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심청>의 한 부분

발레 <심청>의 한 부분 ⓒ 유니버설발레단


요즘 문화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이 남성을 구한다는 점이다. <아어언맨3>의 페퍼는 위기에 빠진 토니 스타크를 구하고 <고령화가족>의 엄마(윤여정 분)는 전화 한 통으로 아들의 목숨을 구한다. <남자가 사랑할 때> 첫 회에서 서미도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스폰으로 제안하기까지 한다. <구가의 서>의 담여울은 죽을 뻔한 강치의 목숨을 구한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의 서사 역시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즉 여성이 남성을 구원하는 추세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고유한 레퍼토리인 <심청>은 원작의 이러한 서사를 재해석한다. 본래 <심청>의 텍스트는 여성이 주체가 되며, 남성은 보조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발레의 1막 2장은 중국을 항해하는 선원을 역동적인 캐릭터로 끌어올린다.

선원들의 역동적인 군무는 마치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것 같다. 무언의 춤동작과 연기로 '아버지 구하기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심청을 선원들이 왜 바닷물에 빠뜨려야 하는가를 풀어간다. 원작 속 뺑덕어멈이라는 악역을 배제한 것도 눈에 띈다.

 <심청>의 한 장면

<심청>의 한 장면 ⓒ 유니버설발레단


2막에서 관찰되는 재해석은 용궁 캐릭터의 묘사다. 본래 용궁은 동양의 개념이다. 그러나 발레는 용궁을 형상화할 때 서구적인 면모를 더한다. <심청>의 2막과 3막에서는 <라 바야데르>처럼 유니버설발레단의 화려한 장기인 디베르티스망(기자 주-줄거리와는 관계가 없지만, 여러가지 춤을 선보이며 관객을 즐겁게 하는 부분을 뜻하는 발레 용어)을 만나볼 수 있다. 용왕 이 심청에게 구애하고, 이를 거절하는 장면 역시 발레만의 재해석이다.

3막에서 심청이 연꽃에서 나온 후, 달빛 아래에서 심청을 향해 퉁소를 부는 도령은 발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다. 왕과 심청이 달빛 아래에서 춤추는 그랑 파드되 역시 재해석의 묘미이자 3막의 하이라이트다. 눈을 뜬 심학규가 궁중 잔치에 초대된 다른 장님의 눈을 만지자 이들이 연쇄적으로 눈을 뜬다는 설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행복을 넘어 모든 시각장애인에게 희망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재해석이다.

 <심청>의 한 장면

<심청>의 한 장면 ⓒ 유니버설발레단


한편 발레는 무용수의 춤 동작과 연기, 음악뿐만 아니라 조명으로도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 <심청>은 조명의 힘에도 큰 빚을 진다. 조명이 돋보이는 부분은 크게 두 장면이다. 선원에게 심청이 팔려갈 때 조명은 돌연 파란색으로 바뀐다. 조명은 심학규의 세계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심학규가 눈을 뜨는 순간이다. 관객은 조명만으로 심학규가 눈을 뜨는 장면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조명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심청>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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