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복성(최가복성)> 포스터

영화 <구복성(최가복성)> 포스터 ⓒ 증지위

퍽 오래전 비디오로 본 홍콩영화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복사해 매직으로 영화 제목을 써놓은 일명 '불법복사' 비디오였지요. 매직으로 쓴 제목은 <유덕화의 구복성>(원제 <최가복성>, 증지위 감독, 1986년).

제목에서 보듯이 이 영화에는 유덕화가 나오고요, <무간도>의 보스 역으로 알려진 증지위가 나옵니다. 1990년대 '지존' 시리즈를 보신 분들이라면 기억나실 진백상, 여기에 주윤발이 첫 장면에 잠깐 등장하고 알란 탐이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자동차 정비소 사장과 두 명의 남자 종업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장은 직원들의 월급을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붙여가며 적게 주는 지독한 짠돌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그에게 돈을 타가려던 조카(유덕화)가 방송국에 취직했다며 삼촌을 찾아옵니다.

두 종업원은 어느 날 은행에서 강도를 만나고 이것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가 됩니다. 그들의 모습을 본 '발달방송국' 사장은 그들과 함께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믿고 그들은 방송국을 찾아가지만 온갖 해프닝 속에 결국 빈손으로 쫓겨나고 말죠. 그들은 마침내 유덕화가 있는 '노주방송국'으로 찾아갑니다.

영화는 이 남자들과 그의 이웃이 되는 연예인 지망생들(미인들이죠),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왕언니'가 방송국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발달방송국'과 '노주방송국'의 시청률 승리를 위한 '저질 프로그램' 만들기가 등장하지요.

'틀리면 때려야 한다'... 게스트는 무조건 맞아야 해요!

그 한 예를 볼까요? 방송 초짜 진백상과 증지위가 노주방송국에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은 명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님 말을 들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생방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첫 손님으로 '의원님'이 등장하는데 그는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랑만 늘어놓으며 심지어 사회자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합니다. 참다 못한 두 남자는 '의원님'을 두들겨 팹니다. 이것이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졌습니다. 방송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고 '의원님'은 고소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두 남자가 '의원님'을 두들겨패는 바로 그 순간 시청률이 폭등했다는 보고가 나옵니다. 초상집이던 방송국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결국 이 생방송 토크쇼는 '틀리면 때려야 한다'는 제목으로 바뀌고 두 남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갖 이유를 대며 게스트를 신나게(?) 두들겨 팹니다. 패면 팰수록 시청률은 엄청나게 올라가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에 이르죠.

두 방송국은 마침내 방송국의 사활을 건 특집 프로그램 경쟁을 하게 됩니다. 지는 방송국 사장은 빈 병을 팔게 될 거라고 발달방송국 사장은 선언하죠. 여기서 발달방송국 사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유덕화가 배신을 합니다. 노주방송국의 방송이 나오는 선을 끊으려는 순간, 그 모습을 유덕화의 여자친구가 보게 됩니다. 게스트도 섭외하지 않았다는 유덕화의 고백이 나오는 순간, 여자친구는 울면서 밖으로 나오고 유덕화는 그녀를 쫓아가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웬일입니까? 노주방송국은 그들의 추격전(?)을 긴급 생중계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노주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립니다. 결국 방송을 본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둘은 화해를 하고 사랑을 확인합니다. 노주방송국은 시청률의 승자가 됐고, 발달방송국 사장은 그의 호언장담대로 빈 병을 팔아 연명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 기억도 가물가물한(제목조차 가물거릴 정도로), 옛날옛적 유치찬란 코미디를 기억하게 해준 분을 이제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MBC 김재철 사장입니다.

'단두대 편성'으로 '1등 방송'을 노린다구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MBC 장기파업 관련 청문회에 핵심 증인인 김재철 사장 등 MBC측 관계자들이 불출석해 파행을 빚고 있다.

11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MBC 장기파업 관련 청문회에 핵심 증인인 김재철 사장 등 MBC 측 관계자들이 불출석해 파행을 빚었다. ⓒ 남소연


'김재철발 정리해고'가 마침내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일밤-승부의 신>이 폐지되고 <뉴스데스크>의 일방적인 8시 시간 변경으로 졸지에 '월화시트콤'으로 탈바꿈한 <엄마가 뭐길래>가 제작진, 출연진도 모르는 사이 폐지 결정이 났습니다. 여기에 8년을 장수한 <놀러와>도 폐지한답니다. 이유는 '시청률 하락'. 그리고 '1등 방송'.

낮은 시청률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은 정말 자주 보는 상황이었지만 사전 고지도 없이 '한 방에' 프로그램을 없애겠다고 한 것은 정말 처음입니다. 게다가 후속 방송 계획도 아직 잡힌 것이 없다고 합니다. 알려지기로는 일일사극 <허준>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무한도전>도 시청률이 낮으면 바로 자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퍼졌습니다.

자, 가뜩이나 불공정 뉴스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MBC는 이제 시청률이 바닥을 치면 무조건 예고도 없이 없어지는 '단두대 편성'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할 말도 못하고 제대로 된 소식들도 전하지 못해 억울한데 이젠 시청률 눈치까지 봐야 하는 MBC 제작진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시청률이 높은 방송이 과연 '1등 방송'일까요? 영화 속 노주방송국과 발달방송국의 황당한 프로그램 대결을 어쩌면 우리는 2013년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나 김재철 사장과 '그 윗분'을 비판한 사람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가차없이 두들겨 패는 '틀리면 때려야 한다'는 토크쇼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 시청률만 높인다면 온갖 막장, 온갖 편성변경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가 지금의 MBC입니다.

황당무계한 시청률 전쟁을 보여준 <유덕화의 구복성>이 진짜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 되겠지요? 1등 방송은 시청률이 아니라 시청자의 사랑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기 입맛대로만 방송을 만들려는 김재철 사장님께 이 황당한 코미디 영화를 추천합니다.

유덕화의 구복성 김재철 MBC 놀러와 엄마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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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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