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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칼굴수와 비슷한 티벳음식
▲ 뚝빠 우리의 칼굴수와 비슷한 티벳음식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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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밤은 깊고도 깊습니다. 몇 번을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새벽은 요원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숙소는 적막함 그 자체입니다. 침대에 누워 오늘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변경된 일정으로 인해 많이 혼란스럽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기에 마음을 가다듬어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힘든 것 중 하나는 현지 음식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달밧으로 대표되는 네팔 음식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랑탕 지역은 티벳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습니다. 담백한 티벳 음식은 네팔 음식에 유난히 거부감을 보이는 저에게 좋은 구세주입니다.

제가 포터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1일 14달러입니다. 이 금액에는 포터의 숙식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로지는 포터에게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에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렇지만 트레커가 적당한 지출을 하지 않으면 로지 주인은 포터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기에 피해는 고스란히 포터에게 돌아갑니다.

랑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로 네팔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꽃의 화원이라 불립니다. 트레킹 적기는 꽃이 만개하는 봄이지만 우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트레커들이 꾸준히 찾습니다.

트레킹을 시작하며

트레킹을 시작하며
▲ 현수교 트레킹을 시작하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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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르벤시(1410m)를 출발하여 라마호텔(2470m)까지 갈 예정입니다. 트레킹은 정상을 오르고자 하는 등반대와 다르기에 최대한 '천천히' 걷는 것이 화두입니다. 세상은 '빠르게'를 요구하지만 히말라야는 '천천히'를 이야기합니다. 히말라야는 세상의 이치와 반대인 것 같습니다.

트레킹은 샤브르벤시 끝자락에 있는 보테코시강의 현수교를 건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강을 기점으로 신-구 샤브르벤시가 구분됩니다. 차량 통행이 시작되고 트레커들이 찾기 시작하자 찻길 주위에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구샤브르벤시에는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아이와 놀아 주는 엄마,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네 처녀, 밭일을 하고 있는 동네 아저씨까지 마을의 일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쇠락되어 가는 구샤브르벤시
▲ 구샤브르벤시 쇠락되어 가는 구샤브르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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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이.....
▲ 룽다 부처님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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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온통 룽다로 덮여 있습니다. '룽다'란 바람이란 뜻의 '룽'과 말(馬)이란 뜻인 '다'가 합쳐진 티베트 말로 '말 갈퀴가 휘날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긴 장대에 깃발을 매달아 둔 것으로, 집집마다 지붕 위로 서너 개의 룽다가 펄럭입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모든 중생들이 해탈하라는 그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삶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그들은 생활이 곧 구도의 길입니다.

랑탕계곡의 초입은 설악산 계곡을 걷는 분위기입니다. 완만한 경사, 건기임에도 만년설에서 녹아내리는 힘찬 물소리, 울창한 밀림 그리고 건너편 능선의 아름다움 등 천불동 계곡을 따라 비선대와 소청봉을 거쳐 대청봉을 향해 계곡을 오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들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
▲ 짐꾼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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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걷는 트레일에는 80kg 정도의 합판과 쌀가마니를 메고 올라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랑탕 계곡 윗자락에 있는 마을에 필요한 생필품을 운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짐의 무게에 따라 일당이 결정되기에 자신의 작고 가녀린 몸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산을 오릅니다.

같은 길을 걷지만 누구는 생계를 위하여 누구는 즐기기 위해 걷습니다. 자기 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해서 산을 오르는 제 모습과 그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산사태를 빗겨간 뱀부 모습
▲ 뱀부 산사태를 빗겨간 뱀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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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970m에 자리 잡은 뱀부(Bamboo)에는 산사태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히말라야 계곡에서의 산사태는 마을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합니다. 트레킹 지역 곳곳에서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산사태를 비껴간 로지는 생사를 초월한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볕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주문합니다.

뱀부를 지나면서 강폭이 좁아지며 오전과는 반대쪽 계곡을 따라 걷습니다. 급할 것 없는 저는 현지인들과 "나마스테" 하며 인사를 나누고 '찌아' 한잔을 주문하고 로지 주인 아이와 장난을 즐깁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태한 생활 태도와 과도한 음주 후유증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마음은 즐겁습니다.

강을 건너며..
▲ 나무로 만든 다리 강을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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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랑탕 트레일
▲ 트레일 아름다운 랑탕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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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곳곳에 지리잡은 로지 모습
▲ 롯지 모습 트레일 곳곳에 지리잡은 로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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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경 오늘 목적지인 라마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합니다. 로지의 온수는 태양열을 이용하기에 한번 고갈되면 다음 날까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나니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난 느낌입니다. 읽을 책을 가지고 식당으로 향합니다. 식당은 숙소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되는 곳입니다.

식당에는 이미 스페인에서 온 4명의 트레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난로를 중심으로 둘러 앉아 카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난로의 불이 꺼질 때까지 식당에서 버팁니다. 객실은 난방, 전기, 안락함 등 숙소가 갖추어야 최소한의 것들도 갖추지 못했기에 식당이 온기와 전기가 들어오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라마호텔에서 샤워와 빨래를 끝내고...
▲ 빨래를 끝내고.. 라마호텔에서 샤워와 빨래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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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어린 소녀의 모습

세면을 하기 위해  숙소 뒤편 수돗가로 가니 어린 소녀가 불도 없는 깜깜한 수돗가에서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철 차가운 물에 고무장갑도 없이 부르튼 손으로 식기와 컵을 씻고 있는 아이는 애처롭습니다. 포터인 인드라에게 물어보니 겨우 11살인 소녀는 인근 둔체 출신으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로지 주인 자녀들은 카트만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의 논리는 신들이 살고 있는 히말라야라고 피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같은 또래 아이가 한 아이는 학업을 위해 도심으로, 다른 아이는 생계를 위해 히말라야 계곡으로 들어온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멍해지는 느낌입니다.

다음 날 아침 길을 떠나기 전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 즉석 인화기로 출력하여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생전 처음 찍어보는 사진인지 모릅니다. 제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정성을 다해 찍었습니다. 아이가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은 카스트(계급), 더 좋은 부모님을 만나기를 기원해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산으로 온 어린 소녀의 모습
▲ 소녀 돈을 벌기 위해 산으로 온 어린 소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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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라마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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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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