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포스터

지난 1월 31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포스터 ⓒ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지난 31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은하철도 999> 미야자와 겐지의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으나, 엄밀히 말해 <부도리의 꿈>은 아이들이 보기에 상당히 어렵고도 받아들이기 힘든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2001년 일본의 한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다가 사망한 의인 고 이수현의 사연을 듣고 애니메이션 제작 영감을 받았다는 스미즈 요시히로 프로듀서의 바람에 힘입어, <부도리의 꿈>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국경을 넘어 한일 양국을 감동시킨 고 이수현의 희생정신이다.

긴 시간 지속된 냉해가 아름다운 이하토브 숲을 덮칠 때까지, 소년 고양이 부도리는 행복했다. 하지만 거듭된 추위에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간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설상가상 의문의 고양이가 여동생 네리까지 데리고 사라지자 혼자가 된 부도리는 동생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마을에 내려온 부도리는 비단 공장주, 붉은 수염, 구보 박사, 펜넨 소장 등 여러 고양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해간다. 하지만 부도리의 단란한 가정을 파괴했던 냉해가 이하토브를 덮치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시키고 싶지 않았던 부도리는 자신의 목숨을 내건 일생일대 모험을 결심한다.

국경을 넘어 울림 주는 부도리의 희생정신

부유하진 않지만,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오던 부도리 가족을 덮친 냉해는 지난 2011년 3월 일본 동남부를 덮친 쓰나미와 대지진을 연상시킨다. 종종 이하토브 도시를 위협하는 화산 또한, 섬나라 일본의 특수한 자연 환경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언제 인간을 위협할지 모르는 자연 재해의 비극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4년 동남아 전역을 휩쓴 쓰나미를 시작으로 2010년 아이티 지진, 2011년 일본 대지진까지. 한 때 자연을 정복하고자 했던 인간은 현재 불시에 닥쳐올 수 있는 대재앙의 위협에서 견뎌내야 한다.

2011년 일본 동남부를 휩쓴 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동시에, 일본 전역에 크나큰 상실감과 또다시 큰 재해를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아직도 일본 대지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국민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거장 스기이 기사부로의 선택은 외딴 외국에서 취객을 구한 고 이수현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이었다.

 지난 1월 31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스틸 사진

지난 1월 31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부도리의 꿈> 스틸 사진 ⓒ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말로만 남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라는 형식적 교육만 받았지, 실제로는 생존을 위해 남을 이기는 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부도리의 꿈>이 강조하는 '희생정신'은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음에도, 인간이 수 만년의 시간을 버텨 온 비결은 은연중에 자리한 '이타심'과 상부상조의 정신이었다.

때로는 <반딧불의 묘>처럼 자신들이 주도한 태평양 전쟁 패전의 후유증을 미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고 종종 비판받는 일본 애니메이션. 그럼에도, 일본을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국경을 막론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힐링'에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견뎌야하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80년 전 소설과 고 이수현의 사연을 빌려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고 하나, 그럼에도 한국 관객들을 짠하게 울리는 것은 비단 일본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의로운 한국인이 연상되기 때문은 아니다.

불시에 나타나 나와 사랑하는 이를 앗아갈 수 있다는 자연 재해에 대한 두려움, 그 어느 때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세계적 불황, 그리고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 어쩌면 자신이 당한 고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희생까지 각오하는 부도리가 절실히 필요한 곳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인 것 같다.

전체관람가용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 주인공의 희생으로 수많은 국민을 구한다는 결코 쉽지 않게 다가오는 깊이가 묻어나는 <부도리의 꿈>. 그 어느 때보다 상실의 시대를 보내야할 어른들을 위로하는 최고의 동화다.

부도리의 꿈 일본 애니메이션 고 이수현 애니메이션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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