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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의 역사
 인종차별의 역사
ⓒ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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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데 내 앞으로 백인 10명이 걸어올 때와 흑인(또는 동남아인) 10명이 걸어올 때, 이 두 그룹 중 어떤 무리가 다가올 때 더 두려움을 느끼는가? 만약 내 딸이 나중에 커서 외국인과 결혼하면 백인과 흑인 중 어느 누구와는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흑인 10명이 백인 10명보다 훨씬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흑인만은 안 된다"고 할 것 같다.

내가 '인종차별주의자'인 이유

내 생각이 이렇다면 난 '인종차별주의자'인가?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1949~2007)가 쓴 <인종차별의 역사>(예지)를 읽으면 인종차별은 아주 가까이, 바로 내 마음에서 똬리를 틀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B 부인은 딸이 흑인과 결혼만 하지 않는다면야 흑인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 스트라스부르의 카페 주인인 C씨는 아랍인과 이슬람교도 손님을 경계한다.(중략) E씨는 여자들을, F 부인은 젊은이들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고용주와 경찰관을 싫어하듯이 G씨는 실업자와 공산주의자를 깔본다. H 부인은 동성애자들에 관해서 독설을 내뱉는다."(14-15쪽)

들라캉파뉴는 "이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라고 묻는다. 답은 '인종차별주의자'다. 들라캉파뉴는 우리에게 새로운 개념의 '인종차별주의'를 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인종차별을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동남아 사람들을 무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이란 "타자로서의 타자에 대한 증오다. 흑인으로서의 흑인, 경찰관으로서 경찰관, 동성애자로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증오"라고 단호히 말한다. 달라캉파뉴 인종차별 개념에 벗어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 한마디가 '대학살'을 부른다

문제는 지나가는 '흑인', '동남아 사람', '동성애자'에 대해 "짐승 같은 놈", "저주받을 놈", "냄새가 난다" 등의 독설과 내 속에 똬리를 튼 '증오'가 나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그 사회 구성원과 그 사회 집단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그들에 대한 증오는 객관화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과 '흑인노예', 나치 '유대인 학살'과 터키인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르완다 학살', '코스보 인종청소' 등등 수많은 대학살은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 파멸은 콜럼버스가 그들을 "'위험한 식인종'들, 가혹하게 다룰 것"이라고 권하면서다. 흑인 노예를 "저주받은 '검은' 인종"으로 취급해 노예로 삼은 기독교는 창세기 9장 20-27절에 나오는 "가나안 자손들이 영원히 셈과 야벳의 자손들의 종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 중 어디에도 '노아의 아들'이 특정 피부색을 가졌다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독교는 검은 '인종'을 저주받은 '인종'으로 만들어버렸다.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도 죄책감은커녕 착취와 학살을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않았다. 

"노예 상인들은(그리고 그의 공모자들은) 고대사회의 '노예주인들'과는 달리-비록 단기적이라고 해도- 자기 노예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흑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4세기 동안 한결 같이 너무나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던 까닭에, 흑인들을 끝없이, 다시 말해서 죽을 때까지 착취하는 데만 집중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다."(178쪽)

볼테르, 당신마저 인종차별주의자라니...

놀라운 것은 저주받는 '검은' 인종이 끔찍한 노예 생활을 할 때가 인본주의가 고개를 들고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였다. <샤를르 12세사>, <루이 14세의 시대>, <각 국민의 풍습·정신론>, <풍속시론>, <철학사전> 따위를 남겨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는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볼테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 운동가이자 철학가이자 극작가고, 소설가며 시인이다. 하지만 그도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실제로 볼테르는 인류다원론자인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또한 반유대주의자다-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이 '전적으로 다른 인종'이라는 사실이나 흑인은 원숭이와 결합해서 괴물 같은 존재를 낳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맹인밖에 없을 것이다."(199쪽)

볼테르 당신마저 인종차별주의자라니! 놀랍다. 놀라지 마시라 <박물지>를 지은 뷔퐁은 "검둥이와 사람의 관계는 나귀와 말의 관계와 같을 것"이라고 했고, 칸트도 흑인을 인류 등급에서 가장 바닥에 두었다. 인종차별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인본주의를 지향하고, 인간중심 사고를 했던 이들마저 '인종'에서는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노예상인들이 '돈'에 팔려 흑인들을 사냥할 때, 계몽주의자들의 '이성'으로 인종을 차별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긴 인종차별은 기원이 서양철학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올라간다는 들라캉파뉴 주장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성과 사이비과학이 만든 '인종차별'... 20세기 대학살 배경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되고, 계명주의 시대를 지나온 서구문명은 흑인과 원숭이 두개골 유사성을 연구한 네덜란드 해부학자 캄페르 같은 이들도 생겨났다. 이 '사이비 과학'은 정치목적을 가진 특정 정치인이 악용하면서 12세기부터 터키 동부에 정착해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열두 달 동안 몰살했다. 이는 150만여 명을 학살한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나치 유대인 학살을 낳는 배경이 된다.

우리는 나치 유대인 대학살을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의 '작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평범한' 독일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대니얼 골드헤이건은 <히틀러의 자발적집행인들: 평범한 독일인과 홀로코스트>에서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던 '평범한 독인들'은 반유대주의에 의해 자극을 받았고, 이 특별한 유형의 반유대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독일인들이 반유대주의에 저항하고 따르지 않았더라면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도 약 550만 명이라는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집단학살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지적인 사고방식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말 한마디가 이론을 만들고, 만들어진 그 이론에 모두가 동조하면 비극을 낳고, 그 비극은 집단학살을 자행해도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게 된다. 일본 극우가 아직도 일제식민지 부정과 종군위안부에 대해 망언을 늘어놓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해대는 말이 아니라 계획된 발언임을 알 수 있다.

나치 유대인 학살로 집단학살이 끝나지 않았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는 200만 명을 학살했고, 코소보 인종청소, 르완다의 투치족 집단학살 등등.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략도 인종차별과 별다르지 않다. 아이러니는 불과 몇 십 년 전 550만 명이 집단학살당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차별하고 있다.

정치인들 인종차별 악행·악용하면 박탈할 권리 있어

우리는 "인종차별이 옳지 않다는 설교만으로는 인종차별과 맞서 싸울 수 없다"는 들라캉파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나라도 외국인이 140만 명을 넘어섰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다른 민족보다 '더 위대한 민족'은 없다. 다른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같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인종차별은 '인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모든 영역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빨갱이', '홍어'라는 단어도 인종차별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한다는 이유로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다. 이런 인종차별에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만약, 정치 책임자들이 이를 악용하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그들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고 들라캉파뉴는 강조한다.

"악행을 허용했던 조건들을 제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갖지 못한다면 그 악행을 규탄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그것은 철학자, 역사가, 교육자, 지식인 일반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과제이고, 그 너머로는 시민들의 과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실권을 주고 또한 박탈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덧붙이는 글 | <인종차별의 역사>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하정희 옮김 l 예지|384쪽|2만3000원'당신은



인종차별의 역사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지음, 하정희 옮김, 예지(Wisdom)(2013)


태그:#인종차별, #계몽주의, #흑인,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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