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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의 我는 용도가 다양한 창의 형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늘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창은 '나'를 나타내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 我의 자형변화 갑골문의 我는 용도가 다양한 창의 형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늘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창은 '나'를 나타내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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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얻자 중국에서도 <我是歌手 Wǒ shì gēshǒu>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어설픈 실력으로 무늬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수보다는 가수 본연의 실력과 아이덴티티를 지니기를 바라는 대중들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정글과도 같은 경쟁의 전장터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실력만이 자신을 지켜줄 무기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창(戈)을 든 사람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을 나타내는 我(wǒ)이다.

자살한 장궈롱(張國榮)이 불렀던 <我>라는 노래를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서 상원제(尚雯婕)가 리메이크하여 불렀는데 가사 중에 '나는 바로 나다(我就是我 Wǒ jiù shì wǒ)'라는 대목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내가 그녀가 되고, 그녀가 내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굳건한 나 자신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최근 중국의 젊은이들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SNS를 통해 나(我)를 발음이 비슷한 '偶(ǒu)'로 바꾸어 표현한다고 한다. 방언의 발음을 가져와 사투리가 갖는 친근함과 신선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한 자녀 정책' 이후 너무 홀로 고립된 자아에 대한 반대급부로 '짝, 커플'의 의미가 담긴 '偶'가 환영받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가운데 획이 끊어진 我 나를 버리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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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고장 중국 황산(黃山)에는 여자 조상을 따로 모신 청의당(淸懿堂)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그 현판에 쓰인 '我'는 가로획이 끊어져 있다. 여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나는 늘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지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기미독립선언문은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我가 '나'인지 '우리'인지 모호한 것처럼 가족공동체 의식이 강한 한국인은 '나'와 '우리'의 구분이 모호하다. 예를 들면 '우리 아내', '우리 엄마' 등이다. 우리집을 중국어로 '我家'가 아닌 '我们家'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혼란 때문일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은 중국어로 我思故在(Wǒ sī gù zài)라고 한다. 

'나'를 나타내는 말에는 我 이외에도 吾(wú), 予(yú), 余(yú) 등이 있는데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吾'는 육체로서의 일반적인 자신을 이르고, '我'는 수련의 결과로 이룬 진정한 자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나(我)'는 전통사회에서 국가나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작은 존재에서 점점 스스로 자존감을 갖는 소중한 존재로 발전되어 왔다. 인간은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와 행동의 방식을 유지, 고집하며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我行我素(wǒxíngwǒsù)의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태그:#我,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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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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