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버린> 영화 포스터

▲ <더 울버린> 영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랑했던 진 그레이(퍔케 얀센 분)를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던 울버린(휴 잭맨 분)은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은둔한다. 어느 날 나타난 유키오(후쿠시마 리라 분)는 야시다(야마노우치 할 분) 회장이 찾는다는 말을 전한다. 지금은 정치,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지만,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울버린에 의해 목숨을 구했던 적이 있는 야시다. 죽기 전에 다시 보고 싶다는 부탁을 들은 울버린은 유키오와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재회한 야시다는 울버린에게 영원불멸의 삶을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내 야시다는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에 나타난 괴한들은 손녀 마리코(오카모토 타오 분)의 납치를 기도한다. 마리코를 보호하던 울버린은 자신의 치유 능력이 약해졌음을 감지한다. 원인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적의 공격과 추격은 계속되고, 울버린과 마리코는 필사의 도주를 한다.

마블의 간판 주자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그리고 울버린

현재 DC코믹스가 슈퍼맨과 배트맨을 실사 영화의 투 톱으로 내세운다면, 라이벌 마블 코믹스 진영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울버린의 쓰리 톱 체제다. 그러나 워너브러더스의 자회사인 DC코믹스가 모든 캐릭터를 관리했던 것에 비해, 마블은 어렵던 시절 몇몇 슈퍼히어로를 다른 영화사에 팔았던 관계로 지금 스파이더맨은 소니픽쳐스, 울버린은 20세기폭스로 찢어진 상태다. 20세기폭스사에서 맹활약중인 엑스맨들 중에서 울버린은 간판 스타다.

2009년 작품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이전 작품이었던 <엑스맨>(2000) <엑스맨 2- 엑스투>(2003)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의 과거로 돌아가, 3부작이 다루지 못했던 '왜 울버린은 기억을 잃어버렸는가'와 '울버린의 몸에 아다만티움은 어떻게 이식되었는가'를 짚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이은 울버린의 두 번째 모험담인 <더 울버린>은 울버린의 형 세이버투스와 동료 갬빗을 건너뛰고,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이후 시간대로 이동한다. 영화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마지막에 진 그레이를 죽였던 울버린이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사는가로 시작한다.

<더 울버린> 영화 스틸

▲ <더 울버린> 영화 스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울버린이 극복해야 하는 트라우마와 운명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홀로 산속에 머무는 울버린이 사냥꾼과 마찰을 일으키는 도입부는 그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냥꾼에게 공격받은 곰이 마치 자길 죽여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걸 느낀 울버린은 곰의 죽음과 자신의 바람이 다르지 않음을 직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던 상처와 자기 혼자 불사로 몸으로 살아가는 운명은 그를 이중으로 짓누른다.

<더 울버린>은 그에게 덧씌워진 트라우마와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영화는 1982년에 발표되었던, 일본으로 간 울버린이 마리코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그래픽 노블 <울버린>에서 이야기와 인물의 일부분을 빌려 와 새롭게 변형했다.

일본의 현대적인 도심, 빠칭코 오락실, 일본의 전통 고성 등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닌자, 사무라이 로봇과 대적하는 울버린은 돌연변이라는 태생적인 타자적 입장과 유사한, 일본이란 낯선 공간에 존재하는 이방인을 경험한다.

이국적인 공간에 갇힌 울버린이 만나는 고립성은 울버린의 운명과 동격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잃고,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수순은 근래에 등장한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의 추락과 극복이란 서사와 유사하다.

<아이언맨 3>에서 외계인의 존재에 두려워하며 슈트에 집착하던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나, <맨 오브 스틸>에서 지구에서의 정체성을 의심하던 클락 켄트(슈퍼맨)가 배를 타고 떠돈 것처럼 울버린도 과거 속에서 방황했다. 그러나 그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지하감옥을 올라오며 자신을 이겨냈던 브루스웨인(슈퍼맨)처럼 다시금 힐링팩터의 능력을 회복하고 적과 마주한다.

<더 울버린> 영화 스틸

▲ <더 울버린> 영화 스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새로운 시리즈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은 완수했다

이렇게 <더 울버린>도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추락과 극복의 서사를 사용했으나 그리 만족스럽진 않다.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고립감은 표현했을지언정, 일본에서 무엇을 깨닫는 접근에 도달하진 못한다. 일본에 왔던 미국 장교의 이야기인 <라스트 사무라이>와는 대조적인 자세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네이든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 분)가 사무라이의 자세를 배우며 지켜야 할 대상과 싸워야 할 가치를 되찾았던 것에 반해, <더 울버린>은 그저 일본이란 공간을 정처없이 떠돈다.

<더 울버린>이 일본의 철학을 버린 자리를 닌자와 사무라이가 날뛰는 일본풍의 액션으로 채우는 통에 덩달아 <엑스맨> 시리즈의 고유한 볼거리인 강력한 돌연변이도 실종됐다. 영화 속에서 돌연변이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는 독을 사용하는 바이퍼(스베트라나 코드첸코바 분)와 미래를 읽는 유키오 정도. 카드를 이용한 능력, 순간 이동,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 전기 인간 등의 다양한 돌연변이가 등장했던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비한다면 심심할 지경이다.

제작사인 20세기폭스사는 시리즈의 프리퀄(전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다음 편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년 개봉 예정)에 울버린이 효과적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의 엑스맨 인물들이 모두 만나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울버린이 다시 한번 활약하자면 어떤 식으로든 그의 트라우마는 정리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선 <더 울버린>은 임무를 완수했다.

<더 울버린>을 보며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은 영화가 모두 끝난 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을 보여줄 때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과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합쳐지는 짧은 영상은 <엑스맨> 시리즈의 모든 역사를 통합시킬 후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지루한 일본 여행 끝에 만나는 2014년의 짧은 예고편 하나 건지자고 두 시간을 투자하는 건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마치 <어벤져스>를 위해 <아이언맨2>를 희생시켰던 마블을 연상시키는 실수를 20세기폭스도 저지른 것일까. 이것마저도 슈퍼히어로 장르를 만들려면 겪어야 할 관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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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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