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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항 부둣가, 배에서 도루묵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는 어부들.
 주문진항 부둣가, 배에서 도루묵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는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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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 눈이 내렸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주문진항 부둣가. 어부들이 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그물에 걸린 도루묵과 양미리(까나리)를 손으로 하나하나 떼어내고 있다. 작업량이 너무 많아 다른 데 한눈을 팔 여유가 없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 뒤늦게 끼니를 잇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에 물에 젖은 그물을 만지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은 1년 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이다. 때맞춰 부둣가에 눈까지 내리고 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다. 부두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 놓았다. 하지만 그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서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문진 수산시장, 수족관 속 복어들.
 주문진 수산시장, 수족관 속 복어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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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에겐 지금 이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 남자들은 그물을 걷어 올리고, 여자들은 그물에서 떼어낸 물고기들을 리어카에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여자고 남자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지금 이 바닷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해에서는 지금 도루묵과 양미리와 복어가 제철이다. 이 물고기들은 겨울철 동해를 대표한다. 지금이 어획량이 가장 많을 때일 뿐만 아니라 맛도 가장 좋다.

어부들은 당연히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궂은 날에도 바다로 나가 조업을 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올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잡아오는 물고기마다 어획량이 달라 어부들이 애를 먹고 있다. 도루묵은 너무 많이 잡혀 탈이고, 양미리는 그 반대로 너무 적게 잡혀 골치다. 복어는 이제 막 제철을 맞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어획량이 예년만 못하다.

눈이 내리는 부둣가에서 칼국수로 때늦은 점심을 때우고 있는 일꾼들.
 눈이 내리는 부둣가에서 칼국수로 때늦은 점심을 때우고 있는 일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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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풍년'에 웃다 울다, 한숨 짓는 동해 어민들

도루묵은 잡혀도 너무 많이 잡힌다. 그 바람에 가격이 뚝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싼값에 제철 생선을 맛보게 돼 좋아할 만하지만, 올해도 도루묵 잡이에 큰 기대를 걸었던 어부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도루묵이 풍년이라며 좋아했던 어부들은 이후 도루묵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너무 많이 잡혀 올라오는 바람에 낙담했다. 한창 제철을 맞았을 때, 어획량이 두 배 가까이 늘면서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어부들은 부두에 쌓이는 도루묵은 보면서, 그 도루묵이 제때 제값에 팔려나가지 않아 속을 태워야 했다.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생선값은 그만 못해 울쌍이다. 급기야 지자체들이 나서서 도루묵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자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판로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도루묵은 11월에서 12월까지가 제철이다. 어느새 끝물을 맞고 있다.

주문진항 부둣가에서 도루묵을 떼낸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주문진항 부둣가에서 도루묵을 떼낸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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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이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생선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 비록 전란기(임진왜란)이기는 했지만, 한때 임금의 밥상에까지 올랐던 고품격 생선이다. 그때 잠시 임금의 성은을 입어 '은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면서, 입맛이 변한 임금이 도루묵을 내쳤다. 그러면서 은어를 도로(다시) 묵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도루묵'이 됐다는 얘기다.

도루묵 암놈은 한때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되던 귀한 생선이다. 알이 가득 밴 암놈 도루묵은 별미 중에 별미다. 오래 전 임금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도루묵이 이번에는 일본인들의 까다로운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도루묵이 어떻게 다시 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일까?

도루묵찌개.
 도루묵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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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밴 도루묵이 다시 서민들의 밥상에 오르게 된 데는 그동안 동해 어부들과 수산 기관의 노력이 컸다. 수협은 두 해 전부터 도루묵 치어방류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으로 부족한 어획량을 메울 수 있었다. 이 사업은 어부들의 소득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올해는 어획량이 어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해류 변화' 탓으로 보고 있다.

끝물이 다가오면서 도루묵 어획량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어획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서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싼값에 제철 도루묵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길가에서 해풍을 맞으며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는 도루묵.
 길가에서 해풍을 맞으며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는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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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룩묵과 양미리가 못한 일, 복어가 대신할 수 있을까?

그에 반해 양미리는 너무 적게 잡혀서 문제가 되고 있다. 속초시에서는 지난 11월 16일과 25일 사이 속초항에서 '양미리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양미리가 잡히지 않아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양미리 없이 양미리축제를 열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축제 주최 측은 급히 다른 지역에서 잡힌 양미리까지 공수해 축제를 열어야만 했다.

양미리는 10월부터 12월까지가 제철이다. 양미리는 매년 어획량이 줄고 있다. 2009년에 800톤을 넘었던 어획량이 2010년과 2011년에는 400톤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는 어획량이 그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민들은 이러다 동해에서 양미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주문진항 부둣가,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일꾼들.
 주문진항 부둣가,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일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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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문진항을 비롯한 동해안에서는 요 며칠 양미리 풍년을 맞아 한시름 놓고 있다. 부두에 길게 늘어놓은 그물마다 양미리들이 잔뜩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 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양미리 때문에 주문진항 부둣가에 오래간만에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양미리는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워먹는데 감칠맛이 있다. 고소한 맛이 도루묵을 능가한다.

주문진 복어축제 현장. 복어튀김 무료시식 행사장.
 주문진 복어축제 현장. 복어튀김 무료시식 행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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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항 수산시장 거리에서는 복어축제가 한창이다. 이 축제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다. 이 축제는 복어가 주문진을 비롯해 동해안에서 나는 겨울 제철 생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복어는 내년 2월까지가 제철이다. 제철을 맞은 생선들이 다 그렇듯이 복어 역시 이때가 가장 맛이 좋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축제 현장 한쪽에서 도루묵과 양미리를 구워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밀가루 옷을 입힌 복어를 기름에 튀겨서 나눠주고 있다. 이 역시 무료다. 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공짜라서가 아니라, 그 맛이 정말 좋아서 좀처럼 다른 데로 발길을 옮길 수가 없다. 싱싱한 복어를 기름에 튀겨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축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사람들은 싱싱한 복어를 비교적 싼 값에 맛볼 수 있다. 복어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7일부터 9일까지로 단 3일 동안만 열린다. 하지만 축제가 열리는 것과 상관없이 복어는 바다에서 계속 잡혀 올라온다. 복어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2월까지는 언제 어느 때든 싱싱한 겨울 복어를 맛볼 수 있다. 겨울 동해안에는 지금 '겨울 3대 제철 생선'이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복어, #양미리, #도루묵, #주문진항,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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