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한낮, 교육방송(EBS)에서 흑백영화가 나온다. 이탈리아 영화 <백인추장>(The White Sheike, 페델리코 펠리니 감독, 1952)이다. 영화는 로마가 배경이다. 1952년 작품임에도 거리나 건물이 지금의 로마와 별 차이 없음을 보게 되면서 한때 세계사의 주인공이었던 이탈리아에 대해 '명불허전'이란 말을 떠올린다. 거리와 건물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말이 하고 싶다. 유럽의 자랑이다.

내용이 재미있다. 이반과 반디가 새로 부부가 된 주인공 이름! 이반은 부호의 아들이고 직업도 탄탄하다. 신혼여행지인 로마 시내에서 만나려고 하는 삼촌 가족들도 고위공직자들이다. 이반은 매우 계산적이고 꼼꼼한 준비성을 자랑한다. 순진한 듯 커다란 눈은 고지식하고 일만 열심히 한 톨스토이의 <바보이반>을 떠오르게 한다. 수전노 같아 보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200리라나 하는 목욕물값을 내 주는 애처가이기도 하다(참고로 호텔주인의 말에 의하면 장거리 전화 사용료가 30리라라고 했다).

아내 반디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철모르는 아기다. 둘은 기차에서 내려 예약한 호텔로 간다. 아내 반디는 호텔 사람들에게 '5월23일거리'가 어딘지를 물어 목욕을 하는 척 남편을 속이고 호텔을 빠져나가 버린다. 당시엔 사진과 이야기를 엮는 '사진 소설 시리즈'라는 것의 인기가 꽤 있었던지 반디는 그 시리즈인 <백인추장>에 홀딱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백인추장'과 주고 받은 몇 건의 편지에서 '놀러오라'는 말만 믿고 사진촬영장을 찾은 것이다.

시내를 벗어나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탄 차를 얼떨결에 같이 타고 바닷가로 이동하게 되고 거기서 '백인추장'과 꿈의 대화를 갖게 된다. 본색을 드러내고 '백인추장'이 치근덕거리자 반디는 "나는 결혼한 몸이예요"라고 말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느끼한 '백인추장'은 "나도 결혼한 몸이요. 아내의 속임수에 당해 할 수 없이 결혼을 하고 말았소"라는 느끼한 중년의 레퍼토리를 배설한다. 사실 '백인추장'은 공처가이며 비겁한 유부남일 뿐, 그의 사진 소설 속 역할과 외모와는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허접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이반과 반디 이틀간의 온갖 풍상을 겪고 재회한 부부의 모습, 용서하는 이반과 죄책감으로 고개숙인 반디의 모습에서 행복이 엿보인다.

▲ 주인공 이반과 반디 이틀간의 온갖 풍상을 겪고 재회한 부부의 모습, 용서하는 이반과 죄책감으로 고개숙인 반디의 모습에서 행복이 엿보인다. ⓒ 페데리코 펠리니


이렇게 반디가 '성장통'을 겪는 동안, 새신랑 이반은 로마에 사는 삼촌네 가족들과 우여곡절을 겪는다. 아내 반디를 보여달라는 삼촌과 숙모 조카 등에게 마치 찰리 채플린은 연상시키는 '몸으로 하는 연기', '엉뚱한 상대에게 하는 전화통화' 등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신부가 도망가 버렸다는 사실이 들통이 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독일과 함께 세계대전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에서는 전후의 상처를 낭만적인 신파가 아닌 좀 더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이 있었는데"(<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남무성·황희연) 이런 시선을 반영한 영화사조를 강한 사회 비판의식을 지닌 네오리얼리즘이라고 한다. 이 영화 <백인추장>은 이러한 사조를 반영한 영화로 보기엔 시선이 따뜻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독의 강한 사회비판의식을 포함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이반은 한밤중 거리의 분수대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여성들은 그를 보고 연민의 눈길로 말을 걸고 담배도 권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질문은 날카롭다.

"신부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이 맞죠? 그렇지 않고서야 신부가 왜 도망을 갈까?"

또, 허둥대는 이반을 수상히 여기지만 끝까지 그를 믿고 기다려주는 삼촌은 말한다.

"무슨 일이 있다면 말하렴. 내 기다리마."

각박해진 사회는 어른의 채근과 이웃의 무관심의 소산이라는 역설이 담겨 있는 대화다.

반디는 '백인추장'의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누더기가 된 옷가지와 얼룩진 얼굴과 엉클어진 머리카락인 채로 지나가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돌아온 호텔로 차마 들어서지 못하는 반디는 거울에 비친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리를 뜬다. 호텔로 전화를 걸어 종업원에게 말한다.

"나를 기다리지 말라고 해주세요."

강물에 빠지는 반디를 근처 이웃이 발견하고 구조한다. 그 시간은 새벽 3시. 보통의 이웃이 무관심해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시간이다. 돌아온 반디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이반과 그 가족들의 표정이 감동적이다.

이반의 삼촌네 가족  새신부 반디를 처음 보는 삼촌의 표정이 비장하다. 표정과 달리 따뜻한 가슴으로 반디를 안아준다.

▲ 이반의 삼촌네 가족 새신부 반디를 처음 보는 삼촌의 표정이 비장하다. 표정과 달리 따뜻한 가슴으로 반디를 안아준다. ⓒ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 <백인추장>는 '철없는 젊은이', '바람난 신부', '사랑 없는 남편', '관대하지 못한 기성세대', '무관심한 이웃' 등에 대한 패러독스다.

돌아온 탕아, 아니 신부 반디는 말한다.

"모든 게 실수였어요. 하지만 전 순결해요."

신랑 이반은 말한다.

"다 알고 있어요."

그러자 신부 반디는 말한다.

"나의 백인추장은 이반 당신이어요."

제목에 대한 대답, 반디의 '일탈'은 사건이다. 예측하지 못하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란 뜻이다. 여기엔 '사진소설시리즈'의 잘못도 있고, 일찌감치 남의 신부가 되는 '부담스런 운명'의 잘못도 있기 때문에 개인의 '금지된 욕망'에 대한 죄와 벌만 있어서는 곤란하다. 넓은 가슴으로 하는 포용이 필요하다. 이탈리아가 참전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참회의 저변에 깔린 '용서의 희구'를 거론하는 것은 시대를 고려하면 가능한 추론 아닐까? 무릴까?

어여쁜 여배우는 우리 배우 송지효, 부리부리한 눈에 매부리코의 남자 주인공은 우리 배우 신현준과 꼭 닮았다. 아니, 우리 배우들이 그들을 닮았다고 해야 할까. 이 둘이 리메이크를 해보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도 참 재미있다. 백인추장 역은 단연 박영규다.

첨부파일 백인추장.docx
백인추장 이반 반디 일탈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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