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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한평미술관 표지판. 다 쓰고 난 카메라 필름과 맥주캔 등으로 만든 '기린' 조형물.
 마을 입구, 한평미술관 표지판. 다 쓰고 난 카메라 필름과 맥주캔 등으로 만든 '기린' 조형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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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대상리에 가면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작은 미술관이 있을까 싶은 그런 미술관이 있다. 너무 작아서 미술관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어딘가 낯간지러운 데가 있는, 그런 미술관이다. 직접 가서 보면, 세상에 뭐 하러 이런 미술관을 만들었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전시 작품들은 또 왜 그렇게 거칠고 투박한지, 소박한 걸로 따지자면 또 대한민국에 이처럼 소박한 미술관도 없겠다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이 미술관에는 대도시의 다른 미술관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겨움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진솔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뭐 하나 애써 꾸미려 한 흔적이 없다.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따지자면 세상에 이 미술관을 따라갈 수 있는 미술관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없이 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곳에 누가 왜 이런 미술관을 만든 것일까? 알고 보면 그 의도가 결코 '작지' 않다.

마을 진입로 울타리에 전시된 작품들.
 마을 진입로 울타리에 전시된 작품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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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짜리 '마을 정자'를 활용한 미술 전시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 마을 정자에 전시된 작품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미술관. 마을 정자에 전시된 작품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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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마을 입구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있다. 전시 공간은 겨우 '한 평'이 될까 말까한 마을 정자와 마을 주민들이 회의실로 쓰곤 하는 십 여 평짜리 경로당 2층 방이 전부다. 전시 공간이 모두 합쳐 열한 평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 정자를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참신하다.

미술관 이름은 '한평미술관'이다. '한평'이라는 이름에는 '작다'는 의미에다가 대'한'민국 '평'창이라는 지역 명을 더했다. 미술관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입장료만 받지 않을 뿐, 기본적으로 미술관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거의 다 갖춘 모양새다. 마을 정자는 제1전시관이고, 경로당 2층 방은 제2전시관이다. 이 작은 미술관에 전시관이 두 개나 된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 두 개의 전시관에 마을 진입로에 설치된 야외 전시 공간까지 포함하자면, 이 작은 미술관에 전시관만 무려 세 개가 되는 셈이다. 두 개는 실내 전시관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 전시관이다. 결코 작다고만은 할 수 없는 미술관이다.

사실 이 미술관의 전시 공간은 보는 사람의 시선과 감성에 따라 마을 전체와 마을을 에워싼 산과 강과 들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럴 때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에는 인간이 작품과 자연이 만든 작품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한평미술관의 '한평'은 한(一) 평보다는 한(大) 평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한평미술관은 그냥 그 크기만 놓고 '작다, 크다' 말할 수 있는 미술관이 아니다. 더구나 이 미술관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안에 참 많은 고민을 담았다는 걸 알게 된다.

한평미술관 마을 정자에 전시된 작품, '오리의 꿈'.
 한평미술관 마을 정자에 전시된 작품, '오리의 꿈'.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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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원주민들과 외지인들

경로당 2층 전시관에 걸린 작품 '행복'.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경로당 2층 전시관에 걸린 작품 '행복'.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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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미술관은 평창 대상리에 사는, 한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만들었다. 미술관을 만드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이 마을은 주민들 중 절반이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고, 일부는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기 위해 찾아온 귀농귀촌인들도 있다. 순수하게 농사만 짓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펜션을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원래부터 이 마을에 살며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과는 서로 소원한 관계에 있었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채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았다.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질시하고 반목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함께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원래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과 나중에 이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외지인들을 하나로 묶는 일을 시작한 건 지금 이 마을의 이장직을 맡고 있는 이강선씨다. 이 이장은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한 통신회사에 다니던 이 이장은 4년 전 대상리로 귀농했다. 기독교인인 이 이장은 먼저 같은 종교를 가진 주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통이 이뤄지면서 만남의 폭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마을 주민들은 이씨가 신뢰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지 그에게 이장 직을 맡겼다. 원주민들이 외지에서 온 초보 농군에게 이장 직을 맡기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이장은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이장은 이장이 되는 것은 물론, 미술관 만드는 일 또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장이 된 이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외지인과 원주민으로 나뉜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을 전체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을경로당 2층  전시관 내부.
 마을경로당 2층 전시관 내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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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마을 앞 평창강 가 갈대밭 오솔길.
 마을 앞 평창강 가 갈대밭 오솔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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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도는 '특용작물 재배'였다. 마을 사람들이 '오미자'나 '눈개승마' 같은 작물을 함께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외지인과 원주민이 서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대화가 가능해진 주민들은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을 늘리기 위한 방안에도 지혜를 모았다.

방문객은 마을 전체 소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뿐만 아니라 농업을 주업으로 한 주민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상리에는 마을 앞으로 평창강이 흘러 여름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미술관은 방문객을 늘리기 위한 방안 중에 하나였다. 그러니까 한평미술관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잠시잠깐이나마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생겨난 것이다.

미술관은 단순히 소득증대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이 미술관이 이제는 다시 마을 주민들을 더욱 더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미술관을 만든다고 할 때는 반신반의했던 주민도 있었다. 그 주민들이 미술관을 개관할 때는 찬조금을 내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데는 귀촌귀농인이 중심이 돼 조직한 '여명악단'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여명악단은 평창군 내 여러 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벌여 왔다. 악단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이 알렸다. 대상리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악단은 자연히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분위기가 한평미술관을 조성하는 데도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앞으로 한평미술관을 방문객들이 직접 여러 가지 미술 작업을 할 수 있는 체험장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방문객들이 미술을 놀이의 하나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마을경로당 벽에 걸린 작품과, 창문에 붙인 포스터.
 마을경로당 벽에 걸린 작품과, 창문에 붙인 포스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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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빌려온 소재, 예술가로 거듭난 주민들

한평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은 대부분 그 자료와 소재를 자연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주요 소재는 나무와 돌 같은 것들로 마을 주변의 강과 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버려진 돌과 나무에 불과했을 것들을 '작품'으로 되살렸다.

경로당에 전시된 거대 상황.
 경로당에 전시된 거대 상황.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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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대부분 이 마을 주민들이다. 예술은 평소 남의 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민들 중에 예술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대학 교수도 있다. 하지만 이 미술관에서는 그 역시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술관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작품은 대부분 평소 예술과는 거리가 먼 주민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누군가 다른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았을 법하다. 하지만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작품은 오로지 마을 주민들의 순수한 정서와 철학을 밑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조악한 면이 없지 않다. 어떤 작품에서는 심한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그런데도 그 작품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으니 그 또한 묘한 일이다. 오히려 만만해 보여서 좋다. 한편으로는 '예술이 뭐 별 건가? 이런 작품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다'하는 자신감마저 심어준다.

지게 모형 등.
 지게 모형 등.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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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은 동양화, 서양화, 퀼트, 수석, 자연조각, 시화 등 다양하다. 작품 수는 약 100여 점. 한평미술관은 6개월 전에 구상해 3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지난 달 9일에 개관했다. 미술관을 만드는 데 약 1백여 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재료의 대부분을 안 쓰거나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대상리에 가면 마을 주민 거의 모두를 예술가로 만든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이 앞으로는 이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을 전부 예술가들로 만들 판이다. 마을 주민들의 작품 활동은 계속된다. 당연히 전시 작품은 계속 교체된다. 이 마을과 미술관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지 궁금하다.


태그:#한평미술관, #대상리, #여명악단, #평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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