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포스터.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포스터. ⓒ 유레카픽쳐스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뜬 그는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상태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미루어, 그 장소가 병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다.

의사가 설명하는 그의 상태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하다.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다. 성공한 인생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던 어느날, 그는 갑작스럽게 쓰러진다. 이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전신마비와 함께 매우 드문 사례인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에 시달리게 된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정상이고 의식도 깨어있지만 손가락 하나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감금증후군'이라는 병명 그대로, 보비는 자신의 몸 안에 '갇혀버린' 신세가 된 것이다.

오로지 왼쪽 눈꺼풀 하나만을 깜빡일 수 있는 상태가 된 보비. 영화 <잠수종과 나비>(2008)는 기적같이 살아났지만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음에 절망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막을 올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보비의 삶을 담아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왼쪽 눈만 움직일 수 있는 남자,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 한 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보비는 치료사의 도움으로 소통한다. 그녀가 여러 알파벳을 읽는 도중 눈을 깜빡이면, 해당되는 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단어를 조합하는 방법이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 한 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보비는 치료사의 도움으로 소통한다. 그녀가 여러 알파벳을 읽는 도중 눈을 깜빡이면, 해당되는 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단어를 조합하는 방법이었다. ⓒ 유레카픽쳐스


발병의 뚜렷한 원인은 모르지만, 보비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의사는 그에게 치료사를 소개한다. 치료가 아닌 의사소통을 위한 목적이었다. 재치 넘치는 치료사는 왼쪽 눈만 움직일 수 있는 보비를 위해 특별한 대화방식을 고안해낸다.

자주 쓰는 알파벳 단어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다음, 그것을 치료사가 천천히 읽어나가면 보비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알파벳의 순서가 될 때마다 눈을 깜빡인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적어내려간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문장을 치료사가 다시 읽어주고 "말하려는 문장이 이거 맞느냐"고 물으면, 보비는 눈 깜빡임으로 대답한다. 눈을 한번 깜빡이면 "맞다(Yes)"를 뜻하고 두번이면 "아니오(No)"가 되는 것이다.

부유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보비에게 이런 사고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상실감으로 인한 좌절을 겪는다. 그가 치료사와 대화로 만들어낸 문장도 "죽고싶다"일 정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해주는 가족을 보면서 살아갈 의지를 되찾는다. 그리고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오직 왼쪽 눈꺼풀의 깜빡임으로, 그는 닫았던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책 한 권을 발간하기까지... '20만 번'의 눈 깜빡임이 필요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 주인공 보비는 20만 번 눈을 깜빡여 끝내 책을 출간하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감금증후군'으로 인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승리였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한 장면. 주인공 보비는 20만 번 눈을 깜빡여 끝내 책을 출간하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감금증후군'으로 인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승리였다. ⓒ 유레카픽쳐스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주인공 보비는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점차 소통에 익숙해진 그는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약 20만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끝내 책을 써내게 된다.

자신이 겪는 일상을 소재로, 움직일 수 없는 육체 안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그는 삶을 이야기한다. 영화 제목 <잠수종과 나비>는 곧 보비가 묘사한 스스로의 모습이다. '잠수종'은 잠수부들이 머리에 쓰는 거대한 종 모양의 헬맷인데, 그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바로 현실에서의 보비가 겪는 육체적 한계를 표현한 것이다.

보비는 과거 안락했던 삶을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로 그는 자신의 상상력과 경험을 토대로 절실함이 담긴 글을 적을 수 있었다. 마치 나비가 번데기의 상태를 거쳐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말이다.

잠수종에 갇힌 상태에서 나비가 되기까지, 장애를 딛고 한 권의 책을 쓰기까지 그는 쉬지 않고 눈을 깜빡였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한 사람의 삶이 보여준, 그야말로 '인간승리'였다.

잔잔한 영상미의 <잠수종과 나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영상미를 자랑한다. 과장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와 화면구성은, 움직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상태를 관객이 간접체험 하게끔 돕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찡하게 가슴을 울린다.

안타깝게도 장 도미니크 보비는 자신의 책 출간 후 3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남긴 말은 "아들아 앞으로 많은 나비를 만나거라"였다. 자유로움은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영화는 마치 삶과 고통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생은 고통이 극복된 뒤에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힘겨운 순간까지도 모두 삶이라고 <잠수종과 나비>는 조용하게 관객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한 쪽 눈꺼풀로 세상과 소통한 남자, 보비의 삶을 지켜본 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관객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지 모른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은 '내 삶이 어떤 벽에 가로막힐지라도 그것을 넘어설 용기가 있는가' 하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가벼운 인간관계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소통의 부재'가 거론되는 요즘, 진정한 자신의 세계를 날다가 훌쩍 사라진 나비같은 보비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수종과 나비 감금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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