? 모르긴 해도 수천 번은 족히 넘어야 가능할 것이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은 입이나 목의 떨림을 기억하는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거의 언어장애인(벙어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루 동안의 언어 사용 중 듣기가 45%(말하기 30%, 읽기 16%, 쓰기 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듣기는 언어 생활의 시작이다. 심리치료사들은 환자의 말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상당한 심리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첫째 아들의 책 읽는 소리, 둘째 술 익는 소리, 세 번째로는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꼽았다고 한다. 들려오는 소리 자체보다는 그 소리 너머에 이미 마음이 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들을 '청(聽, tīng)'자에 마음 '심(心)'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聽)자는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누운 눈 목(目), 한 일(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임금같이 큰 귀와 열 개의 눈, 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간체자를 쓰는 현대 중국어에서는 웃을 은(听, tīng)자가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들을 문(聞, wén)자는 마음으로 이해해 보다 깊은 심연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듣는 것도 태도와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귀를 기울려 듣는 경청(傾聽, qīngtīng), 몰래 듣는 도청(窃聽, qiètīng), 옆에 듣는 방청(傍聽, pángtīng), 감시할 목적으로 듣는 감청(監聽, jiāntīng) 등이 있다. 귀를 씻고 공손하게 듣기도 하고(洗耳恭听, xǐ'ěrgōngtīng), 귀를 막고 듣지 않기도 한다(充耳不闻, chōng'ěrbùwén).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听而不闻, tīng'érbùwén)고 했고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으라고 한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라는 시에서 "들리는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욱 아름답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피리들아, 계속 불어라./ 육체의 귀에다 불지 말고, 더욱 아름답게/ 영혼의 귀에다 불어라, 소리 없는 노래를."라고 노래하고 있다.

마음을 열고 우주의 기를 모아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면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리라.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친구 종자기(鐘子期)에 얽힌 고사 '지음(知音)'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소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귓바퀴와 귓볼을 형상화한 귀(耳)가 어쩌면 모든 지혜와 소통의 중심에 놓인 문인지도 모르겠다.


태그:#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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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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