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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처음엔 나이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글에 연륜이 묻어났기 때문이다(기사: 50년 전 함석헌의 예언, 무섭게도 정확하다). 그런데 나이를 알고 보니 대학교 2학년생. 깜놀!

이 글을 먼저 본 편집기자에게 물었다.

"혹시, 남의 글 올린 거 아니야?"

편집기자는 윤성환 기자와 통화했고 결론은 그가 쓴 글이 맞다였다. 그 후로도 윤 기자는 두 세 편의 글을 더 올렸다. 궁금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렇게 '중후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그래서다. 윤 기자를 '찜! e 시민기자'에 낙점한 이유가. 다음은 21일 윤성환 기자와 나눈 대화.

☞ 윤성환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중학생부터 읽은 <역사비평>·<창비>가 큰 영향 끼쳐"


-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어릴 적부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아 지금까지 한국사 공부를 해오고 있는 학생이고요, 그래서 대학도 사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처음에 역사에 흥미를 느낀 시점에선 주로 한국고대사에 관심이 있고 그쪽 분야로만 계속 책을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여러 계기를 거치며 한국근현대사 쪽으로 관심이 쏠리게 되더라구요.

최근에는 역사 속 동아시아의 격변기 속에서 역대 왕조가 어떤 외교력을 발휘해왔는지, 또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 바람직한 역사인식은 무엇일지, 역사의 현재성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올곧은 방향에서 구현할 수 있는지 등등의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 대학 2년생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있는 글을 쓰는데요. 비법이 있다면.
"제 나름의 비법이 있거나 또 제가 쓴 글이 얼마 정도의 깊이를 지녔는지는 사실 저도 잘 판단이 안서는 것 같고요. 다만 제가 <오마이뉴스>에서 어설프게나마 사회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건 중학생 시절부터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꾸준히 탐독해 온 두 잡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하나는 <역사비평>이고, 다른 한 잡지는<창작과 비평>입니다. 특히 <역사비평>은 제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볼 때 제 글이 언뜻 깊이 있게 느껴지는 점은 두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데요, 하나는 제가 되도록 역사적 견지에서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점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 제가 쓰는 문체가 쉽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도 최근 들어 이 점을 아주 절감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제 나름의 역사공부과정에서 늘 딱딱한 문체의 역사논문을 읽고 쓰고 하다 보니 글을 저도 모르게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점은 앞으로 반드시 고쳐야 하겠지요."

- 글 한 편 쓰는데 보통 몇 시간이 걸리나요?
"제가 시간을 재면서 글을 쓰는 게 아닌 데다, 또 쓰는 글의 종류에 따라 시간은 들쑥날쑥하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사실 제가 좀 게으른 편인데다 글을 쓰는 중간 중간에 이리저리 잡생각이 많은 편이라 언제부턴가는 하루에 몇 시간씩 계속 집중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

-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역사 공부와 관련 있나요?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결국 오늘날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의 현실 사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 역사공부를 할 때부터 이 점을 인식했던 것은 아니고요. 차츰차츰 이 점을 인식해나갔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뒤부터요. 역사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상태의 사회는 존재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겠지요.

결국, 현실사회 문제는 역사적 견지에서 바라볼 때 그 본질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그렇기에 역사문제는 곧 현실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또 그렇기에 사회 공동체 내에서 항상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있는 바람직한 역사인식이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하겠고요. 아무튼 제 개인적으로는 그동안의 역사공부가 나름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친구들과도 역사나 사회 문제를 자주 토론하나요? 학생회나 동아리,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사실 제가 성격이 내성적인데다 어색함을 많이 타서 친구가 많지는 않는데요, 다만 저 역시도 사회단체 같은 데서 활동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제가 생활이 그럴 상황이 못 되어서요. 그래서 대신 이렇게 글 쓰는 일로나마, 그런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장래 희망 직업은 무엇입니까.
"어릴 때는 꿈도 많이 바뀌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이후로는 역사학자로 아주 고정이 되어버렸지요. 다만 역사학자가 되더라도 어떤 역사학자가 될 것인지가 문제일 텐데요, 저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에 뿌리박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막연하게나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제가 일차적으로 마음먹고 있는 공부 과제를 마무리하고 나면, 언젠가는 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맛깔나게 써보고 싶습니다."

-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으로 가입한 지 22일로 한 달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서 시민기자로 가입했고, 한 달간 글 써본 소감은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물론 그동안에도 <오마이뉴스>의 존재를 알았고, 또 이따금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진보매체에 접속해 기사를 읽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오마이뉴스>에 회원가입만 하면 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쓸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지요. 그래서 이전까지는 사회문제나 역사문제에 대한 제 나름의 견해가 있으면 그걸 글로 써서 제 일기에 기록하거나 아니면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본 잡지들에 투고했지요. 사실상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제가 생각한 것들을 사회적으로 폭넓게 공유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올해 들어 크게 자각했지요. 그래서 나름의 돌파구를 모색하다 <오마이뉴스>에 가입하고 기사를 쓰게 되었지요. <오마이뉴스>에서 글을 써보니 일차적으로는 제 글에 대해 누군가가 '호응'해준다는 점이 참 재밌습니다. 또 기사가 되면 꼬박꼬박 원고료가 나온다는 점도요. 물론 이는 이전까지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고요. 다만 제가 스스로 '취재'를 해서 '리얼'하게 기사를 써야 할 텐데 그 점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방 구할 돈 없어 학교 도서관 철야열람실에서 자"

- 주소지가 대구던데요, 대구를 보수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윤성환님 주변 분들은 어떤가요? 의견이 많이 부딪힐 듯한데요.
"대구가 현재는 너무나 보수적인 도시인데요, 하지만 한때 대구는 진보적인 도시였답니다. 특히 해방공간에서는요. 미군정 당국에 맞선 대구10·1인민항쟁은 해방공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희생도 컸고요. 그런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 '지역주의'의 함정에 빠진 '이상한 도시'로 전락했지요. 이점은 대구시민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시사문제로 대화해보면 친구들에게는 전혀 그런 면이 없었어요. 아마 저희 세대로 내려오면 이런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분이지, 결코 방해하거나 막는 분이 아니거든요. 다만 늘 이런 말씀은 하십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글은 가급적 쓰지 말라고, 그러다가 감옥 가면 어떡하느냐고. 이 정도야 부모님으로서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탓할 것은 못 되겠지요."

- 요즘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산다는 거, 참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윤성환님은 어떤가요?
"제가 겪었던 일을 고스란히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작년 3월에 처음 서울 올라오고 나서는 학교 옆 고시원에 월 29만 원짜리 방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수입으로는 그 월 29만 원도 부담인데다 저 역시도 서울에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또 제가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연히 두렵기만 한 속에서 아르바이트도 못 구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갔지요. 그런 가운데 4월 무렵에 대구 집에 내려와 보니 도시가스와 전기가 끊겨 있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일 다니시느라 바쁜데다 제게 방값을 보내주시는 바람에 제때 세금을 못 내서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저로선 너무나 속상했지요.

그러다가 5월에 이르러 그 고시원이 주인이 바뀌고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해서 거기 들어와 있는 학생들에게 다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작년 5월 중순에 나왔지요. 그러고는 방을 얻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일단 방을 얻으면 월세가 나가야 하니까요.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하는 저로선 그 후로 지금까지 방을 얻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학기 중에는 수업이 있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잠은 학교 도서관의 철야열람실에서 잤고요. 그리고 목요일 오후에 수업을 마치면 곧장 열차를 타고 대구 집으로 내려왔지요. 문제는 이렇게 되니까 물론 방값보다야 적지만 오고 가는 열차 비용이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어느 역사학 학술지에 논문을 쓰고 거기서 받은 원고료로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도와드렸고요, 올해는 다행히 1월부터 대구에 있는 한 시립도서관에서 주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지요.

그래도 제가 스스로 일을 해서 정기적으로나마 수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작년에는 매주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월요일에는 동대구역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지만, 올해는 그래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등록금은 저 역시 장학생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데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현재 제게 장학금을 전액으로 지급해주시는 종교기관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라면 저는 학교 다닐 엄두도 못 내겠지요. 정말 감사한 분들입니다."

- 어떤 사회를 꿈꾸시나요?
"제 생각에 요즘의 한국사회를 아주 도식화해서 말씀드린다면, 강자의 힘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약자는 갈수록 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이 자본권력과 부패한 정치권력, 언론권력, 검찰권력(사법권력)을 비롯한 '병리적 권력'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본권력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세를 확장해나가며 심지어 학문의 전당'에까지 침투해 성역(聖域)으로 군림하는 세태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저 모든 사람들이 우리 공동체가 겪어온 지난 일들의 진실을 기억하면서 공(公)의 개념에 바탕을 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지금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말은 '함께'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사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차기 정권에서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체제 개혁'을 단행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껏 살아오면서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중학교 2학년 땐데요, 그날이 정확하게 2006년 9월 2일 토요일이었지요. 그날 어머니와 함께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신문에 보니까 대구박물관에서 북쪽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 90여 점을 전시한다고 해서 그날 찾아간 것이지요. 당시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에 깊은 관심이 있던 저는 그 유물들을 실물로 보며 정말 감동했지요. 그런데 그날 딱 그 전시장을 나오면서 드는 생각이, '아, 내가 이제 다시는 이 유물들을 볼 수 없겠구나' 였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마음 속에 분단의 현실이 확 와 닿은 것이지요. 저희 외가 쪽 고향이 황해도지만, 저는 이전까지만 해도 분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적으로, 피부로 느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그걸 마음으로, 피부로 느낀 것이지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지요."

"이명박 정권 대상으로 과거사 청산 작업해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지난 이명박 정권 5년을 거치면서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유례없는 반동(反動)의 시기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의 시대를 철저히 부정하면서, 책임감이라고는 한 푼어치도 없이, 역사의 영원성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명박 시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물론 훗날 저희 세대로 구성된 역사가들의 몫이 되겠지만요.

흔히 오늘의 시대를 '87년 체제'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그 87년체제가 추구하는 지향성의 범주에 포함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입니다. 87년 체제의 뿌리는 6월항쟁인데, 이명박 정권의 정책과 의식수준은 6월항쟁의 지향점과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여러 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반동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점이 바로 향후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성숙도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지난 5년간의 이 '반동의 시대'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만큼 역사를 반동으로 되돌리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강력한 무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반드시 이명박 정권을 대상으로 한 '과거사 청산'이 분명하게 단행되어야 한다고요. 잘못된 역사를 그때그때 바로잡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이런 반동적인 역사가 또 언제 반복될지 모릅니다. 이 점은 지난 60년간의 한국현대사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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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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