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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말 2013년 현재, 한국에서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선언하고, 밀고, 짓는 토건국가'가 아닌,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을 만드는 돌봄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기획은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면서 지난해 8월 시작됐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생생하게 조명하면서, '마을공동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을의 귀환' 기획팀은 <오마이뉴스> 창간 13주년을 맞아 민관이 협력해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영국식 마을공동체 만들기 모델을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특별취재팀 : 글 홍현진·강민수 사진 : 유성호]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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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현지시각), 브릭스톤(Brixton)역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이동해 주택가 인근의 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한쪽에는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네모난 합판, 긴 목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왼쪽에는 사무실이, 오른쪽에는 식당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버려진 의자들, 캐비닛. 문짝, 철자재. 그리고 안전모를 쓰고 연두색, 주황색 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10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롤러를 이용해 벽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빗자루로 바닥의 흙먼지를 쓸어내고 있었다.

"'리메이커리'의 작업 공간을 만드는 공사 중이에요."

현장 책임자인 제이크(Jake)가 취재진에게 안전조끼를 건넸다. 공사 현장이라 조끼를 입어야 한단다. '도대체 뭘 공사하는 거지?'

쓰레기 넘치던 버려진 주차장, 재활용 작업 공간되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현장 책임자인 제이크(Jake)가 자원 봉사자과 함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메이커리는 주민들과 함께 브릭스톤 지역에 낭비된 자원을 재활용하고 수리, 재활용 기술로 지역의 숨은 능력을 기르는데 목적을 두고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현장 책임자인 제이크(Jake)가 자원 봉사자과 함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리메이커리는 주민들과 함께 브릭스톤 지역에 낭비된 자원을 재활용하고 수리, 재활용 기술로 지역의 숨은 능력을 기르는데 목적을 두고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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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 홍현진, 강민수 기자와 통역을 맡은 임소정(전 희망제작소·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 연구원)씨가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활동가 안나(Hannah)를 만나 버려지는 자원의 재활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 홍현진, 강민수 기자와 통역을 맡은 임소정(전 희망제작소·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 연구원)씨가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활동가 안나(Hannah)를 만나 버려지는 자원의 재활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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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커리(Remakery)'는 우리말로 '다시 만들기'다. '브릭스톤 리메이커리(Brixton Remakery)' 누리집에는 이들의 지향점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목적은 브릭스톤 지역의 낭비된 자원을 재활용하고 수리, 재활용 기술로 지역의 숨은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브릭스톤 리메이커리'는 최근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트랜지션 타운(Transition Town·에너지 자립 마을) 운동을 하는 단체다. 브릭스톤 지역에는 태양열 판을 지붕에 설치하는 단체 등 다양한 '트랜지션 타운' 그룹들이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친환경적 삶'을 꿈꾼다. 화석 연료를 쓰지 않고 태양열 온풍기, 화목 난로로 한겨울을 보낸 서울의 성대골 마을 역시 '에너지 자립 마을' 운동을 하는 마을공동체다.

재활용도 트랜지션 타운 운동의 한 방식이다. 인근의 주민협동조합인 '브릭스톤 그린(Brixton Green)'처럼 1파운드만 내면 리메이커리 회원이 될 수 있다. 현재 회원은 50여 명, 이 지역에서 재활용 운동을 하는 '리메이커(Remaker)'는 90여 명이다. 공사가 끝나면 이 공간은 주민들의 작업공간이 될 것이다. 무슨 작업을 하냐고? 리메이커리 8명의 디렉터(Director) 가운데 한 명이자, 리메이커리 초기 멤버인 하나(Hannah)가 말했다.

"컴퓨터, 자전거 고장난 거 있으면 고치고, 옷감 같은 거 있으면 옷을 만들거나 가방을 만들거나, 가구를 다시 만들기도 하고. 여기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주민들이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주차장은 원래 임대아파트 시설이었다. 그러나 입주자 중 차가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보니 자연스레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범죄 조직이 은신처를 만들거나 지역 주민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리기도 했다. 또 스쿼터(Squatter, 불법 점거자)들이 점거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브릭스톤 지역에서 '쓰레기 제로' 운동을 벌이던  '리메이드 인 브릭스턴(Remade in Brixton)'이라는 단체가 구청 소유였던 이 주차장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구청에 제안했다. 리메이드는 리메이커리의 전신이다. 이들은 주차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버려진 공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가증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창고처럼 썼어요. 자전거를 고치는 그룹도 있고, 컴퓨터를 재활용하는 그룹도 있고, 목재를 재활용하는 그룹, 예술가 그룹도 있었죠(하나)." 

2010년, 구청이 상금 10만 파운드(약 1억6340만원)가 걸린 프로젝트 공모전을 열었다. 지역 주민 3000명의 공개 투표에서 리메이커리의 아이디어가 1등을 차지했다. 리메이커리는 1000제곱미터(약 300평 규모)의 이 주차장을 15년간 빌리게 됐고, 비영리 건축단체인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Architecture For Humanity)'의 건축가들과 함께 주차장을 어떻게 사용할지 설계했다. 2012년 8월에 시작된 공사는 오는 8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벽 부수고, 시멘트 바르고, 단열재 넣고...자원봉사자들이 모든 공사 직접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에 페인트 칠을 하고 있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에 페인트 칠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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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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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직 공사는 30%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벽을 부수고,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단열재를 넣고, 페인트칠을 하고. 이 모든 작업을 전문 공사 인력이 아니라, 리메이커리 회원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공사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속도가 더디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로빈(Robin 35)에게 '언제 공사가 끝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라며 웃는다. 그 때라도 완성되면 다행이라는 눈치다.

하나 역시 "작년 여름에 계획을 세울 때는 올 봄 안에 끝낼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늦어지고 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정원사인 로빈은 "이 공간이 완성되면, 금속이나 목재로 뭔가를 만드는 공간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램버스 대학(Lambath College)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습을 오기도 하고, 치료 중인 알콜·마약 중독자들이 재활을 위해 참여하기도 한다.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사회봉사활동을 이곳에서 하기도 한다. 적게는 2명부터, 많게는 10명까지 매일매일 참여하는 사람들이 숫자도, 구성도 다르다. 물론 현장 책임자가 있기는 하지만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나는 "벽에 페인트를 세 겹 칠해야 하는데, 지금 몇 겹을 칠했는지 모르는 상황도 생긴다"면서 "그래도 이러한 소통의 과정이 곧 배움의 과정이라고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려진 공간을 살리는 과정 자체가 '리메이커리'인 셈이다. 건축 자재는 대부분 기부를 받은 것이다.

이날은 리메이커리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친교의 날(Site Social Day)'.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에 모여 공사 작업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피파(Pippal·32), 부아(Bua·38), 패트릭(Patrick·41)과 이야기를 나눴다. 홍보 일을 하고 있는 피파, 무대 디자이너 부아, 의사 패트릭. 직업 만큼이나 리메이커리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도 달랐다.

피파는 이곳 지역 주민이다. "트위터를 통해 지역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피파는 "평소 재활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한테 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패트릭은 3년 전, 또 다른 트랜지션 타운(에너지 자립 마을) 운동 그룹에서  하나를 알게 되면서 이곳까지 오게됐다. 부아는 하나와 함께 리메이커리 초기 멤버다. 부아에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땠냐'고 물었다.

"지금은 하얀색으로 칠하고 있는데 그때는 여기가(벽을 가리키며) 다 검은색이었어요. 쓰레기가 정말 많았고, 불타버린 차도 있고, 부서진 오토바이도 있었죠. 정말 힘든 상황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도와줘서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부아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아, 나 혼자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한다. 의사 일을 하면서 두 개의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패트릭은 "이렇게 사람들과 팀 워크를 하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리메이커를 찾으려고 한다.

버려진 피아노가 아이들 물리학 교재로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 창고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 라샤드(Rashad)가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둔 피아노를 보여주며 "피아노 재활용을 통해 아이들에게 음악도 가르치고 물리학 교재로도 쓸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14일 오후 영국 브릭스톤(Brixton) 주택가 인근 한 주차장 창고에서 리메이커리(Remakery) 소속 자원 봉사자 라샤드(Rashad)가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둔 피아노를 보여주며 "피아노 재활용을 통해 아이들에게 음악도 가르치고 물리학 교재로도 쓸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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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마친 후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소파에 앉아 밥을 나눠먹었다. 메뉴는 토마토 소스로 볶은 고기를 얹은 흰 쌀밥과 야채 볶음이었다. 맥주를 곁들여 먹는 사람도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라크 출신의 라샤드(Rashad·55) 가 '한국에서도 오래된 피아노가 문제가 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차장 반대편 창고로 취재진을 데리고 갔다. 소파, 자전거, 선풍기, 분해된 20여 대의 피아노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재활용을 위해서 모아둔 것이다.

"안 쓰는 피아노를 길거리에 놔두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도록 활용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여기 있는 피아노들은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못 쓰게 된 피아노들이에요. 건반은 빼고 피아노 안쪽에 있는 부분만 분리했어요." 

라샤드는 아이 젖병을 닦는 솔같은 것으로 피아노의 '현' 부분을 문질렀다.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이렇게 하면 훌륭한 음향장치가 되죠." 라샤드는 '똑똑'하고 피아노 나무 부분을 두드렸다. 그는 "피아노 재활용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음악도 가르치고 물리학 교재로도 쓸 수 있다"며 "이미 인근 학교에 3대를 팔았다"고 말했다.

"모국인 이라크가 부서진 나라이기 때문에, 저는 부서진 것을 다시 만드는 것에 의미를 찾고 있어요."

'공사가 끝나면, 이 공간이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부아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만 하고 고장 나면 그냥 버리지 말고 서로 교환하거나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허브가 되기를, 패트릭도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부아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주먹을 위로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에요. 우리는 다른 공간도 점령해 작업 공간으로 만들 거예요."

공원 한 켠에 숨어있는 '주민 생태 학습장'
-트랜지션 핀스버리 파크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찰리(Charley)가 비닐하우스에 놀러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찰리(Charley)가 비닐하우스에 놀러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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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리차드(Richard)가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다.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리차드(Richard)가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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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 트랜지션 타운의 매니저인 조(Jo)가 회원들이 가꾸고 있는 텃밭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커뮤니티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식물이름 교육, 목재 재활용, 텃밭 가꾸기 등의 활동을 통해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 트랜지션 타운의 매니저인 조(Jo)가 회원들이 가꾸고 있는 텃밭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커뮤니티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식물이름 교육, 목재 재활용, 텃밭 가꾸기 등의 활동을 통해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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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에 또 다른 트랜지션 타운 운동을 하는 단체를 찾았다. 취재진 숙소 5분 거리에 있는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 44만 제곱미터(약 13만평) 크기의 공원 한 켠에 있는 '그린 루트(Green Route)'라는 곳으로 들어서자 꼬마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취재진에게 인사하며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원을 울렸다. 이곳은 '트랜지션 핀스버리 파크'의 '아지트'다.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정원에 놓여있는 화분만 수백 개는 될 것 같다.

트랜지션 핀스버리 파크는 지난 2008년부터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핵심 활동가들은 6명. 800여명의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숲과 공원에서 버섯을 채취하는 교육에서부터 꽃 심고 가꾸기, 목재 재활용, 식물 이름 교육 등이 그린 루트에서 진행된다.

정원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조(Jo ·43)를 만났다. 3년 전부터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조는 이제는 주축 활동가가 됐다. 정원 입구에서 깔깔 웃던 아이들은 조의 딸들이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내 세대는 아니더라도 내 아이에게는 거대한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움직였죠. 트랜지션 타운 안내서에 '초기 그룹을 만들고, 서브 그룹을 만들라'는 지침을 보고는 아는 사람을 연락해서 공통의 관심사에 접근을 했어요. 교회 목사, 아이 학교의 학부모들과 아주 작은 행사부터 시작했어요. 행사가 잘 되니까 점점 커져서 지역 축제가 돼버렸어요"

 2011년 9월, 런던 해크니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열린 '웰 오일드(Well Oiled)'축제. 청소년들이 직접 벽돌을 만들어 공처럼 주고 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다.
 2011년 9월, 런던 해크니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에서 열린 '웰 오일드(Well Oiled)'축제. 청소년들이 직접 벽돌을 만들어 공처럼 주고 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다.
ⓒ Transition Finsbur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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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션 핀스버리 파크는 2010년부터 매년 '웰 오일드(Well Oiled, '석유를 많이 써버려서 기름칠이 잘 된'이라는 뜻)'라는 축제를 열고 있다. 가을에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회원과 지역주민들이 벼룩시장도 열고, 자전거 발전기로 켜지는 친환경 전구를 전시하기도 한다. 2011년 9월에 열린 축제에는 1000명의 주민들이 참가했다.

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닐하우스로 리차드(Richard, 47)와 베시(bessie, 25)와 찰리(Charley)가 들어왔다. 이날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식물을 심고 가꾸는 워크숍(Plant Nursery Session)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러한 워크숍이 열린다. 리차드는 긴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거름을 날랐고 베시는 아기자기한 묘묙과 알록달록한 화분을 옮겼다. 찰리는 비닐하우스와 시설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브릭스톤 리메이커리'처럼 이 곳 역시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활동할 수 있다. 찰리는 "나중에 농촌에서 살고 싶은데, 그걸 이곳에서 준비하고 있다"며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자연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게 좋다"고 웃었다. 리처드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이들처럼 기후 변화도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느린 변화지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하나씩 옮기는 이들의 모습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과물이 아닌 협동하는 과정을 통해 가까이는 마을부터 멀리는 지구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조의 다음과 같은 말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기후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은 친구의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친구가 없어진 사실에 갈등을 하고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슬퍼하죠. 사람들은 기후변화라는 현실에 슬퍼하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 내 텃밭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베시(bessie)가 회원들이 심어놓은 모종에 거름을 주고 있다.
 18일 오전 영국 런던 핀스버리 공원(Finsbury Park) 내 텃밭에서 원예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하고 있는 베시(bessie)가 회원들이 심어놓은 모종에 거름을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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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을의귀환, #트랜지션 타운, #에너지 전환 마을,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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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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